절에서 49재를 지낼 때, 참석자들에게 조그만 책자를 주곤하죠.

 

제목은 ‘예불천수경’이라고 되어 있고, 여러 불교 경전의 일부가 편집되어 있습니다(아마 대부분의 절이 비슷할 것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보왕삼매론‘이라는 경전 구절을 읽으면서 항상 공감을 했답니다.



 

 

불교 수행을 하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써 놓은 법문이 ‘보왕삼매론’입니다.
 

저는 특히 2, 5, 7, 9번 항목이 가슴에 와닿았고, 10번 항목의 경우는 예전의 낯부끄러운 일이 기억이 나는 항목입니다.  

  1.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하셨느니라.
     
  2.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하셨느니라.
     
  3.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하셨느니라.
     
  4. 수행하는데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모든 마군으로서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하셨느니라.
     
  5.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데 두게되나니 ,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하셨느니라.

  6.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하셨느니라.
     
  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원림을 삼으라」하셨느니라.

  8.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덕을 베푸는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하셨느니라.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적은 이익으로서 부자가 되라」하셨느니라.

  10.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통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것이니, 이래서 부처님께서는 저 장애 가운데서 보리도를 얻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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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효지 2012.01.26 09:19 신고

    아하 그렇군요ㅎ정말 저 구슬들도 꿰어서 보배로 간직해야겠습니다 분에 넘치지 않게 늘 스스로를 돌아보고 채찍질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ㅎㅎ

독서파만권(讀書破萬卷) 하필여유신(下筆如有神)`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책 만 권을 읽으면 신들린 듯이 글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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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롭지만 그것이 정치는 아니다>


# 1

자산(子産)이 정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자산은 진수(溱水)라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 마차를 기꺼이 내주어 백성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2

"그것은 인자하기는 하나 정치를 모르는 짓이다.

다리를 놓아준다면 굳이 자기의 마차를 내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재상은 한두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백성들을 사랑해야 한다. 좋은 정책이 곧 참다운 인자함인 것이다."

맹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 3

위정자나 공직에 계신 분들, 그리고 리더들은 음미해 볼 만한 우화입니다.

나아가 평범한 우리네 삶에 있어서도 충분히 반면교사가 될만한 이야기입니다.



하루 하루 적절히 마차로 물을 건너고 있음에 만족하고 있진 않은지, '다리를 건설하는 일'이 귀찮고 때로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

매일 매일을 미봉책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저 스스로부터 반성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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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우정의 대명사, 관포지교. 감당 가능할까?

 

1. 관포지교(管鮑之交)에 대한 이해

 

가. 출전

史記(사기) 管晏列傳(관안열전)

나. 관포지교의 뜻

 

제(齊)나라 재상이었던 관중(管仲)과 포숙(鮑叔 ; 포숙아라고도 함)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서로 이해하고 믿고 정답게 지내는 깊은 우정을 나타내는 고사성어.

 

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스토리 정리

 

(1) 어린 시절

 

포숙의 집안은 명문가였으나 관중은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어려서부터 포숙은 관중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관중은 포숙을 이해하고 불평 한마디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젊었을 때 관중은 건달로 지내며 자주 포숙을 속였다.

포숙은 자본을 대고 관중은 경영을 담당하여 동업하였으나, 관중이 이익금을 혼자 독차지하였다.

그런데도, 포숙은 관중의 집안이 가난한 탓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했다.

 

함께 전쟁에 나아가서는 관중이 3번이나 도망을 하였는데도, 포숙은 그를 비겁자라 생각하지 않고 그에게는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그를 변명하였다.

 

(2) 경쟁(관중은 제나라의 첫 번째 왕자 ‘규’, 포숙은 두 번째 왕자 ‘소백’을 지지하게 됨)

 

두 사람은 벼슬길에 올라 관중은 공자(公子) 규(糾)를 섬기게 되고 포숙아는 규의 아우 소백(小白)을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두 공자는 왕위를 둘러싸고 격렬히 대립하게 되어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적이 되었다

 

(3) 정치적 결과 (포숙의 승리, 하지만 재상은 관중이)

이 싸움에서 소백이 승리했다.

그는 제나라의 새 군주가 되어 환공(桓公)이라 일컫고, 형 규를 죽이고 그 측근이었던 관중도 죽이려 했다.

