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변호사의 비즈니스 하이킥 : 상품을 팔지 말고 관계를 맺어라



●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에서 인용

 #1

사유 재산이 한 인간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뜻했고, 또한 ‘인간을 재는 잣대’로 오랫동안 간주되었던 세상에서, 소유의 의미가 퇴색하게 되면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접속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간형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2

산업생산시대가 가고 문화생산시대가 오고 있다.

앞으로 각광을 받을 사업은 예전처럼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사업이 아니라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화적 체험을 파는 사업이 될 것이다.

 

세계여행과 관광, 테마도시와 공원, 종합오락센터, 건강, 패션, 요리, 프로스포츠와 게임, 도박, 음악, 영화, 텔레비젼,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상 세계, 그리고 온갖 유형의 온라인 오락은 문화적 경험에 대한 접속권을 거래하는 하이퍼 자본주의의 새로운 주역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3

지구 전역으로 뻗어 있는 통신망을 거느린 다국적 미디어 기업은 세계 곳곳에서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을 캐내어 문화 상품과 오락으로 재포장한다.

세계 인구의 1/5은 공상품과 기본서비스를 구입하는 비용과 거의 맞먹는 돈을 문화적 경험에 접속하는 데 쓴다.

 

#4

우리는 경제학자들이 ‘체험’ 경제라고 부르는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 개개인의 삶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 되어 버린다.

기업가는 이 새로운 개념을 고객의 ‘평생가치(lifetime value)’라고 부른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모든 순간을 온갖 형식으로 상품화할 경우 그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이론적으로 따지는 값이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잘게 분할된 상업 구역에서 사들인다.

 



● comment


상품을 파는 것 ->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 관계를 맺는 것


미래의 비즈니스는 이렇게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용문>

1.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이론은 계몽주의의 논리에 또다른 타격을 입혔다.

2. 고전 물리학에서 정의하는 물질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물리적 실체다. 뉴턴의 법칙은 두 입자가 동시에 동일한 장소를 차지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각각의 입자는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면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라고 보기 때문이다.

3. 그러나 20세기 초반에 들어오면 물리적 현상에 대한 이런 전통적 견해는 전혀 새로운 관점 앞에서 맥없이 허물어 진다.

4. 원자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물리학자들은 일정한 공간 안에 딱딱한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 원자라는 지금까지의 통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딱딱한 물질이라고 말해 온 것은 실은 ‘에너지의 패턴’에 불과하다고 물리학자들은 주장했다. 물질처럼 보이는 속성은 피상적 차원에서만 그렇게 드러날 뿐이었다.

5. 물리학자들은 원자가 결코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원자는 지금까지 물리학에서 말해 온 그런 물질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힘들의 집합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6. 그러나 이런 영향관계는 시간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않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가이며 철학자였던 로빈 콜링우드가 지적한 대로, 관계는 <운동의 리듬이 생길 만큼 충분한 시간이 경과>한 뒤에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7. 언젠가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하나의 음은 순간의 차원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나의 음이 어엿한 음으로서 존립하기 위해서는 선행음과 후속음이 필요하다. 

8. 같은 맥락에서 하나하나의 원자가 시간 속에서 성립하는 관계의 집합이라면, <특정한 순간에 하나의 원자는 관계로서의 특징을 전혀 갖지 않게 된다>

9. 따라서 과정과는 무관한 구조라는 낡은 관념은 폐기처분된다. 새로운 물리학은 존재와 운동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정지상태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결국 사물은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10. 새로운 물리학에 따르면 ‘물질’은 ‘에너지의 한 형식’이고 에너지는 순수 활동이다. <공간관계의 정지된 틀> 안에 존재하는 딱딱한 실체라고 하는 양적 관념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11.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공간이 자연의 지배적 특성이라는 관념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공간이 수동적이고 체계적이며 기하학적인 관계를 거느리고 있다는 생각은 얼토당토않다.  자연은 부단히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뀌고 있으며, 따라서 시간과는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가 없다.>

12. 그렇다면 재산은 어떻게 되는가?

