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 36계] (1) 제1계 만천과해(瞞天過海)
1. 서론: 일상의 가면 뒤에 숨은 칼
가장 치명적인 칼은 칼집에 있을 때가 아니라, 아예 보이지 않을 때다. 중국 병법의 첫 장을 여는 만천과해(瞞天過海), 즉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넌다’는 계책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칼의 병법이다. 여기서 하늘(天)은 경계하는 적의 시선이며, 바다(海)는 넘어야 할 거대한 난관이다. 이 병법의 정수는 요란한 속임수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해 보이는 일상의 장막 뒤에, 진짜 목표를 감추고 누구의 저항도 받지 않은 채 장애물을 건너는 것이다. 겉으로는 쟁기질을 하는 농부처럼 보이나, 그 손에는 천하를 뒤엎을 검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 이 글은 고대의 지혜가 어떻게 역사의 강을 건너 오늘날 비즈니스와 우리 삶의 한복판에 서늘한 통찰을 던지는지 그 속살을 파헤치는 기록이다.
2. 역사 속의 만천과해: 황제와 장수, 그리고 목마
역사는 거대한 기만으로 전진하기도 한다. 만천과해의 원형은 바로 그 역사의 주름 속에 박혀 있다.
가. 설인귀, 황제의 바다를 가리다:
고구려를 치러 나선 당 태종은 거친 파도를 보고 원정을 포기하려 했다. 천하를 호령하는 황제도 자연의 위용 앞에서는 한낱 인간이었다. 명장 설인귀(薛仁貴)는 바다를 두려워하는 황제를 위해 땅 위에 거대한 장막을 치고 연회를 열었다. 황제는 육지의 안락함 속에서 술과 음악에 취했다. 며칠 후 장막이 걷혔을 때, 배는 이미 거친 바다를 건너 고구려 땅에 닿아 있었다. ‘황제를 위한 연회’라는 지극히 당연한 충심의 행위가 ‘바다를 건넌다’는 거대한 군사작전을 완벽하게 위장한 것이다. 이 우화는 만천과해가 어떻게 상대의 심리적 약점을 파고들어 경계심 자체를 무너뜨리는지를 웅변한다.
나. 제갈량, 제사를 빙자해 강을 건너다:
삼국지의 제갈량 또한 남만 정벌에서 이 계책의 변용을 보여주었다. 맹획의 군대가 지키는 강을 건너기 위해, 그는 강가에서 성대한 제사를 지내는 척했다. 적들은 이를 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의례 행위로만 여겼다. 그 방심의 틈을 타, 제갈량의 군대는 제물을 옮기는 배에 숨어 강을 건넜다. 신성한 의식이라는 일상적 행위가 날카로운 군사적 비수가 되었다.
다. 트로이, 스스로 파멸을 끌어안다:
서양의 역사 또한 다르지 않다. 그리스군은 10년의 공방 끝에 철수하는 척하며 거대한 목마를 남겼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는 종교적 관습은 트로이인들의 의심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승리의 전리품이라 여기며 목마를 성 안으로 들였다. ‘전쟁의 끝’이라는 모두가 바라던 일상으로의 복귀가, 결국 성벽 안으로 파멸을 끌어들이는 행위가 되었다.
3. 현대 비즈니스의 만천과해: 혁신과 자본의 무대
현대의 전쟁터인 비즈니스 세계에서 만천과해는 더욱 정교한 모습으로 발현된다.
가. 글로벌 사례: 애플(Apple)의 무대
2007년 스티브 잡스는 미완의 프로토타입 아이폰을 들고 무대에 섰다. 소프트웨어는 불안정했고, 특정 순서로만 작동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완벽한 신제품 발표회’라는 지극히 관습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경쟁사와 대중이라는 하늘은 그의 자신감 넘치는 연기에 속아 넘어갔다. 그 사이 애플은 ‘불안정한 기술’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건너 스마트폰 시장의 패권을 거머쥐었다. 만약 그가 "아직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면, 혁신의 파도는 그 자리에서 잦아들었을 것이다.
나. 한국 사례: 쿠팡(Coupang)의 적자
쿠팡은 창업 초기, 수조 원의 적자를 감수하며 물류망을 구축했다. 경쟁사들은 이를 ‘지속 불가능한 출혈 마케팅’이라며 그들의 종말을 예견했다. ‘더 빠른 배송’이라는, 이커머스 기업의 당연한 경쟁 활동처럼 보이는 그 행위 뒤에 쿠팡의 진짜 야망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유통의 혈맥을 장악한다’는 거대한 목표였다. 경쟁자들이 그 본질을 깨달았을 때, 쿠팡은 이미 독점적 인프라라는 바다를 건넌 뒤였다. 적자는 목표를 위한 연막이었을 뿐이다.
4. 세계사적 관점: 노르망디에 상륙하라
만천과해의 원리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보편적 전략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만천과해였다. 연합군은 상륙작전의 진짜 목표인 노르망디를 숨기기 위해 ‘오퍼레이션 포티튜드(Operation Fortitude)’라는 기만 작전을 펼쳤다. 가짜 상륙부대, 고무 탱크, 허위 무선 교신을 통해 히틀러의 눈을 파드칼레 지역으로 돌렸다. ‘적의 주력은 가장 가까운 곳을 노릴 것’이라는 상식적인 판단, 그 하늘의 눈을 완벽히 속인 것이다. 독일군이 파드칼레라는 허상에 묶여 있는 동안, 연합군의 주력은 진짜 목표인 노르망디의 피비린내 나는 바다를 건넜다.