그때 포숙아가 환공에게 진언했다.

 

“관중의 재능은 신보다 몇 갑절 낫습니다.

제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으로도 충분합니다만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관중을 기용하셔야 하옵니다.”

환공은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政事)를 맡겼다.

 

(4) 관중의 선정(善政)

 

재상(宰相)이 된 관중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마음껏 수완을 발휘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패자(覇者)로 군림하게 했다

 

(5) 관중의 의외의 처신

 

제 환공은 관중에게, 관중 다음 재상감으로 누가 좋은지를 물어 보았다.

당연히 관중 자신을 밀어 준 포숙을 추천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관중의 답은 의외였다.

 

“포숙은 정직하고 청렴결백하여 나라를 잘 다스릴 것입니다.

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그 청렴결백과 정직이 때로는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포숙은 너무 곧아서 모든 간신의 무리를 내치고 말 것입니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 법입니다.“

 

즉 사람들의 예측과 달리 관중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친구 포숙아를 재상으로 천거하지 않았다.

포숙아의 潔癖性(결벽성)과 原則主義(원칙주의)를 걱정했던 것이다.

(6) 관중의 회고

 

“내가 젊고 가난했을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언제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에게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몇 번씩 벼슬에 나갔으나 그때마다 쫓겨났다. 그래도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흉보지 않았다.

내게 아직 운(時運)이 안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세번 전쟁에 나갔다가 세번 다 달아났지만, 나를 비겁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게 늙으신 어머니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공자 규가 후계자 싸움에서 패하여 동료 소홀(召忽)은 싸움에서 죽고 나는 묶이는 치욕을 당했지만 그는 나를 염치없다고 비웃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기보다 공명을 천하에 알리지 못함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사람을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2. Comment

 

- ‘사기’에서 드러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우정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관포지교’는 포숙의 관중에 대한 ‘일방적인 믿음과 사랑’에 다름 아니다.

포숙의 입장에서는 속이 상할만도 한데 끝까지 관중의 입장을 지지하고 이해했다.

 

- 사마천은 관중의 입을 통해 우정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려 한 것 같다.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

 

알아준다는 것.

설령 내 처신이 부적절해 보여도 그런 내 처신의 근저(根底)에는 어떤 마음이 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것. 그것이 친구라고 본 것이다.

 

- 너무도 흔하게 부르는 ‘친구’라는 말 속에는 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알아챔’이 필요하다는 점을 준엄하게 지적하고 있다.

 

- 포숙아도 관중을 알아주었지만, 관중도 포숙아를 알아 준 것이다.  

 

과연 나에게 ‘포숙아’ 같은 친구가 있는가?

 나아가 과연 내가 ‘관중’처럼 행동하는 친구를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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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효지 2012.01.17 17:03 신고

    고 이병철 회장께서 말씀하시길 인재로 쓰려면 그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믿지못하겠거든 쓰지를 마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ㅎㅎ

  2. prada 財布 2013.05.02 17:36 신고

    정직을 잃은 자는 더 이상 잃을 것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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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프로젝트 : 고전의 숲을 거닐다(2) ‘中’의 심오함


# 1


상황(時)은 늘 변한다.

상황 변화에 따라 가장 균형 잡힌 최적의 황금률(中)을 찾아내는 것이 시중(時中)이다.



# 2


'시중'의 관점에서 보면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이거나,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극단이 없다.

오로지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한 진실만이 있을 뿐이다(眞實無妄).



# 3


<중용>에서는 군자와 소인의 인생살이를 이렇게 비교하고 있다.


'군자지중용야(君子之中庸也)는 군자이시중(君子而時中)이라'

(군자의 중용적 삶은 때를 잘 알아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중심을 잡아 서는 것이다)



'소인지반중용야(小人之反中庸也)는 소인이무기탄야(小人而無忌憚也)니라'

(소인의 반중용적 삶의 형태는 시도 때도 모르고 아무런 생각 없이 인생을 막 살아가는 것이다)






# 4


즉 군자는 시중지도를 실천하는 사람이며, 소인은 시도 때도 모르고 기분이 내키는 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정의하고 있다.



# 5


'시중(時中)'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평형(Equilibrium)이다. 치우치지도, 기울어지지도 않고, 넘치거나 모자라지도 않는 것이다.





