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에서 배우는 인생 이야기 -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소송에서 배우는 인생 이야기 -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 1

W사의 오00사장은 3년 전 내게 ‘직원의 이직(移職)과 영업비밀’에 관한 사항을 질문했다.

‘W사의 경쟁사인 K사에서 핵심 개발팀장으로 있던 박00과장이 W사로 이직하려고 의사를 타진해 왔는데, 법적으로 문제점이 없는가?’

박과장은 K사의 연구과정에 실질적으로 오랫동안 관여한 사람이라고 했다.

# 2

나는 오사장에게 박과장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를 배신하려는 건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면서 이 문제를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사장은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법적인 부분만 좀 방어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 3

그래서 나는 법률검토에 돌입했다. 다행히도 박과장은 전직장에서 '동종업체 취업금지 서약서'를 작성하지는 않았었다. 박과장이 K사에서 연구한 연구실적도 ‘영업비밀’로서 제대로 관리가 안되어 있었다(별도의 관리자가 없었고 통제장치도 없었다).

K사는 박과장에게 '당신이 만일 W사로 간다면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문제 삼겠다'는 식으로 공격을 했지만, 나는 K사에 반박 내용증명을 보내서, '당신들이 말하는 정보는 영업비밀로서의 정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영업비밀로 시비를 걸면 협박이나 공갈로 맞고소하겠다'는 식으로 방어전을 펼쳤다.

결국 치열하게 방어한 끝에 박과장은 W사에 무사히 입사할 수 있었다.

오사장은 아주 통쾌해했고, 박과장은 K사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오사장의 전폭적인 신뢰 하에 W사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 4

그로부터 2년 뒤, 오사장은 다급히 나를 찾아왔다. 박과장이 이번에는 W사의 다른 경쟁사인 A사로 몰래 이직을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 동안 W사에서 연구한 실적이 유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오사장은 박과장을 상대로 공격할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인지 찾아달라고 의뢰했다. 이번에 나는 공격자 입장에서 영업비밀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사장이 박과장을 신뢰한 나머지 그로부터 '동종업체 취업금지 서약서'를 받지도 않았고, W사 내부적으로 영업비밀에 관한 관리체계도 전혀 갖추지 않았던 것이다.

# 6

박과장은 이미 K사에서 W사로 이직할 때, 경쟁사 이직시 문제될 수 있는 다양한 쟁점에 대해 사전 교육이 되어 있던 상황이라, 이번에는 아주 자신 있게 다른 경쟁사로 더 비싼 몸값을 받고 이직하려 한 것이다. 박과장의 이직을 막기 위해 다양한 법리를 고민해 봤으나, 워낙 W사에서 영업비밀 보호와 관련한 아무런 사전조치를 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거의 없었다. 박과장은 아주 여유만만하게 W사에서 A사로 이직을 할 수 있었다.

# 7

사람의 이기적인 본성을 깊이 통찰한 한비자 역시 이에 주목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증종자(曾從子)는 칼을 잘 감정(鑑定)하기로 이름이 높다.

그는 오(吳)나라 왕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위(衛)나라 왕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오나라 왕은 검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제가 오나라에 가서 칼을 감정해 주는 척하다가 칼을 뽑아 오나라 왕을 찔러 죽이겠습니다."

하지만 위나라 왕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그렇게 하려는 것은 너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이다. 오나라는 강국이고 부유하지만 위나라는 약하고 가난하다. 그러므로 이익 때문이라면 차라리 오나라로 건너가 오나라 왕을 섬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네가 만약 오나라로 간다면 이번에는 같은 방법으로 오나라 왕을 위해 나를 찔러 죽이려고 할 것이 아닌가?”

위나라 왕은 그 즉시 거절하고 증종자를 추방하고 말았다.

# 9

이익에 따라 쉽게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은, 언제든 그 조건이 충족되면 다시 신의를 저버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눈 앞의 큰 이익이 현명한 판단력을 가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독배(毒杯)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