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던 내용이다.
이방원이 좀 더 현명한 설득법을 구사했다면
정몽주를 죽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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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8년,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한 이후에,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한 편가르기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든 대상을 만났으니 그가 바로 포은 정몽주이다.
이성계의 입장에서 정몽주는 제거하기엔 아깝고 그냥 두기엔 위험한 인물이었다.
이에,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이 나서서 자신이 요령껏 정몽주를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당시 정몽주는 50대 중반인 반면 이방원은 20대 중반이었다.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호감을 갖기엔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났고, 그리고 성향도 달랐다. 여러모로 둘은
물과 기름이었다.
우리도 잘 아는 이야기지만 이방원이 먼저 정몽주에게 시조 한 수를 보낸다.
그것이 바로 '하여가'. 일종의 최후통첩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 시에서는 이방원의 호탕한 마음이야 드러나지만
정몽주의 처지나 속사정은 전혀 헤아리지 않은 일방고백이다.
군자란 자고로 대의명분이 있어야 몸을 움직이는 것일진대
하여가에는 그러한 혁명의 대의명분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가 하나로만 보면, 이방원에게 있어 역성혁명은
백성을 위해서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아니고,
오로지 개인의 부귀와 안락을 위한 방편일 뿐인 것이다.
이런 논리에 종1품 문하시중을 지낸 인물이 동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권력이나 재물도 이미 누릴만큼 누린 사람에게
시정잡배 다루듯이 접근했으니 어찌 설득이 되겠는가.
한비자는 자신의 저서 '세난편'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명예를 중시 여기는 사람에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설득하면 실패한다. 왜냐하면 그 설득자를 비천하고 비루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정몽주의 답 시조가 바로 그 유명한 단심가.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는 이 시조를 쓰면서 아마도 이미 죽음을 예감했으리라.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설득과 협상의 한 예로서
위 사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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