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시대의 일이다. 갑이란 사람이 비단을 내다팔려고 시장으로 가고 있었다. 반도 가지 못했는데 야속하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피할 곳을 찾지 못한 갑은 하는 수 없이 비단을 펼쳐서 우비처럼 걸쳐 비를 막았다.
그때 저만치에서 한 남자가 달려오는데 몽땅 젖은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을이란 이 사내는 갑에게 자기도 함께 비를 피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갑은 비단 자락을 들어올려 을을 맞아들여서 피를 피하게 했다.
이윽고 비가 개자 갑은 서둘러 비단을 등에 메고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을이 갑의 등짐을 잡아당기며 길을 막았다. 그 비단은 자기 것이니 내놓고 가라는 것이었다. 을은 한사코 그 비단이 자기 것이라고 우겼고, 두 사람 사이에 주먹질까지 오갔다. 구경꾼들이 몰려들었고, 상황은 말로도 주먹으로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 군 태수 설선(薛宣)이 가마를 타고 지나가다가 두 사람이 싸우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싸우게 된 이유를 듣고 난 설선은 “너희 두 사람 말에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럼 그 비단에 무슨 표시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 대답이 모두 같았다. 설선은 “이렇게 하자. 너희들이 모두 그 비단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포기하려 하지 않으니 본관이 판결을 내리겠다. 너희 두 사람 이의 없겠지?”라고 다짐을 받았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설선은 부하에게 칼을 가지고 오게 해서는 비단을 반으로 자르게 하고는 “똑같이 반반씩 나누었으니 더 이상 싸우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설선은 바로 사람을 시켜 두 사람의 뒤를 미행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오게 했다. 갑은 만나는 사람마다 불만이 가득 찬 얼굴로 설선을 욕했다. 반면 을은 싱글벙글하며 비단을 싼값에 팔았다.
염탐꾼의 보고를 들은 설선은 두 사람을 다시 불러들였다.
태수를 욕한 갑은 잔뜩 겁을 먹었다. 그러나 설선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설선은 을을 향해 호통을 치며 당장 곤장을 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물에 빠진 놈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걸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하는데 ‘도적놈이 도리어 몽둥이를 들고 큰소리를 친다’는 뜻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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