물리학자들은 근대 세계의 딱딱한 물리적 현실을 해체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힘을, 활동의 패턴을, 시간 속의 관계를 어떻게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경계선이라는 것이 사회적 허구로서만 존재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내 것과 네 것을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13. 유아기 때 시력을 잃었다가 어른이 되어서 되찾은 사람들은 악몽 같은 경험을 보고한다. 그들의 마음은 각각의 대상을 개별적으로 구분하는 데 숙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을 색깔과 농도가 흐리멍덩하게 섞여 있는 상태로,  끊임없이 변하는 패턴의 만화경으로 지각한다. 모든 것이 과정으로, 운동으로 보인다. 경계를 가진 형체를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14. 결국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뚜렷한 경계선을 가진 대상에 대한 우리의 평범한 지각마저도 실은 학습된 경험이고, 인지능력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15.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이 세상은 주체와 객체, 소유할 수 있는 사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물리학은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철학적 틀을 조용하고도 단호하게 세웠다.

 

<나의 생각>

‘공간과 시간을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시킨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이론,’,

‘ 결국은 물질이 에너지의 변형이라는 E = mc2과  초끈이론’,

‘원자의 구조에 대한 현대 물리학적 이해’

 

이런 것들을 적절히 메타포(비유)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풀어 나가는 리프킨.

본격 물리학자들이 볼 때는 다소 견강부회적인 측면이 있을 지 모르겠으나,  물리학의 엄격성을 아는 일반인들에게는, 물리학에 기댄 이런 설명들은 훨씬 설득력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인용문>

 

1. 탈근대가 현실을 보는 눈은 다르다.  근대와는 전혀 다른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런 가정은 소유에 대한 근대인의 가정을 허물어 뜨리고 인간관계를 접속원리를 중심으로 하여 재구성한다.

2. 우선 탈근대 이론가들은 ‘고정되고 인식가능한 현실’이라는 관념 자체를 부정한다. 20세기에 들어와 독일 과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의 원리로 과학적 논쟁의 불길을 당기면서 계몽주의의 철갑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3.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자연의 비밀을 냉정하게 기록하는 객관적이고 초연한 관찰자(베이컨이 주장한 과학 방법론의 핵심 전제)는, 한 마디로 있을 수 없다.

관찰이라는 행위 자체가 관찰자를 관찰 대상에 직접적으로 연루시키며,

이것은 관찰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4. 하이젠베르크는 관찰을 포함하여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5. 하이젠베르크가 등장한 이후로 이 세계는 수동적 객체와 이것을 인식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베이컨의 생각은 더 이상 설 땅을 잃었다.

6. 우주를 누비고 다니는 독립적 행위 주체들이라는 뉴턴의 생각도 의심받게 되었다. ‘관찰’이라는 행위 자체가 관찰자를 관찰 대상에 연루시킨다면 독립성은 현실이 아니라 허구에 불과하다.

 

<나의 생각>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그리고 관찰자 효과는 결국 주체와 객체의 상호 연관성이 필연적임을 알려 주는 tool이 된다.

결국 세상 만물은 서로 원하든 원치 않든 영향을 주고 살아간다는 것.

‘접속’과 ‘공감’이 왜 필수적인지, 제러미 리프킨은 양자역학의 결과물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멋지게 펼쳐 내고 있다.

 

 

 

<인용문>

 

1. 탈근대가 현실을 보는 눈은 다르다.  근대와는 전혀 다른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런 가정은 소유에 대한 근대인의 가정을 허물어 뜨리고 인간관계를 접속원리를 중심으로 하여 재구성한다.

2. 우선 탈근대 이론가들은 ‘고정되고 인식가능한 현실’이라는 관념 자체를 부정한다. 20세기에 들어와 독일 과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의 원리로 과학적 논쟁의 불길을 당기면서 계몽주의의 철갑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3.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자연의 비밀을 냉정하게 기록하는 객관적이고 초연한 관찰자(베이컨이 주장한 과학 방법론의 핵심 전제)는, 한 마디로 있을 수 없다.

관찰이라는 행위 자체가 관찰자를 관찰 대상에 직접적으로 연루시키며,

이것은 관찰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4. 하이젠베르크는 관찰을 포함하여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5. 하이젠베르크가 등장한 이후로 이 세계는 수동적 객체와 이것을 인식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베이컨의 생각은 더 이상 설 땅을 잃었다.

6. 우주를 누비고 다니는 독립적 행위 주체들이라는 뉴턴의 생각도 의심받게 되었다. ‘관찰’이라는 행위 자체가 관찰자를 관찰 대상에 연루시킨다면 독립성은 현실이 아니라 허구에 불과하다.


