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내공 컬럼] 당신이 어디에 있든 그곳의 주인이 되라 - 수처작주
수처작주(隨處作主). 이 네 글자의 깊은 의미를 아는가? 송나라 임제종의 선사 '임제의현(臨濟義玄)'이 남긴 말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 어디에 있든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곳마다 참됨을 구현하라. 선종(禪宗)의 핵심 가르침으로, 모든 상황에서 주체적 각성을 추구하라는 뜻이다. 한 떨기 꽃을 보더라도 자신의 정원에서 피어난 것처럼, 황무지의 돌멩이 하나라도 자신의 보물로 품을 줄 아는 마음이다.
이 오래된 지혜를 더욱 현실적으로 구현한 이가 명나라 말기의 양명학자 육상객(陸象谿, 1520-1606)이다. 왕양명의 제자 왕기의 문하생으로, 명대 양명학 좌파의 대표적 사상가였던 그는 추상적인 수처작주의 가르침을 '육연(六然)'이라는 여섯 가지 구체적 태도로 풀어냈다.
자처초연(自處超然). 사전적 의미로는 '자신을 대함에 있어 초연하게 하라'는 뜻이다. 출근길 지하철이 지연되어도, 갑작스런 폭우에 옷이 젖어도 내면의 평정을 잃지 않는 것이다. 아침부터 아이가 열이 나 예정된 중요한 회의를 놓쳐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음 방안을 모색하는 평온함. 환경은 바뀌어도 나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자처초연이다.
처인초연(處人超然). '타인을 대함에 있어 초연하게 하라'는 의미다. 직장 동료의 무심한 한마디에 하루 종일 기분이 상하지 않고, 가족 간의 작은 다툼에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이웃의 시끄러운 소음에도, 친구의 오해에도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상황을 이해하려는 너그러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처인초연이다.
유사초연(有事超然). '일이 있을 때 초연하게 하라'는 뜻이다. 마감 기한에 쫓기는 와중에도, 동시에 여러 업무를 처리해야 할 때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태도다. 명절 준비로 분주할 때도, 자녀의 입시를 앞두고도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유사초연이다.
무사초연(無事超然). '일이 없을 때 초연하게 하라'는 의미다. 갑작스러운 휴가에 무엇을 해야 할지 초조해하지 않고, 퇴직 후의 시간을 허무하게 여기지 않는 자세다. 주말의 적막함을 견디지 못해 무의미한 활동으로 채우지 않고, 그 고요함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지혜가 무사초연이다.
득의담연(得意澹然). '뜻을 이루었을 때 담담하게 하라'는 뜻이다. 승진했을 때도, 자녀가 명문대에 합격했을 때도 들뜨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오랜 노력 끝에 내 집을 마련했을 때도, 큰 상을 받았을 때도 자만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득의담연이다.
실의태연(失意泰然). '뜻을 잃었을 때 태연하게 하라'는 의미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시험에 떨어졌을 때도 좌절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투자한 주식이 폭락해도, 오랜 연인과 헤어져도 그 아픔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실의태연이다.
수처작주의 사상은 단순한 철학적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선종을 통해 동아시아 전역에 퍼진 실천적 지혜다. 임제의현이 이 말을 남긴 배경에는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도 내면의 평화를 찾으려는 인간의 근원적 열망이 있었다. 육상객이 이를 여섯 가지로 정리한 것은 혼란스러운 명말 시대에 개인의 정신적 자유를 추구했던 시대적 맥락이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처작주의 정신은 무엇일까? 그것은 끊임없이 울려대는 스마트폰 알림 속에서도,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육연의 지혜는 400년의 시간을 건너, 임제의 가르침은 천 년의 강을 건너 우리에게 속삭인다.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어디든, 그곳이 당신의 왕국이다. 외부 환경을 통제하려 애쓰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힘쓰라. 진정한 자유는 환경의 변화가 아닌, 그에 대한 당신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수처작주. 작은 말 한마디지만, 그 속에 인생의 모든 지혜가 담겨있다.
* 인포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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