둘째는 역동(Dynamic)이다. 정지된 중용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중용이다.



셋째는 지속(Maintenance)이다. 잠깐의 평형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 6


이러한 시중의 극치는 중화(中和)다.

인간의 감정인 희노애락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그 희노애락의 감정이 밖으로 표출돼 적절한 시중(時中)의 원칙에 맞을 때를 '화(和)'라고 한다.

중용이 가르치는 소중한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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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효지 2012.01.20 22:28 신고

    정말 중용은 필요한 태도인 것 같습니다ㅎㅎ


사람의 욕심이란 참...


내가 담당하는 수많은 사건들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비롯된 것들이 많다. 특히 대부분의 형사사건은, 그 사람의 무리한 욕심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되고, 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끝까지 상대방을 복수하려는 마음에서 투서나 고소를 하게 되어 결국에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우린 100억 정도 갖고 있으면 정말 뿌듯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100억 갖고 있는 사람은 200억 벌려고, 사업을 확장하고 
무리하게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려 든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었다. 욕망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 많이 했다.
 

채근담을 보다 보면, 이러한 사람의 무리한 욕심을 자제하라는 좋은 글들이 나온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인용해 보고자 한다.


#1.


사나운 짐승을 죽이기는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굴복시키기 어려우며

계곡을 채우긴 쉬워도 사람의 욕망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2.


분수에 없는 복과 무고한 횡재는

만물의 조화 앞에 놓인 표적이거나 인간 세상의 함정이다


높은 곳에서 보지 못하면

그 거짓된 술수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3.


명예와 부귀가 헛되이 사라지는 길을

직접 따라가 그 끝을 지켜보면 탐욕이 저절로 가벼워진다


재난과 빈곤함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직접 따라가 그 유래를 따져보면

원망하는 마음이 저절로 사라진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자제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꽉 쥐면 쥘수록 더욱 미끄러운 게 재물이니 재물이야말로 메기 같은 물고기라..."






하루하루를 성실히 사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지만

나의 지향점이 헛된 욕심과 무리한 욕망에 근거한 것은 아닌지

한번씩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헛된 욕심과 무리한 욕망은

결국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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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효지 2012.01.17 16:48 신고

    그렇네요ㅎ역시 세상이치는 과유불급인 것 같아요ㅎ 중용의 도가 강조되는 건 그래서겠죠?ㅎ

子曰, "君子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

"군자는 말 때문에 사람을 등용하지 않으며, 사람 때문에 그가 하는 말까지 막지 않는다."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말 때문에 사람을 등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군주는 말에 현혹되지 않으며 그 실질을 따지고 실체에 접근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아가 '사람 때문에 그가 하는 말까지 막지 않는다'는 이 부분은 정말 많은 울림이 있다.

 
진정한 현군은 사람의 좋고 나쁨과는 별개로 그 사람의 말을 평가하는 객관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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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숲을 거닐다> 죄는 은밀한 기쁨으로부터 시작된다.

 

인용문

 

過罪未熟 과죄미숙

愚以怡淡 우이이담

至其熟時 지기숙시

自受大罪 자수대죄

 

해석)

죄를 지어도 죄의 업이 익기 전에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꿀 같이 여기다가

죄가 한창 무르익은 후에야

비로소 큰 재앙을 받는다.

 

<법구경 중>

 





나의 느낌

 

우리는 뉴스에서 보도되는 권력자들의 각종 비리 소식을 접하면서 거참,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저러고도 안 들킬 줄 알았나?’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실제 많은 사건을 변호해 보면, 그 분들 중 상당수는 안 들킬 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위 법구경 원문 중 과죄미숙이란 말에 눈이 확 갑니다.

 
즉 죄를 지어도(過罪), 그 죄가 충분히 숙성하지 않은 상태(未熟)에서는 외부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달콤하게 여긴다는 부분. , 정말 진리입니다.

 

인삼도 5년이 되어야 익고, 와인도 오래 숙성되어야 제대로 맛을 내듯이

라는 것도 그것을 저지른 당장에는 아픔보다는 쾌감기쁨이 더 큰 법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이미 죄의 씨앗을 뿌려 놓으면, 그 죄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싹을 틔우고 길이생장을 한 후 꽃을 피우고 드디어 독의 열매(毒果)를 맺는 법입니다.

