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의 시대, 흔들리는 저울의 침묵]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을 본 적이 있는가? 시장의 채소장수가 무게를 재는 그 찰나, 흔들리던 저울추가 마침내 멈추는 그 순간. 정의(正義)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닐까. 균형을 찾아가는 예민한 떨림, 그 미세한 지점에서 드러나는 진실. 바다가 숨을 쉬는 소리처럼 저울의 미세한 진동은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닮았다—그 속에 모든 지혜가 담겨 있는 듯.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내뱉는다. 한비자가 말한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다—라는 이상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법전 속에 갇힌 글자들만 남고, 그 정신은 증발해버린 것인가.
동양의 법 사상과 서양의 법 체계는 출발점이 다르다. 서양의 법이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면, 동양의 법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둘 모두 근본에는 '균형'이라는 동일한 가치가 숨어있다.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들고 있는 저울과 맹자가 말한 '권형(權衡)'은 다른 듯하지만 같은 이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한비자는 법이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법은 권력자의 도구가 아니라 권력을 제어하는 장치였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누군가는 가벼운 처벌을 받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무거운 형벌을 받는다. 저울이 기울어진 것이다. 눈 내리는 소리는 천 개의 종이 동시에 흔들리는 것처럼 고요하지만, 법의 울림은 그토록 고요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을 넘어 힘과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법정에서도 비싼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탄식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법은 정말 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법의 본질은 균형과 조화에 있다. 양팔저울이 정확한 무게를 찾아가듯, 법 또한 끊임없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정의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성찰을 통해 조금씩 다가가는 이상향이다.


한비자의 '법불아귀'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가치다. 법이 권력에 아부하지 않기 위해서는 법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깨어있는 양심과 시민들의 끊임없는 감시가 필요하다. 저울이 기울어지면 누군가는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침묵은 때로는 가장 강력한 언어가 된다. 그러나 불의 앞에서의 침묵은 또 다른 불의를 낳는 법이다.


결국 법의 문제는 법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우리 인간의 문제다. 권력과 돈이 법의 저울을 기울이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우리는 그 저울이 언젠가는 바르게 설 수 있다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저울이 균형을 찾는 그 찰나의 순간처럼, 정의 또한 우리의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에서 '법불아귀'의 이상으로 나아가는 길. 그것은 멀고도 험한 여정이지만,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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