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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정의란 무엇일까(1)

법률지식정보/법과 정의

by 조우성변호사 2012. 1. 5.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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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정의란 무엇일까

제1주제 : 親日재산 국가환수, 과연 정의에 부합하나?

제1회차

정의란 무엇일까 연재 취지 : http://jowoosung.tistory.com/317

▷ 등장인물

윤호상 소장(인사 PR 연구소)

 

정연광 대표(주식회사 스킨미소)

 

조우성 변호사


# 1. 도입

우리는 심심찮게 친일파 후손들 재산이 국가로 귀속되는 문제와 관련해서 재판이 진행되고, 그 결과 친일파 재산이 국가로 환수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친일파 후손들이 이겼다는 식의 신문기사를 보게 됩니다. 친일파 후손 재산의 귀속 문제, 여기에는 어떤 다양한 고민들이 숨겨져 있을까요?


# 2. 연좌제 아닐까?

윤호상 : 친일파들 재산 환수하는 거,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나쁜 짓을 해서 번 재산이면 당연히 환수되는 게 맞죠. 이건 사회정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거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잔재가 청산이 안돼서, 계속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불끈!


정연광 : 물론 친일파들이 나쁘긴 하죠.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친일파 재산을 국가가 뺏어간다? 그거 좀 문제가 복잡하지 않을까요?


윤호상 : 문제가 복잡하긴 뭐가 복잡합니까?
친일파면 친일파. 그리고 그 친일파가 갖고 있는 재산은 싸그리 국가가 환수해서 좋은 데 쓰는 게 맞죠.



정연광 : 만약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친일파였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친일행위로 인해 재산이 생겼어요. 그렇게 해서 취득한 것이 1910년이라고 합시다. 그리고 그 후 시간이 흘러 2012년이 되었고, 후손들이 그 땅을 보유하고 있는데, ‘너네 증조할아버지가 친일파였으니 그 땅을 이제 국가가 가져가겠다!라고 말하는 거, 그거 후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엄밀히 말하면 그 땅은 이제 후손땅인데(소유권이 대를 이어 넘어왔으니), 너네 증조 할아버지 잘못으로 국가가 가져간다고 하면. 그... 뭐죠? 연좌제? 맞다. 연좌제! 연좌제 아닌가요?


윤호상 : 에이, 연좌제는 아버지가 월북인사거나 뭐 그럴 때 아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거 잖아요? 이 경우는 연좌제 아니지 않나요?


정연광 : 뭔가 좀 찜찜합니다. 조 변호사님.
일단 기본적으로 내 잘못도 아닌데, 할아버지 잘못으로 인해 내가 책임을 진다는 구조. 이거 뭔가 연좌제적인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봐야 할까요?



# 3. 연좌제에 대한 일반적 고찰


가. 의미


우선 연좌제(緣坐制, implicative system)에 대해서 한번 알아볼까요?

연좌제는 범죄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 자까지 함께 형사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군대에서 말하는 단체기합 비슷한 거죠. 물론 그 정도는 훨씬 세지만. 고대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범죄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 자까지 함께 형사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가 있었답니다.


나. 역사적인 기원


중국에서는 전국시대에 이미 연좌제가 시행된 기록이 《사기(史記)》에 보입니다. 즉,
진(秦)의 상앙(商鞅)이 국민을 10호 · 5호로 조직하여, 그 중 1인이 죄를 지었을 때 다른 사람도 처벌하였던 이른바 십오지제(什伍之制)가 그 예입니다.



그 후 이 연좌제는 당률(唐律)에 계승되었고, 당률은 명률 · 청률로 답습되었으며, 한국과 일본은 이 당 ·명 · 청률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다. 삼족, 구족을 멸하라.


우리나라도 근대형법이 시행되기 전인 조선 후기까지 연좌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예컨대, 반역죄를 범한 자의 친족 · 외족 · 처족 등 3족이 연루하여 처벌을 받던 것이지요. 우리가 사극을 보면, 왕이 어명으로 ‘3족을 멸하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바로 대표적인 연좌제입니다.


때로는 친족뿐만 아니라 교우(交友)·학파(學派) 또는 출신 향리(鄕里) 등의 관계로 연루되어 화를 입는 일이 많았고, 그 결과 반역자의 향리를 군(郡)에서 현(縣)으로 강등시키는 등 향리인 전체가 불이익한 처우를 받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족을 멸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구족을 멸하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황제의 권력에 도전한 대역죄인의 최고 형벌은 당사자를 중심으로 혈연관계에 있는 9족을 모두 멸하는 ‘주구족’(誅九族)이었습니다.


주구족은 수(隋) 양제가 처음 입법했습니다.


그 전엔 진시황이 정한 ‘주삼족‘(誅三族)의 형벌에 따라 대역죄인 본인과 아들, 손자까지 처형했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주십족‘(誅十族)을 시행했던 이가 바로 명(明) 3대 황제 영락제(永樂帝)였습니다.



대학자 방효유(方孝孺)가 황제의 취임사 쓰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모욕까지 한 일이 벌어지자 영락제는 크게 노하여 “莫說九族 十族何妨(구족에 머물지 말고 십족까지 나아가라)”고 칙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십족은 혈족인 구족이외 제자와 친구까지도 모두 연루시키라는 말입니다. 무섭지요?


라. 좀 더 폭넓은 연좌제의 의미


연좌제라 할 때, 좁은 의미로는 친족관계로 연루되어 형사책임을 지는 제도를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친족 이외의 자의 형사책임뿐만 아니라 기타 불이익한 처우를 받는 경우까지도 모두 포함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즉, 단순히 친족이 ‘형사책임’을 지는 것 외에 기타 사회적으로 불이익한 처우 전체를 연좌제라고 합니다.


마. 연좌제의 공식적인 폐지


근대형법은 형사책임개별화의 원칙(형사책임은 행위자 본인만이 져야 한다)에 따라 연좌제를 금지하였습니다.

한국에서 (형사처벌에 대한) 연좌제도가 폐지된 것은 1894년의 갑오개혁 때입니다.



그 해 6월 칙령(勅令)으로 “범인 이외에 연좌시키는 법은 일절 시행하지 마라(罪人自己外緣坐之律一切勿施事)”고 하는, 일종의 형사책임개별화원칙이 선언됨으로써 연좌제가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광복 이후에도 여러 번 문제가 되었고, 형사책임 이외의 불이익한 처우를 과하는 일이 다분히 많았습니다.


예컨대
, 사상범의 가족 또는 친족임이 신원조회에서 밝혀지면 고급공무원으로 임명이 거부되거나, 해외여행이나 출장 등을 제한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불이익한 처우는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특수사정에 기인한 것이나, 근대법 원리에는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제5공화국 헌법에서는 국민총화를 기하려는 취지에서, 국민이 연좌제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특별히 금지 규정을 신설하게 되었답니다.


# 4. 연좌제가 헌법에도?


윤호상 : 거참, 깊이 따져들어 보니 연좌제라는 것도 꽤나 복잡하네요?


정연광 : 소설들을 보면 주인공의 아버지가 월북인사라서 주인공이 여러면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를 흔히 접하게 되지요.


윤호상 : 일단 친일문제와는 별도로 ‘연좌제’는 좀 문제가 있긴 있는 것 같네요. 내 일도 아닌데 책임을 진다는 것은 좀...


정연광 :
그럼 우리 헌법에도 연좌제 금지 규정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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