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시루,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
깨진 시루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타증불고(墮甑不顧)'라는 고사성어가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미련에 대한 충고 같았다.중국 후한 시대의 맹민은 시루를 깨뜨리고도 뒤돌아보지 않고 갈 길을 갔다. 그의 행동을 본 곽태는 그에게서 비범함을 봤다. 맹민은 후에 삼공의 자리에 올랐다. '이미 깨진 것을 돌아본들 무엇하겠느냐'는 그의 말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지혜로 들렸다.
서양의 근대 정신이 과거의 속박을 끊고 미래로 나아가는 '극복과 성취'에 집중했다면, 맹민의 '타증불고' 역시 과거에 묶이지 않고 현재와 미래로 가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었다.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깨진 시루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실수하고, 실패하고, 소중한 것을 잃는 경험을 한다. 그때마다 맹민처럼 미련 없이 털고 일어설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간은 감정에 흔들리는 존재다. 공들여 쌓은 것이 무너졌을 때, 관계가 깨졌을 때, 놓쳐버린 기회가 눈앞에 아른거릴 때, 미련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깨진 시루의 파편처럼 흩어진 마음의 조각들을 외면하며 나아가는 것은 때로는 지혜로운 결단이 아니라, 아픔을 억지로 누르는 고통스러운 과정일 때가 많았다.
'타증불고'는 지혜를 말하지만, 그 안에는 미련과 후회라는 인간적인 마음과의 힘겨운 싸움이 숨어 있는지도 몰랐다.동양의 사유는 '내려놓음'과 '비움'을 강조했다. 소유하려 들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타증불고' 역시 이러한 동양적 '내려놓음'의 한 형태일 수 있었다. 이미 깨져버린 시루, 즉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을 내려놓음으로써 현재와 미래라는 빈 공간을 얻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지혜가 담겨 있었다.
서양의 '채움'과 '성취'가 빈 공간을 목표로 채워나가는 과정이라면, 동양의 '비움'과 '내려놓음'은 이미 채워진 것을 비워냄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었다.현대를 사는 우리는 맹민보다 더 많은 '깨진 시루'를 마주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실패가 되고,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의 정보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쫓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쉽게 버리고 잊는다. '타증불고'의 정신은 이러한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잊으라는 차가운 명령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깨진 시루의 파편 속에서 '깨짐'이라는 현상 자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성찰의 기회일지도 모른다.깨진 시루는 더 이상 물을 담지 못한다. 하지만 그 깨진 조각들은 햇빛에 반사되어 다른 빛깔을 낼 수 있고, 다른 형태로 다시 만들어질 수도 있다. 과거의 실패와 상실은 아프지만, 그것을 통해 무엇이 중요했는지,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를 배운다.
미련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어렵지만, 그 미련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타증불고'는 어쩌면 깨진 시루를 돌아보지 않는 '결단' 이전에, 깨진 시루를 통해 '무엇이 깨졌고, 왜 깨졌으며,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성찰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맹민은 깨진 시루를 돌아보지 않았기에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깨진 시루를 통해 얻은 깨달음 위에서 더 단단해졌을 것이다.
우리 역시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깨진 시루' 앞에서 완전히 초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아쉬움과 미련 속에서도 '타증불고'의 지혜를 떠올리며, 깨진 조각들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깨진 시루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과거를 완전히 잊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상실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발견하고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인간적인 고뇌가 담긴 성장의 다른 이름일 수 있었다.
타증불고 (墮甑不顧)
깨진 시루,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
고사의 유래
- 중국 후한 시대 맹민: 시루를 깨뜨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감
- 곽태: 그의 행동에서 비범함을 발견
- 맹민의 가르침: "이미 깨진 것을 돌아본들 무엇하겠느냐"
동서양 사상 비교
서양: '극복과 성취' - 빈 공간을 목표로 채워나가는 과정
동양: '비움과 내려놓음' - 채워진 것을 비워 새 가능성을 여는 과정
타증불고: 동양적 '내려놓음'의 한 형태
현대인의 딜레마
- 인간은 감정에 흔들리는 존재
- 미련과 후회와의 힘겨운 싸움
- 현대 사회: 더 많은 '깨진 시루'를 마주함
깨진 시루의 새로운 의미
- 단순한 과거 망각이 아닌 성찰의 기회
- 깨진 조각들에서 새로운 가능성 발견
- 미련 속에서 소중한 가치 재발견
타증불고의 진정한 의미
- 과거의 상실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발견
- 깨진 경험을 딛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용기
- 성장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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