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의 쓸모, 혹은 효율성이라는 감옥]
세상은 온통 쓸모를 묻는다. 시간의 값어치를 매기고, 관계의 효용을 따지며, 심지어 휴식의 생산성마저 계산하려 든다. 모든 것이 명확한 목적과 측정 가능한 결과로 환원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의 강박 속에서 노자(老子)는 역설적인 화두를 던진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지만, 그 속이 비어 있기에 수레의 쓸모가 있다(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그는 나아가 “그러므로 있음(有)이 이로운 것은 없음(無)이 쓸모가 되기 때문이다(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라고 말한다. 쓸모없음, 혹은 비어 있음의 가치. 이는 효율성의 칼날 위를 위태롭게 걷는 현대인에게 정녕 낡은 지혜일 뿐인가.
노자와 장자(莊子)로 대표되는 도가(道家) 철학에서 '무용(無用)'은 단순한 비효율이나 무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편협한 기준과 인위적인 목적성에서 벗어나, 만물의 근원인 도(道)의 관점에서 바라본 본질적 가치에 대한 성찰이다. 장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모두 유용(有用)의 쓸모는 알지만, 무용(無用)의 쓸모는 알지 못한다(人皆知有用之用, 而莫知無用之用也)." 곧게 자란 나무는 목수에게 베여 기둥이나 대들보가 되지만, 뒤틀리고 옹이 진 못생긴 나무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기에 천수를 누리며 거대한 그늘을 드리운다. 당장의 쓸모에 부합하지 않기에 오히려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하며 더 큰 쓰임, 즉 '무용지용'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쓸모라는 잣대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고 근시안적인지를 드러낸다. 유용함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존재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변화무쌍한 세계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될 수 있음을 그들은 통찰했다.
현대 사회는 유용성의 신화를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설파한다. 교육은 취업 시장에서의 ‘쓸모’를 기준으로 평가절하되거나 과대평가되기 일쑤이며, 인간관계마저 ‘인맥 관리’라는 효용성의 언어로 포장된다. 잠시 멈추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죄악시되고, ‘갓생’이라는 이름 아래 분초 단위의 생산성 경쟁이 벌어진다. 이러한 효용성 지상주의는 우리를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는 존재로 내몬다. 결과적으로 개인은 소진되고, 사회는 여유와 깊이를 잃어버린다. ‘쓸모없는’ 사색의 시간, ‘비생산적인’ 예술 활동, ‘비효율적인’ 관계 맺음에서 오는 풍요로움은 설 자리를 잃는다. 노자의 그릇 비유처럼, 정작 내용물을 담고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그 ‘비어 있음(無)’인데도, 우리는 그릇 자체의 재질과 형태, 즉 측정 가능한 ‘있음(有)’에만 몰두하며 그릇의 본질적인 쓸모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는 마치 숨 쉴 공간 없이 가구로 가득 찬 방과 같아서, 결국 그 무엇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공허한 상태를 초래한다.
무용지용의 지혜는 이러한 현대 사회의 강박에 대한 근본적인 해독제가 될 수 있다. 쓸모없음을 끌어안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무위도식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획일화된 유용성의 잣대에서 벗어나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재 자체의 충만함을 회복하자는 제언이다. 당장의 이익이나 효율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 예컨대 목적 없는 산책, 몰입하는 취미, 마음을 나누는 깊은 대화, 혹은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속에 잠재된 힘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쓸모의 기준으로 재단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경험하고 예상치 못한 창의성과 마주할 수 있다. 쓸모없어 보이는 여백과 빈틈이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이 싹트는 토양이며,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헤쳐나갈 유연성과 회복력을 길러주는 자양분이다. 이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벗어나 삶의 본질적 리듬을 되찾는 길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쓸모를 증명하며 살아가도록 요구받는다. 그러나 노자와 장자의 지혜는 그 ‘쓸모’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기준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어쩌면 진정한 풍요는 ‘무엇이 될 것인가’ 혹은 ‘무엇을 할 것인가’의 압박에서 벗어나,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있을지 모른다. 일상 속에서 의도적으로 ‘쓸모없는’ 시간을 확보해보는 것은 어떨까. 결과나 효율을 따지지 않고 과정 자체에 집중하는 행위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장 비효율적이라고 치부했던 것들 속에서 예상치 못한 가치를 발견해보는 것은 어떨까. 쓸모의 사슬을 끊어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빈 그릇만이 무한을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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