5. 결론: 어떻게 이 칼을 쓸 것인가
만천과해는 단순히 상대를 속이는 기만책이 아니다. 목표 달성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항과 마찰을 최소화하는 고도의 지혜이다.
▶ 실용적 활용 팁
가. 거대한 변화를 ‘파일럿 테스트’로 위장하라: 조직의 저항이 예상되는 혁신은 ‘전사적 도입’ 대신 ‘일부 팀의 효율성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라. 작은 시도라는 일상의 가면 뒤에서,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나. 중요한 협상에서 ‘가짜 목표’를 던져라: 진짜 원하는 것을 숨기고, 상대가 물고 늘어질 만한 덜 중요한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라. 상대의 에너지가 가짜 목표에 소진되는 동안, 수면 아래에서 진짜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
다. 거창한 목표를 ‘사소한 습관’으로 쪼개라: ‘매일 운동 1시간’이라는 목표가 버겁다면, ‘퇴근 후 무조건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는 지극히 사소한 행동을 목표로 삼아라. 그 일상적 행위가 결국 당신을 운동이라는 바다로 이끌 것이다.
▶ 윤리적 경계
이 강력한 칼에는 반드시 윤리라는 칼집이 필요하다. 만천과해는 공동체의 이익과 가치 창출을 위해 쓰여야 하며, 고객을 기만하고 동료를 해치는 사기 행각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잡스가 용서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기만이 결국 세상을 바꾼 위대한 제품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전략의 끝이 선(善)한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지혜와 기만의 경계 위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는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
조우성 변호사
* 인포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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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천과해
瞞天過海
가장 치명적인 칼은 보이지 않을 때다.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해 보이는 일상의 장막 뒤에 진짜 목표를 감추고, 누구의 저항도 받지 않은 채 거대한 난관을 건너는 것이 만천과해의 정수다.
전략의 핵심
보이지 않는 힘
하늘(天)은 경계하는 적의 시선이며, 바다(海)는 넘어야 할 거대한 난관이다. 요란한 속임수가 아닌, 당연함의 가면이 진짜 무기다.
일상의 가면
상대의 심리적 약점을 파고들어 경계심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 핵심이다. 평범함이라는 완벽한 위장막 뒤에서 목표를 달성한다.
역사 속의 만천과해
설인귀, 황제의 바다를 가리다
고구려를 치러 나선 당 태종은 거친 파도를 보고 원정을 포기하려 했다. 명장 설인귀는 땅 위에 거대한 장막을 치고 연회를 열었다.
"황제를 위한 연회라는 지극히 당연한 충심의 행위가 바다를 건넌다는 거대한 군사작전을 완벽하게 위장했다"
제갈량, 제사를 빙자해 강을 건너다
남만 정벌에서 제갈량은 맹획의 군대가 지키는 강을 건너기 위해 강가에서 성대한 제사를 지내는 척했다.
"신성한 의식이라는 일상적 행위가 날카로운 군사적 비수가 되었다"
트로이, 스스로 파멸을 끌어안다
그리스군은 10년의 공방 끝에 철수하는 척하며 거대한 목마를 남겼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는 종교적 관습이 의심을 잠재웠다.
"전쟁의 끝이라는 모두가 바라던 일상으로의 복귀가 결국 성벽 안으로 파멸을 끌어들이는 행위가 되었다"
현대 비즈니스의 만천과해
애플의 무대
스티브 잡스는 미완의 프로토타입 아이폰을 들고 무대에 섰다. 소프트웨어는 불안정했지만 '완벽한 신제품 발표회'라는 관습적 무대를 연출했다.
결과: 불안정한 기술이라는 바다를 건너 스마트폰 시장의 패권을 거머쥠
쿠팡의 적자
쿠팡은 창업 초기 수조 원의 적자를 감수하며 물류망을 구축했다. 경쟁사들은 이를 '지속 불가능한 출혈 마케팅'이라 여겼다.
진짜 목표: 대한민국 유통의 혈맥을 장악하는 독점적 인프라 구축
세계사적 관점: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만 작전
'오퍼레이션 포티튜드'로 히틀러의 눈을 파드칼레 지역으로 돌림
허위 정보
가짜 상륙부대, 고무 탱크, 허위 무선 교신으로 완벽한 위장
진짜 목표
독일군이 허상에 묶인 동안 노르망디의 피비린내 나는 바다를 건넘
실용적 활용법
거대한 변화를 '파일럿 테스트'로 위장하라
조직의 저항이 예상되는 혁신은 '전사적 도입' 대신 '일부 팀의 효율성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라.
중요한 협상에서 '가짜 목표'를 던져라
진짜 원하는 것을 숨기고, 상대가 물고 늘어질 만한 덜 중요한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라. 상대의 에너지가 가짜 목표에 소진되는 동안 수면 아래에서 진짜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
거창한 목표를 '사소한 습관'으로 쪼개라
'매일 운동 1시간'이라는 목표가 버겁다면, '퇴근 후 무조건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는 지극히 사소한 행동을 목표로 삼아라.
윤리적 경계
이 강력한 칼에는 반드시 윤리라는 칼집이 필요하다. 만천과해는 공동체의 이익과 가치 창출을 위해 쓰여야 하며, 고객을 기만하고 동료를 해치는 사기 행각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잡스가 용서받을 수 있었던 이유:
그의 기만이 결국 세상을 바꾼 위대한 제품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전략의 끝이 선(善)한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지혜와 기만의 경계 위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는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 고대의 지혜가 현대의 통찰이 되는 순간, 만천과해는 단순한 속임수를 넘어 변화를 이끄는 리더십의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