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탑재] 백일, 생명이 건네는 첫 번째 약속

갓난아기가 세상에 나온 지 백일이 되던 날, 우리 조상들은 작은 상을 차려놓고 이웃들을 불러 모았다. 오색찬란한 과일과 떡을 올리고,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던 이 의례는 단순한 축하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이 세상에 뿌리내린 첫 번째 증명이자, 미래에 대한 간절한 약속이었다.

백일이라는 숫자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현대 의학에서 생후 3개월은 모체로부터 받은 항체가 소멸하고 자체 면역체계가 구축되는 중요한 시기로 본다. 우리 조상들은 경험적으로 이 시기를 생명력이 안정되는 때로 여겼던 것이다. 실제로 전통사회에서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현실을 고려할 때, 백일을 넘긴다는 것은 생존 가능성이 크게 높아짐을 의미했다.

흥미롭게도 동양의 백일잔치와 서양의 세례식은 비슷한 시기에 치러진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생후 100일 내에 아이에게 세례를 주며 신의 보호를 기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생명의 연약함 앞에서 초월적 힘에 의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새 생명을 공동체가 함께 보호한다는 보편적 가치관의 표현이기도 하다.

백일떡의 의미도 깊다. 예로부터 백설기는 순수함과 정결함을 상징했고, 수수팥떡의 붉은색은 액운을 막는다고 믿어졌다. 이웃들이 떡을 나누어 먹는 행위는 공동체 전체가 아이의 성장을 책임진다는 사회적 약속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백일떡을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줄수록 아이가 장수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었다.

"생명은 홀로 피어나는 꽃이 아니라, 온 마을이 함께 키워내는 정원이다.“

오늘날 백일잔치는 형태는 변했지만 그 본질은 여전하다. SNS에 올라가는 백일 사진 한 장에도 생명에 대한 경외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다. 저출산 시대를 맞은 현대 사회에서 백일잔치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개인의 축하를 넘어 사회 전체가 새 생명을 환영한다는 메시지이며, 공동체의 연대 의식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의례가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았다. 마스크 너머로도 전해지는 축복의 마음, 화상통화로 나누는 백일떡의 의미는 예전과 다르지 않다. 백일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생명은 기적이며, 성장은 축복이고, 함께한다는 것은 희망이라고.

디지털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새 생명을 향한 인간의 따뜻한 마음이다. 백일잔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아름다운 전통이다.

"아이는 백 명의 어른이 키운다" - 한국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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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의 의미 - 생명이 건네는 첫 번째 약속

디지털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새 생명을 향한 인간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백일잔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백일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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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념탑재] 아우라, 시대를 관통하는 신비로운 빛의 여정

바람이었다. 고대 그리스어 'αὔρα(아우라)'는 본래 '미풍'이나 '산들바람'을 뜻했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 만질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 이 단순한 단어는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며 인간 문명사에서 가장 신비로운 개념 중 하나가 되었다.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 성인들의 머리 위에 그려진 후광이 있었다. 중세의 화가들은 붓끝에 신성을 담았다. 금빛 원은 거룩함을 드러냈고, 그 빛은 속세와 천상을 가르는 경계였다. 현대 소셜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들이 추구하는 '개인적 매력'에 이르기까지, 아우라는 시대의 옷을 갈아입으며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투영해왔다.

동양과 서양에서 아우라에 대한 인식은 갈렸다. 서양에서는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를 정의했다.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 현상." 그는 이를 "시간과 공간의 기이하게 얽힌 짜임"이라 불렀다. 예술의 진정성과 유일성이 그 안에 있다고 보았다.

동양에서는 다른 길을 걸었다. 불교의 '광명(光明)'이 있었고, 도교의 '기운(氣運)'이 있었다. 한국의 전통 초상화에서 인물의 '기품'을 표현하는 방식은 서양의 아우라 개념과 만났다. 남제의 화가 사혁은 『고화품록』에서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말했다. 그림에 생동하는 기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우라를 둘러싼 흥미로운 사실들이 있다. 첫째, 중세 유럽의 성화에서 후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인의 내면적 덕성을 가시화하는 상징이었다. 둘째, 20세기 중반 러시아의 과학자 세묜 키를리안이 발견한 '키를리안 사진술'이 있었다. 전기장을 이용해 물체 주변의 광채를 촬영하는 기법이었다. 1980년대 뉴에이지 운동과 함께 재조명되며 현대적 '아우라 사진'의 원형이 되었다. 셋째, 현대 뇌과학은 인간의 뇌에서 실제로 미약한 전자기장이 발생함을 입증했다. 고대인들의 직감이 완전히 허상은 아니었던 셈이다.

"진정한 아우라는 모방할 수 없는 고유성에서 나온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는 깊은 울림을 준다. 무수한 복제와 모방이 가능한 시대다. 진정성 있는 개성의 가치는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한다. 현대 사회에서 아우라는 개인 브랜딩과 카리스마의 핵심 요소로 재탄생했다. SNS 시대의 인플루언서들이 추구하는 것도 결국 디지털 공간에서의 독특한 아우라 창조다.

아우라의 여정은 길었다. 종교적 경외감에서 예술적 감동으로, 다시 개인적 매력으로 변주되어왔다. 형태를 달리할 뿐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타인과 구별되는 독특함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 만질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었다.

바람은 여전히 분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그 바람이 21세기에도 우리 곁을 맴돈다. 아우라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뿐이다.

*"氣韻生動(기운생동)" - 남제(南齊) 화가 사혁(謝赫)의 『고화품록(古畫品錄)』*

이 사자성어는 그림에 생동하는 기운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진정한 아우라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한 고전적 표현이다.

https://codepen.io/odpyjxhw-the-decoder/full/VYLKO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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