 

오늘날 언론을 시끄럽게 만드는 그 독과의 씨앗은 이미 3-4년 전에 뿌려진 것이고, 적어도 그 독과의 씨앗을 뿌릴 때에는 우리네 인간은 쾌감과 승리감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요?

촘촘한 하늘비단 그물(天羅之網)로 얽혀 있어서, 그 무엇도 빠져 나가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잘못도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큰 재앙이 되어 돌아온다는 법구경의 말씀, 큰 울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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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효지 2012.02.22 00:04 신고

    그렇군요 역시 옛 성현님 말씀처럼 누가 보든 보지않든 홀로 마음가짐을 깨끗이 해야겠어요 저 자신과 신은 알고있으니까요

고전의 숲을 거닐다(13) : 수치를 아는 것이 용기다


▷ 사례


# 1

(주)재호전산의 김재호 사장.

최근 공동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업체(주식회사 대용전기)와 사이에 트러블이 생겼다.

그런데 사실 그 트러블의 원인은 김사장이 최초에 판단했던 것과는 시장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인데, 지난 번 회의석 상에서는 오히려 상대방(대용전기)의 잘못인 양 몰아세웠던 것이다.

자존심이 강한 김사장으로서는 자신의 판단미스를 인정하는 것이 힘들었다.


# 2

하지만 자꾸 그 당시의 상황이 머리를 맴돈다.

상대회사인 대용전기의 박대용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아주 정직한 분이다. 그런 분께 억지소리를 계속했던 김사장은 찜찜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 고전 한 자락


# 1

중용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好學 近乎知(호학근호지)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에 가깝고


力行 近乎仁(역행 근호인)

힘써 행하는 것은 인에 가깝고


知恥 近乎勇(지치 근호용)

수치를 아는 것은 용에 가까운 것이다


知其三者 則知所以修身(지기삼자 즉지소이수신)

이 세 가지를 알면 곧 수신하는 바를 알게 되고


知所以修身 則知所以政治(지소이수신 즉지소이정치)

수신하는 바를 알면 곧 사람을 다스리는 바를 알게 된다.


# 2

‘용감하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 용감하다라는 평가를 내릴까요?

중용은 아주 심플하게 말합니다.


‘수치를 아는 것’


그게 용기라는군요.




# 3
 

사례에서 김사장은 자신의 행위가 부적절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에 마음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적어도 본인 스스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있기에.


자신이 잘못한 것, 그리고 그것 때문에 수치스럽다는 것을 아는 것,

나아가 상대에게 그 점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참다운 용기일 것입니다.


# 4


결국 진정한 용기는 자신에 대한 直面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 볼 때라야만이 나의 수치를 알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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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저인 사마천의 사기.

보통 사마천의 사기를 '기전체' 서술방식이라고 하는데 
이는 '본기'와 '열전'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본기'가 제왕의 역사를 기록하였다면 '열전'은 성인, 충신, 열녀, 대학자 등 역사적 귀감이 될만한 사람들의 기록을 기록한것으로 이전까지의 역사기술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기술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열전'이란 위인전을 말하는 것으로 인물의 사적을 시간순서로 기술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사마천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자객(Killer)' 5명에 대한 이야기를 '자객열전'이라는 별도의 편에서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5명의 자객이 바로, 조말(曹沫), 전제(專諸), 예양(預讓), 섭정, 형가이다.
이 중 특히 '형가'의 에피소드는 이연걸, 장만옥, 양조위 주연의 '영웅'이라는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나는 위 자객열전 중에서, '예양'과 '섭정'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예양의 이야기에는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는 문장이 나오고, 섭정의 이야기에도, 미천한 자신을 위해서 예의를 다한 의뢰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고독한 킬러의 모습이 나온다.

사마천은 자객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이유에는, 대의명분도 있지만, '자신을 알아주고 존중해주었다'는 점도 큰 몫을 차지했음을 들려주려 한 것 같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의미있는 존재이고 싶은 근본적인 욕망을 갖고 있음이다.

'자객열전에서 배우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협상이나 설득에서 하나의 작은 테마로 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료를 좀 더 모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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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효지 2012.01.17 16:51 신고

    아ㅎㅎ자신을 알아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ㅎㅎ숙고하게 만드는 말이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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