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리고 여전히 모자란 우리의 반성
우연히 집에서 굴러다니는 수필집 '반성'이라는 책을 폈다.
여러 문인들이 자신들의 '반성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작품이었다.
그 첫번째 작품이 소설가 '서석화'씨의 '어머니의 문안전화'라는 짧은 글이다.
항상 밤늦게까지 소설작업을 하는 혼자 사는 딸을 위해 노모가 아침 10시면 문안전화를 한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1
“우리 딸, 엄마가 잠 깨운 건 아니냐?”
보증수표처럼 음절 하나도 다르지 않는 첫 마디. 밤에 글 쓰고 새벽이면 잠드는 딸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신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문을 여셨다. “아니에요, 엄마. 일어난 지 벌써 한 시간쯤 됐어.”
역시 전날과 토씨 하나도 다르지 않게 나오는 내 대답이다.
일찍 일어났다는 대답만으로도 나에 대한 어머니의 걱정을 줄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이미 안다.
자는 걸 아파서 누워 있는 것과 동일시하는 어머니에겐 내가 몇 시에 잠들었건 나는 늘 깨어 있어야 했다.
어쩌다 잠결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게 될 때에도 내 첫 대답은 똑같았다. 잠에 취해 있는 중에도 벨이 울리고 어머니의 번호란 게 확인되면 나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목부터 풀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물을 마신 뒤에야 말짱한 목소리로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아파서 기진맥진해 누워 있을 때도 그랬고, 밤새 위경련으로 온몸을 말아 엎드려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말짱한 목소리로 어머니의 전화를 받을 것! 모시지 못하는 불효를 먼지 한 톨만큼이라도 만회하려는 나대로의 의지였을까?
춥지? 라고 어머니가 물으면 안 추워, 라고 대답했고, 덥지? 라고 물으면 안 더워, 밥은? 이라는 물음엔 무조건 방금 먹었어, 너무 똑 같은 대답이라 들킬 것 같으면 지금 하고 있어, 어디 아픈 덴 없냐고 하시면 완전 건강, 이라며 일부러 소리 내어 웃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어머니의 아침 전화를 받을 때면 발신자와 수신자가 바뀐 것 같은 송구함에 마음이 쓰리다.
이어 작가는 매번 시간을 맞춰 전화하시는 어머니에게 그 시간, 10시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는 점을 세심하게 짚어낸다.
#2
10시에 걸려오는 어머니의 전화가 한 시간 뒤에 걸려오면 좋겠다고 부담스러웠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나의 10시와 어머니의 10시가 다른 것은 생각지 못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이라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새벽 예배를 드리고 이른 아침식사를 하신 뒤에도, 10시까지 세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걸 나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듣고 싶은 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꼬박 세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요양원 생활에서는 대낮이라는 10시에 어머니는 설레는 마음으로 내 번호를 누르셨을 텐데 말이다.
그 다음에 이 수필 전편을 통해 가장 내 가슴을 후벼파는 대목이 등장한다.
#3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이 말을 많이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궁금한 게 많다는 말도 들은 적 있다.
더 애틋한 사람이 걱정도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 보면 늙고 병든 어머니가 말도 더 많이 하시고 궁금한 것도 더 많으시며 내 걱정도 더 많이 하신다.
나는 그저 예, 예, 하다가 기껏 통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한다는 말이 건강 조심하시라는 뜬구름 같은 소리만 할 뿐이다.
어느날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오지 않고, 요양원으로부터 어머니가 정신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작가는 미친듯이 안동의 요양원으로 달려 내려간다.
거기서 원장님 사모님으로부터 어머니의 휴대폰을 건네 받는다.
#4
어머니의 핸드폰을 받아 폴더를 열어 통화 버튼을 눌러본 순간 나는 핸드폰을 가슴에 안은 채 다시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온통 내 이름뿐인 통화 내역, 하루 한 번 아침 10시에 딸의 목소리를 듣는 게 낙이었을 어머니의 가난한 시간이 바로 내 눈 앞에서 떨고 있었다.
사모님이 돌아간 뒤 나는 중환자 보호자실에서 내 핸드폰과 어머니 핸드폰을 동시에 열어보았다.
우리 엄마라는 이름 외에 다양한 이름으로 걸려오고 또 내가 건 통화 내역이 저장된 내 핸드폰과, 열흘 전에도 그 전에도 내 이름으로만 발신된 어머니 핸드폰.
하루 한 번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하루치의 안부를 주고받았다는 안도감과 해방감 속에서 아침 10시 이후에는 어머니를 잊고 살았다는 자각이 뼈아프게 밀려왔다.
작가는 그 동안 쓸데없이 인색했던 자신의 무관심과 야속함을 통렬히 반성한다.
# 5
어머니 핸드폰이 내 이름으로 개설된 거라 요금도 당연히 내가 내는 것을 알고 계신 탓에 아침에 한 번 전화를 하시면서도, 행여 요금이 많이 나올까 걱정하시던 어머니.
“오늘은 안 해야지 하면서도 내 딸 목소리는 들어야 살 것 같아서 또 했다.”
“안 하기는 왜 안 해요? 엄마 전화 받아야 나도 살 수 있는데?”
“통화료 많이 나올까 봐 그러지.”
“그런 걱정 안 해도 돼요. 하루 몇 번이라도 엄마 하고 싶을 때 해.”
“그래도 그건 안 돼지. 하고 싶을 때마다 하면 하루 열 번은 해야 될 거다, 아마.”
“그럼 열한 번만 하세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두 번만 할까, 그럼?”
다행히 어머니는 급한 고비를 넘기고 다시 요양원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작가는 마음을 쓸어 내리면서, 어머니의 아침문안전화가 주는 깊은 의미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 6
어머니의 아침 10시 문안 전화는 다시 계속되고 있다.
가끔은 10시 이전에 내가 먼저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나는 어머니의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딸이 어머니의 문안 전화를 받는 호사를 나 자신에게 누리게 하고 싶은 것도 이유지만, 10시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시간도 지켜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할 수 있고, 당신 전화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 누군가가 한 점 혈육인 딸일 때, 그것이 어머니 자신이 삶을 붙들어야 하는 이유가 되고 또 그런 이유로 더욱 무장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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