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적서, 발주서(PO)만으로 계약이 성립되는지 여부]
작성 : 조우성 변호사 (로펌 머스트노우)
1. 사안의 개요
김대표는 중소기업 '혁신테크'의 대표로, 대기업 '글로벌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2025년 3월, 글로벌산업의 구매담당자 박과장으로부터 특수 부품 100개에 대한 견적 요청을 받았다. 김대표는 단가 50만원, 총액 5천만원의 견적서를 이메일로 발송했고, 박과장은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회신했다.
2주 후, 박과장은 김대표에게 "귀사 견적서 기준으로 발주서(PO) 발행했으니 확인 바랍니다"라는 이메일과 함께 발주서를 첨부했다. 발주서에는 부품명, 수량, 단가, 납기일(2개월 후)이 명시되어 있었다. 김대표는 이메일을 확인했지만 별도 회신은 하지 않았고, 곧바로 부품 제작에 착수했다.
그러나 납기일 2주 전, 박과장은 갑자기 "내부 사정으로 이번 발주는 취소되었습니다"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미 김대표는 원자재를 구매하고 생산을 80% 완료한 상태였다. 김대표는 "계약이 성립했으므로 취소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글로벌산업 측은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발주서에 대한 귀사의 승낙도 없었으므로 계약이 성립되지 않았다"며 납품 거부 의사를 밝혔다.
2. 법적 쟁점 및 법리 검토
가. 견적서와 발주서만으로 계약이 성립하는지 여부
계약은 청약과 승낙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의사표시의 합치에 의해 성립한다. 계약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사이에 의사의 합치가 있어야 하며, 이러한 의사의 합치는 계약의 본질적 사항이나 중요 사항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있거나 적어도 장래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 등에 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계약이 성립하기 위한 법률요건인 청약은 그에 응하는 승낙만 있으면 곧 계약이 성립하는 구체적, 확정적 의사표시여야 한다. 따라서 청약은 계약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사항을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다53039 판결).
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 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 그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지만, 그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내심의 의사 여하에 관계없이 그 문언의 내용과 그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그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당사자 사이의 계약의 내용을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민법 제532조는 "청약자의 의사표시나 관습에 의하여 승낙의 통지가 필요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계약은 승낙의 의사표시로 인정되는 사실이 있는 때에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의사실현에 의한 계약 성립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상법 제53조는 "상인이 상시 거래관계에 있는 자로부터 그 영업부류에 속한 계약의 청약을 받은 때에는 지체없이 낙부의 통지를 발송하여야 한다. 이를 해태한 때에는 승낙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 견적서의 법적 성격과 발주서의 의미
견적서는 일반적으로 계약 체결을 위한 청약의 유인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견적서의 내용이 구체적이고 확정적이어서 상대방의 승낙만 있으면 계약이 성립할 수 있을 정도라면 청약으로 볼 수도 있다.
발주서(Purchase Order, PO)는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고자 하는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발행하는 문서로, 일반적으로 구매 의사를 표시하는 청약으로 해석된다. 발주서에 물품명, 수량, 단가, 납기일 등 계약의 본질적 요소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면, 이는 청약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3. 사안에 대한 답변
가. 견적서와 발주서의 법적 성격 분석
본 사안에서 김대표가 제출한 견적서는 청약의 유인으로 볼 수 있다. 견적서 자체만으로는 계약 체결의 확정적 의사를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글로벌산업의 박과장이 발행한 발주서는 부품명, 수량, 단가, 납기일 등 계약의 본질적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으므로 청약으로 볼 수 있다. 발주서는 그 내용이 구체적이고 확정적이어서 상대방의 승낙만 있으면 계약이 성립할 수 있는 상태였다.
나. 계약 성립 여부 판단
김대표는 발주서를 받고 별도의 승낙 의사표시를 명시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곧바로 부품 제작에 착수했다. 이는 민법 제532조에서 규정하는 '승낙의 의사표시로 인정되는 사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김대표의 부품 제작 착수 행위는 묵시적 승낙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상법 제53조에 따르면, 상인이 상시 거래관계에 있는 자로부터 그 영업부류에 속한 계약의 청약을 받은 때에는 지체없이 낙부의 통지를 발송해야 하며, 이를 해태한 때에는 승낙한 것으로 본다. 김대표와 글로벌산업이 상시 거래관계에 있었다면, 김대표가 발주서에 대해 명시적인 거절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것은 승낙으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본 사안에서는 글로벌산업의 발주서(청약)와 김대표의 부품 제작 착수(묵시적 승낙)에 의해 계약이 성립했다고 볼 수 있다.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계약 성립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계약은 당사자의 합의만으로 성립하는 낙성계약이며, 특별한 방식을 요하지 않는 불요식계약이기 때문이다.
다. 글로벌산업의 일방적 취소 가능 여부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한 이상, 글로벌산업은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 계약의 해제는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하거나, 법률에서 정한 해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본 사안에서 글로벌산업의 "내부 사정"은 법률상 인정되는 해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글로벌산업은 계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김대표는 이미 원자재를 구매하고 생산을 80% 완료한 상태이므로, 글로벌산업의 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실제 손해와 기대이익 상실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4. 요약 및 시사점
견적서와 발주서만으로도 계약이 성립할 수 있다. 견적서는 일반적으로 청약의 유인으로 해석되지만, 발주서는 그 내용이 구체적이고 확정적이라면 청약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상대방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승낙이 있으면 계약이 성립한다.
본 사안에서는 글로벌산업의 발주서(청약)와 김대표의 부품 제작 착수(묵시적 승낙)에 의해 계약이 성립했으므로, 글로벌산업은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계약 성립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기업 간 거래에서는 분쟁 예방을 위해 계약 조건을 명확히 하고, 가능한 한 서면으로 합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견적서를 제출하거나 발주서를 발행할 때는 그 법적 의미와 효력을 인식하고, 의사표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계약 취소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에는 일방적 통보보다는 상대방과의 협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의뢰인이 꼭 알아야 할 핵심 Q&A
Q1: 견적서와 발주서만으로도 법적 구속력 있는 계약이 성립할 수 있나요?
A: 네, 가능합니다. 견적서는 일반적으로 청약의 유인으로 해석되지만, 발주서가 물품명, 수량, 단가, 납기일 등 계약의 본질적 요소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면 청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상대방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승낙(예: 제작 착수)이 있으면 계약이 성립합니다. 정식 계약서 작성 여부는 계약 성립의 필수 요건이 아닙니다.
Q2: 발주서를 받고 별도의 승낙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는데도 계약이 성립했다고 볼 수 있나요?
A: 네, 가능합니다. 민법 제532조에 따르면 청약자의 의사표시나 관습에 의해 승낙의 통지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 승낙의 의사표시로 인정되는 사실(예: 제작 착수)이 있을 때 계약이 성립합니다. 또한 상법 제53조에 따르면 상인이 상시 거래관계에 있는 자로부터 청약을 받고 지체 없이 거절 통지를 하지 않으면 승낙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Q3: 계약 성립 후 일방이 "내부 사정"을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나요?
A: 아니요,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한 이상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의 해제는 당사자 간 합의가 있거나 법률에서 정한 해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내부 사정"은 법률상 인정되는 해제 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일방적 취소는 채무불이행에 해당하며, 이로 인해 발생한 상대방의 손해(실제 손해 및 기대이익)를 배상해야 합니다.
** 인포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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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적서와 발주서의 법적 효력 인포그래픽
이유: 품목, 수량, 단가, 납기일 등 핵심 조건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므로 명확한 '청약'으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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