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이 만든 기적]
1939년, 버클리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하던 조지 단치그는 통계학 강의에 지각했다. 교수가 칠판에 적어놓은 두 문제를 숙제로 착각한 그는 고민 끝에 그중 하나를 풀어냈다. 나중에야 그것이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은 난제였음을 알게 된다. 단치그의 스승인 네이만 교수는 어느 날 아침 문을 두드리며 흥분했다. "단치그, 내 논문에 당신 증명을 넣었네. 당신이 반대하지 않길 바라네!" 단치그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해냈는지 깨달았다. 착각이 빚어낸 기적의 순간이었다.
착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종의 '앎의 무지'가 아닐까. 알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알게 되는 역설.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만을 안다"고 했지만, 동양에서는 공자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단치그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모른다는 사실마저도 몰랐다'. 그리고 그 무지의 무지가 기적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이것이 단치그가 선형 프로그래밍이라는 혁신적 수학 이론을 창시할 수 있었던 비결일지도 모른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공군의 효율적 작전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이 이론을 발전시켰다. 불가능해 보이는 복잡한 문제도 단순한 방정식의 집합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통찰. 그것은 현대 경제학과 경영학의 기초가 되었다.
우리는 너무 많이 안다. 한계를 안다. 불가능을 안다. 실패를 안다. 그래서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한다. 지식이 때로는 창조의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물동이에 물이 가득 차면 더 이상 물을 담을 수 없듯이, 앎으로 가득 찬 머리는 새로운 생각을 담을 공간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은 한계를 모른다. 불가능을 모른다. 그래서 마법의 세계에 산다. 종이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고, 별을 따서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앎의 무지'가 창조의 원천이 된다. 피카소가 "나는 아이들처럼 그리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치그의 착각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불가능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앎이 당신을 얼마나 가두고 있는가? 만약 당신이 그 불가능을 모른다면, 혹은 모른 척한다면 어떨까?
인생은 때로 착각 속에서 진실을 발견한다. 미지(未知)가 기지(旣知)를 뛰어넘는 순간이 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종종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을 때다. 마치 백지 위에 쓰는 첫 글자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마음으로 시작할 때 비로소 새로운 해답이 피어난다.
오늘, 당신 앞에 놓인 문제는 어떤 것인가? 그것이 풀 수 없는 난제라고 누가 말했는가? 혹시 당신은 그저 그것이 풀 수 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 반대로 풀 수 있다고 '착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단치그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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