 

<나의 생각>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그리고 관찰자 효과는 결국 주체와 객체의 상호 연관성이 필연적임을 알려 주는 tool이 된다.

결국 세상 만물은 서로 원하든 원치 않든 영향을 주고 살아간다는 것.

‘접속’과 ‘공감’이 왜 필수적인지, 제러미 리프킨은 양자역학의 결과물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멋지게 펼쳐 내고 있다.

 

 

<인용문>

1.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이론은 계몽주의의 논리에 또다른 타격을 입혔다.

2. 고전 물리학에서 정의하는 물질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물리적 실체다. 뉴턴의 법칙은 두 입자가 동시에 동일한 장소를 차지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각각의 입자는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면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라고 보기 때문이다.

3. 그러나 20세기 초반에 들어오면 물리적 현상에 대한 이런 전통적 견해는 전혀 새로운 관점 앞에서 맥없이 허물어 진다.

4. 원자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물리학자들은 일정한 공간 안에 딱딱한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 원자라는 지금까지의 통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딱딱한 물질이라고 말해 온 것은 실은 ‘에너지의 패턴’에 불과하다고 물리학자들은 주장했다. 물질처럼 보이는 속성은 피상적 차원에서만 그렇게 드러날 뿐이었다.

5. 물리학자들은 원자가 결코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원자는 지금까지 물리학에서 말해 온 그런 물질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힘들의 집합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6. 그러나 이런 영향관계는 시간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않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가이며 철학자였던 로빈 콜링우드가 지적한 대로, 관계는 <운동의 리듬이 생길 만큼 충분한 시간이 경과>한 뒤에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7. 언젠가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하나의 음은 순간의 차원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나의 음이 어엿한 음으로서 존립하기 위해서는 선행음과 후속음이 필요하다. 

8. 같은 맥락에서 하나하나의 원자가 시간 속에서 성립하는 관계의 집합이라면, <특정한 순간에 하나의 원자는 관계로서의 특징을 전혀 갖지 않게 된다>

9. 따라서 과정과는 무관한 구조라는 낡은 관념은 폐기처분된다. 새로운 물리학은 존재와 운동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정지상태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결국 사물은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10. 새로운 물리학에 따르면 ‘물질’은 ‘에너지의 한 형식’이고 에너지는 순수 활동이다. <공간관계의 정지된 틀> 안에 존재하는 딱딱한 실체라고 하는 양적 관념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11.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공간이 자연의 지배적 특성이라는 관념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공간이 수동적이고 체계적이며 기하학적인 관계를 거느리고 있다는 생각은 얼토당토않다.  자연은 부단히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뀌고 있으며, 따라서 시간과는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가 없다.>

12. 그렇다면 재산은 어떻게 되는가?

물리학자들은 근대 세계의 딱딱한 물리적 현실을 해체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힘을, 활동의 패턴을, 시간 속의 관계를 어떻게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경계선이라는 것이 사회적 허구로서만 존재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내 것과 네 것을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13. 유아기 때 시력을 잃었다가 어른이 되어서 되찾은 사람들은 악몽 같은 경험을 보고한다. 그들의 마음은 각각의 대상을 개별적으로 구분하는 데 숙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을 색깔과 농도가 흐리멍덩하게 섞여 있는 상태로,  끊임없이 변하는 패턴의 만화경으로 지각한다. 모든 것이 과정으로, 운동으로 보인다. 경계를 가진 형체를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14. 결국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뚜렷한 경계선을 가진 대상에 대한 우리의 평범한 지각마저도 실은 학습된 경험이고, 인지능력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15.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이 세상은 주체와 객체, 소유할 수 있는 사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물리학은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철학적 틀을 조용하고도 단호하게 세웠다.

 

<나의 생각>

‘공간과 시간을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시킨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이론,’,

‘ 결국은 물질이 에너지의 변형이라는 E = mc2과  초끈이론’,

‘원자의 구조에 대한 현대 물리학적 이해’

 

이런 것들을 적절히 메타포(비유)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풀어 나가는 리프킨.

본격 물리학자들이 볼 때는 다소 견강부회적인 측면이 있을 지 모르겠으나,  물리학의 엄격성을 아는 일반인들에게는, 물리학에 기댄 이런 설명들은 훨씬 설득력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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