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내공매거진 68

생명의 숨결, 아스팔트 밑에도 흐르는 엘랑 비탈

생명의 숨결, 아스팔트 밑에도 흐르는 엘랑 비탈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 한 뼘, 그 냉랭한 침묵을 송곳처럼 뚫고 여린 싹 하나가 파르르 고개를 내민다. 저 작고 연둣빛 몸짓 속에 담긴 거대한 생명의 약동. 이것을 일찍이 서양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엘랑 비탈(Élan vital)’이라 불렀던가. 그저 살아있음이 아니라, 살아 ‘내려는’ 의지, 정해진 길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려는’ 창조적 충동이라고 했던가. 그것은 과연 무엇이며, 숨 막히는 현대의 잿빛 도시 속에서도 여전히 숨 쉬고 있는가? 엘랑 비탈. 그것은 정교한 설계도에도 없고, 치밀한 알고리즘에도 입력되지 않은 움직임이다. 예측 가능한 톱니바퀴의 반복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살아있는 불꽃, 스스로 길을 찾는 물줄기다. 갓난아이의 ..

선택과 생존의 갈림길에서 : 항우의 마지막 순간

[선택과 생존의 갈림길에서 : 항우의 마지막 순간] 강을 건너지 않은 항우. 그는 왜 물소리가 들리는 오강의 어두운 물결을 등지고 칼을 뽑았을까. 치욕을 참고 강동으로 돌아가 다시 군사를 모을 수도 있었을 텐데. 두목의 시 「제강정」은 그 결정적 순간을 침묵 속에 담아낸다. "勝敗兵家事不期, 包羞忍辱是男兒. 江東子弟多才俊, 卷土重來未可知." 승패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치욕을 감내하는 것이 사내라 했다. 강동에는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많으니, 다시 돌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두목은 칼을 뽑은 항우에게 강을 건너라고 속삭인다. 사면초가의 해하에서 항우는 자신의 길을 스스로 닫아버렸다. 오강 앞에서 그는 생존과 명예 사이에서 명예를 택했다. 그러나 생존은 다른 기회의 문을 여는 열쇠다. 오늘의 패배가 내일의..

살아남음의 철학 - 계포의 선택

[사마천 사기 인문학] 살아남음의 철학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패망한 장수에게 살아남음이란 어떤 의미인가. 계포는 항우의 장수였다. 초한전쟁에서 항우가 무너지자 그는 사지에 몰렸다. 유방은 그를 잡으면 후하게 상을 주겠다고 현상금을 걸었다. 하늘 아래 어디에도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계포는 죽지 않았다. 죽음으로 주군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살아남기로 했다. 역설은 여기에 있다. 계포는 노예들 사이에 숨어 지냈다. 귀한 신분의 장수가 천한 노예들과 함께 먹고 자며 시간을 버텼다. 신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선택이었다. 그는 신분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졌다. 고귀함과 비천함의 경계에서 그는 오직 생명만을 선택했다. 죽음은 쉽다. 칼 한 번에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

감자(減資), 기업의 다이어트 혹은 수술?

[공시 깊이 이해하기] 감자(減資), 기업의 다이어트 혹은 수술?▶ 오늘의 공시 : [감자 결정] A사: 재무구조 개선 및 결손 보전을 위해 보통주 3주를 1주로 병합하는 무상감자를 결정하였습니다. 감자 비율은 66.7%입니다.기업공시 중 ‘감자(資本減少, Capital Reduction)’는 투자자들을 긴장시키는 소식 중 하나입니다. 감자란 말 그대로 기업이 자본금을 줄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는 주로 누적된 손실을 털어내 재무구조를 개선하거나, 주주에게 자본을 돌려주기 위해 시행됩니다.특히 무상감자(無償減資, Non-compensated Capital Reduction)는 회사가 주주에게 보상 없이 자본금을 줄여 누적 결손금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음을 시사할 수 있어 시장..

승자 없는 게임의 시대,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승자 없는 게임의 시대,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세스 고딘은 그의 저서 '이카루스 이야기'를 통해 종교학자 제임스 카스가 제시한 '제한 게임'과 '무한 게임'이라는 통찰력 있는 개념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카스에 따르면, "제한 게임이란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게임"이다. 이 게임에는 명확한 규칙과 정해진 끝이 존재하며, 궁극적인 목표는 경쟁자를 제압하고 최후의 승자로 등극하는 것이다. 고딘은 "산업 시대는 바로 이러한 제한 게임의 개념을 받아들였다"고 단언한다. 시장점유율이라는 한정된 파이를 확보하기 위한 기업들의 치열한 각축전, 경쟁사의 핵심 인재를 더 높은 연봉으로 빼내 오는 제로섬(zero-sum) 방식의 인재 확보 전쟁 등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마치 미국풋볼리그(NFL)에서 단 하나의 팀만이 영광의..

자기가 중심이 되라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사물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얻어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일어도 근심하지 아니하며 대지위를 마음껏 소요한다. 사물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미워하고 뜻대로 되면 애착을 가져 털끝만한 것에도 속박된다." - 채근담 -차가운 사무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 것일까. 명함에 새겨진 직함이 나를 바라보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 직함을 바라보는 것인가. 부와 명예, 직위로 치장된 현대인의 껍질 아래에는 과연 누가 살고 있는 것일까. 채근담의 구절을 음미하며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본다. '털끝만한 것에 속박된다'는 말은 성공이라는 사다리를 오르는 현대인의 초상화가 아닌가. 그 옛날 동양의 현인이 남긴 지혜가 오늘날 출세의 바다에서 허우..

세 개의 굴을 파는 지혜 – 교토삼굴의 현대적 통찰

[사마천 사기 인문학] 세 개의 굴을 파는 지혜 – 교토삼굴의 현대적 통찰 인간은 미래를 알지 못한다. 그러하기에 인간의 역사는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지혜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기록된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는 이천 년의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를 전한다. 토끼가 세 개의 굴을 파는 이유는 하나의 굴이 무너지더라도 살아남기 위함이다. 이 단순한 원리 속에 인간 생존의 핵심 전략이 담겨 있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 민왕의 미움을 사 재상 자리에서 쫓겨났을 때, 그의 식객 풍환(馮驩)은 앞날을 내다보는 세 가지 계책을 펼쳤다. 첫 번째 굴은 백성들의 지지였다. 이전에 설 땅 주민들의 빚을 탕감해 준 풍환의 선행 덕분에, 맹상군이 ..

현진건의 <꺼삐딴리>

꺼삐딴리 현진건 (1925) 작품 소개 꺼삐딴리는 현진건이 1925년에 발표한 한국 근대 소설로,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이인국이라는 인물이 시대 변화에 따라 처세술을 바꾸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꺼삐딴리의 의미 "꺼삐딴리"는 러시아어로 '대장'을 의미하는 '까삐딴'에서 유래된 말로, 주인공 이인국이 공산당 치하에서 얻게 된 별명입니다. "대장 리(이)"를 의미합니다. 주인공 배경 이인국은 평양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 작품 개요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70년대 초반 한국의 한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권력의 형성과 부패,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과 순응의 문제를 다룬 작품입니다. 작가는 어린이 사회의 축소판을 통해 당시 한국 사회의 정치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 '나'(한병태)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 온 5학년 학생. 처음엔 엄석대에 저항하지만 결국 굴복하고 그의 측근이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