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변호사의 멘토 사마천 : (1) 다다익선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고사성어나 좋은 문장과 제 경험을 엮은 '멘토 사마천'을 연재합니다.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P사의 김이사는 P사의 영업실적 대부분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활달한 성격에 특유의 친화력, 그리고 추진력이 그의 장점.

 

P사의 대표이사는 공학박사 출신의 윤대표. 차분한 성격에 말 수도 적어서 왠만해서는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다.

 

“뭐.. 사실 아무리 제품을 잘 만들어도 잘 팔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 아닙니까? 그리고 잘 만들었다고 잘 팔리는 것도 아니거든요. 문제는 영업입니다. 영업!”

 

한 번씩 회의를 할 때 마다 김이사는 P사의 핵심역량은 윤대표의 기술력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영업력이라는 식의 과시를 자주 했다.

 

그런데 P사 다른 간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김이사는 회사 내에서도 공공연히 그런 이야기를 떠벌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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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를 해하전투에서 격파하고 중원을 통일해서 한나라를 건국한 한 고조 유방.

어느 날 대장군 한신과 한 잔 하면서 좋은 기분에 그에게 한 마디 물어본다.

“장군, 내가 만약 장군처럼 병사를 거느린다면 몇 명 정도 거느릴 수 있겠소?”

 

그러자 정치감각 없는 한신은 잠깐 고민하더니 솔직 담백하게 말한다.

 

“한, 10만 명 정도는 거느릴 수 있으실 겁니다.”

“오호, 그래요? 그럼 대장군께서는 몇 명 정도 거느릴 수 있으신가요?”

 

 

 

 

한신은 여전히 정치감각 없이 툭 내뱉는다.

저요, 전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多多益善(다다익선)입니다.”

“뭐라?...”

 

유방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10만의 장수감에 불과한 과인의 부하가 되었는고?"

 

그러자 상황파악을 한 한신은 서둘러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병사의 장수가 아니오라 장수의 장수이시옵니다. 이것이 신이 폐하의 부하가 된 이유의 전부이옵니다. 또 폐하는 이른바 하늘이 준 것이옵고 사람의 일은 아니옵니다."

 

싸움의 신이었던 한신이 보기에 유방은 도저히 자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으리라. 솔직한 발언이 가져온 어색한 분위기를 돌려보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듯. 유방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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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은 이 부분에서 대장군 한신의 ‘자기과시욕’과 ‘전후 좌우를 살피는 미세한 감각의 부족함’을 은근히 표현하고 있다.

사기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오는 일화이다.

 

결국 한신은 유방에 의해(더 정확히는 그 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토사구팽’(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는다)이라는 말을 남기면서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사실 한신의 처세에서는 그의 좋지 않은 말로(末路)가 예견되고 있었다.

 

윤대표의 전격적인 인사 조치. 이에 불만을 품은 김이사는 P사를 퇴사했다.


김이사는 내게 말한다. 


“그 회사 내가 다 키웠는데, 이런 식으로 나를 내팽개치다니. 토사구팽이 따로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만을 과시하는 우리에게 사마천은 ‘다다익선’ 일화를 통해 신중하고도 사려깊은 처세를 가르치고 있다.

 

오늘 저녁 우리나라 사기 연구의 제1인자인 김영수 교수님을 모시고 특강을 듣게 되었다.


씨줄과 날줄을 촘촘히 엮으면서 시공을 초월하는 김교수님의 강의는 명불허전이었습니다.

 

 

 

 

강의가 다 끝나고, ‘사기 52만 6,500자 중 가장 마음에 남는 글귀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교수님이 답해주신 문장은 바로.

 

“桃李不言   下自成蹊 (도리불언  하자성혜)”

 

였다.

 

 

 

 

그 뜻은 복숭아(桃)와 오얏(李)은 꽃이 곱고 열매가 맛이 좋으므로, 오라고 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그 나무 밑에는 길이 저절로 생긴다는 것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따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史記 李將軍列傳(이장군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漢(한)나라 武帝(무제) 때 李將軍(이장군) 李廣(이광)은 활의 명수로 유명했고, 힘이 세고 몸이 빨랐기 때문에 匈奴(흉노)들은 그를 漢(한)나라의 날아다니는 장수라는 이름으로 漢飛將軍(한비장군)이라고 부를 정도였는데 사마천이 이광을 두고 한 말이며, 이광이 특히 말이 없었기 때문에, 이 속담으로 말이 없는 그의 성실성을 비유해 표현한 것이다.

 

이는 내가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좋아하는 인용구'와도 비슷한 것 같다.

 

무거운 질량을 가진 물체 주위의 시공간은 휘어진다.

그리고 그리로 모든 것들이 모인다.
- 아인슈타인 -

 

 

 





 

 

 

 

 

결국 사람 자체가 갖는 매력과 향취, 즉 에토스가 중요하다는 의미.

 

‘史記’라는 텍스트가 갖는 의미를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끝으로 박경리 선생께서 힘들 때마다 사마천을 마음에 두면서 글을 쓰셨다는 내용은 


처음 듣는 것이었습니다. 박경리 선생의 '사마천' 이라는 시를 올려 드립니다.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 당하고

인생을 거세 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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