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문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은 1960년대 한국의 소도시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학급의 절대 권력자 엄석대와 이에 맞서는 전학생 한병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서술자인 '나'(윤한필)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엄석대라는 독재자가 지배하는 교실의 권력 구조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 그리고 결국 한병태가 체제에 굴복하고 마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87년은 한국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처를 안은 채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반대하는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난 격변기였다.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거리를 메우던 시기에, 이 소설은 학급이라는 미시적 공간을 통해 한국 사회의 거시적 권력 구조와 집단주의,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의 문제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특히 긴급조치와 같은 비상통치수단으로 민주화 세력을 억압했던 1970-80년대 정치 현실은 작품 속 엄석대의 통치 방식과 놀라운 평행을 이룬다.


2. 사회적 문제 1: 권력의 구조화 - 작품 속 반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사회적 문제는 권력의 구조화와 그 작동 방식이다. 엄석대는 단순한 학급 내 힘센 아이가 아니라,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통치자로 묘사된다. 그는 '급장'이라는 공식적 지위를 바탕으로 '항의표'와 같은 감시 체계를 만들고, 상벌제도를 운영하며, 추종자들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등 정교한 권력 구조를 형성한다.
원작에서 "엄석대는 저마다 다른 아이들의 잘못에 대해 저마다 다른 벌점을 부여했지만, 그 불공평함은 결국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었다"(p.47)라는 구절은 독재 권력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한다. 또한 "우리들의 교실 안에서 그의 눈과 귀가 되지 않은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p.58)라는 묘사는 감시 체제의 내면화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는 권위주의 체제가 국민들에게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자유를 제한하고 복종을 요구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특히 1980년대 초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과 공안정국의 분위기는 이러한 작품의 묘사와 중첩된다.


3. 사회적 문제 2: 집단주의와 동조 - 시스템의 모순


작품은 권력자 한 명만으로는 독재가 성립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엄석대의 권력이 공고해질 수 있었던 것은 담임 선생님의 묵인과 아이들의 침묵, 그리고 '나'를 포함한 방관자들의 공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은 수업의 효율성과 편의를 위해 엄석대의 권력을 용인하고, 아이들은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그에게 복종한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엄석대의 그런 행동이 반 아이들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의 힘으로 작용한다고 믿으셨다"(p.72)는 구절은 민주적 가치보다 효율성과 질서를 우선시하는 권위주의적 논리를 정확히 반영한다. 이는 '발전 독재'의 논리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유보했던 박정희 정권과 그 이후 전두환 정권의 통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이문열은 이러한 집단 동조 현상을 묘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택했다. 성인이 된 서술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이중 시점은 독자로 하여금 방관자로서의 죄책감과 윤리적 성찰을 경험하게 하는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그때 우리 모두는 침묵했다"(p.91)와 같은 집단적 서술은 개인의 책임을 집단에 희석시키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4. 저항과 변화: 양심과 굴복 - 사회적 움직임


전학생 한병태는 작품 속 유일한 저항자로 등장한다. 그는 기존의 권력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고, 엄석대에게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집단의 압력과 고립 속에서 패배하고, 엄석대의 체제에 편입된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가 단순히 순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체제의 적극적인 옹호자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한병태는 이제 우리와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엄석대의 충실한 신하가 되어 있었다"(p.124)라는 구절은 저항자가 체제에 포섭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한병태가 엄석대의 노트를 들고 우리의 잘못을 기록하는 모습은 마치 어제의 저항자가 오늘의 가해자로 변모한 것 같았다"(p.126)는 묘사는 변절의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이는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군부 독재의 폭력적 탄압으로 좌절되고, 일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체제 내에 흡수되거나 변절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작가 이문열은 보수적 정치 성향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준다. 이러한 긴장은 작가가 '전통과 질서'의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그것이 개인의 자유와 양심을 억압할 때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복합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는 그의 다른 작품 '선택'(1982)이나 '황제를 위하여'(1982)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이다.


5. 현대적 재해석: 오늘날의 사회에 던지는 질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던진다. 디지털 시대의 집단 괴롭힘이나 소셜미디어의 '집단적 정의 구현'은 엄석대의 '항의표' 시스템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특히 작품에서 "그 누구도 항의표에 자신의 이름이the 적히지 않기 위해 다른 아이의 잘못을 먼저 고발했다"(p.63)는 묘사는 현대 SNS에서 타인의 실수나 과오를 발견하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콜아웃 문화(call-out culture)'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엄석대가 항의표를 통해 구축한 감시 체계는 미셸 푸코가 말한 '판옵티콘(panopticon)' 감시 체제의 축소판으로, 오늘날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한 디지털 감시 시스템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두 시스템 모두 피감시자들이 감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행동을 검열하게 만든다. 작품에서 "우리는 엄석대의 눈길이 없을 때도 마치 그가 보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p.67)는 묘사는 현대 디지털 감시사회의 본질을 정확히 예견한다.
또한 현대 사회의 효율성과 성과 중심주의는 담임 선생님이 엄석대를 용인했던 논리와 맞닿아 있다. "선생님은 엄석대의 독재가 가져온 질서와 성적 향상이라는 결과에 만족하셨다"(p.84)는 구절은 민주적 가치보다 성과를 우선시하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한다. 


6. 결론: 작품의 사회적 유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단순한 성장 소설을 넘어,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와 집단주의에 대한 통찰력 있는 우화로 남아있다. 작품이 발표된 지 35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메시지는 여전히 강력하다. 이문열은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와 상징적 인물 설정, 그리고 회상 구조를 통해 정치적 알레고리를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결말에서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내 안의 엄석대를 발견한다"(p.157)라는 서술자의 고백은 권위주의적 통치 경험이 개인과 사회의 정신에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암시한다. 이는 독재 시대를 경험한 한국 사회의 집단 트라우마와 그 회복 과정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권력과 그 구조에 대해 경계하고, 집단적 동조의 위험성을 인식하며, 개인의 양심과 책임에 대해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권위주의가 부상하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일상에서 끊임없이 실천해야 할 가치임을 일깨운다. 일그러진 영웅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건강한 시민으로서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영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문열의 정치적 입장과 작품 사이의 긴장관계는 문학의 복합성과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사례다. 보수적 성향의 작가가 권위주의에 대한 첨예한 비판을 담은 작품을 창작했다는 사실은, 문학이 단순한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는 인간 조건에 대한 성찰임을 상기시킨다. 이는 그의 소설 '시인의 꿈'(1990)에서도 언급되는 "진정한 문학은 이념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 진실을 추구한다"는 그의 문학관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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