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 이야기] 마크 로스코의 '오렌지, 레드, 옐로우'
김수련: 지영 씨,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오셨나요?
박지영: (한숨을 쉬며) 선생님, 10년 다닌 회사를 얼마 전에 그만뒀어요. 나름 안정적인 직장이었는데... 더 이상 성장이 없다고 느껴서 결심했는데, 요즘은 제가 잘한 선택인지 불안해요.
김수련: 오랜 시간 몸담았던 곳을 떠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을 거예요. 그 과정에서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박지영: 맞아요. 가끔은 해방감도 느끼다가도, 문득 허무함이 밀려와요. 제가 쌓아온 경력이 무의미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방향을 잡기 어려워요.
김수련: 지영 씨의 그 감정을 더 탐색해보면 좋겠어요. 오늘은 특별히 한 작품을 같이 보려고 해요. (태블릿을 보여주며) 이 작품은 마크 로스코의 '오렌지, 레드, 옐로우'라는 작품이에요.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죠.
박지영: (그림을 유심히 보며) 특별한 형태는 없고 그냥 색만 있네요...
김수련: 네, 로스코는 형태나 구체적인 이미지 대신 색채만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보시다시피 붉은 오렌지색, 따뜻한 레드, 그리고 밝은 노랑이 층을 이루고 있죠.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색상들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서로 번지고 융합되면서도 각자의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어요.
박지영: 그러고 보니 어디서 한 색이 끝나고 다른 색이 시작되는지 분명하지 않네요.
김수련: 지영 씨의 현재 상황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끝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경계에 있지만, 그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아요. 두 시기가 자연스럽게 융합되고 있는 거죠.
박지영: (잠시 생각하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이 바로 이런 거였네요.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시간...
김수련: 이 그림에서 어떤 색이 가장 끌리나요?
박지영: 음... 위쪽의 노란색이요. 밝고 따뜻해 보여서요.
김수련: 흥미로운 선택이네요. 노란색은 종종 희망, 가능성, 새로운 시작을 상징해요. 지영 씨 안에 불안함 너머의 기대감도 함께 있는 건 아닐까요?
박지영: (놀란 표정) 사실... 맞아요.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설레는 마음도 있어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김수련: 로스코의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색들의 미묘한 변화와 깊이감이 깊은 감정적 울림을 줘요. 지영 씨의 현재도 마찬가지예요. 겉으로는 단순히 '퇴사'라는 사건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감정의 층이 있고 깊이가 있죠.
박지영: 그렇게 보니 제 상황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네요. 전환기라기보다는... 여러 색이 섞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
김수련: 정확해요. 로스코의 색들이 서로 경계를 허물고 섞여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하듯, 지영 씨의 이전 경험과 새로운 도전도 결국 지영 씨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요? 과거의 경험이 의미없어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밑거름이 되는 거죠.
박지영: (미소 지으며) 정말 그렇네요. 선생님, 오늘 이 그림을 통해 제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불안함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 시간이 저를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수련: 변화의 시간을 건너는 건 쉽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음 시간에는 지영 씨가 직접 이런 감정들을 색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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