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비오는 날의 우산 - 베품에 관한 단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우산이 펼쳐진다. 검은 천 아래 가려진 얼굴들, 그 아래서도 각자의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 문득 생각한다. 우산이란 무엇인가?
비를 피하기 위한 도구라고? 아니,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산은 누군가에겐 안식이고, 누군가에겐 짐이다. 햇볕이 쏟아지는 날에는 무거운 짐에 불과하지만, 비가 내리는 순간 가장 귀한 보물로 변모한다. 이것이 바로 '때'의 마법이다.
"비 올 때 우산 빌려주는 사람 없다"는 옛말은 인간 본성의 한계를 꼬집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건네는 작은 도움이 가장 큰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 평온한 날의 화려한 선물보다, 폭풍우 속의 한 자루 우산이 더 큰 감동을 주는 이유다.
동양의 옛 우산은 기름종이였다. 비를 막되 빛은 통과시켰다. 서양의 우산은 검고 불투명하다. 비를 완벽히 차단하지만 그 아래 고립된 세계를 만든다. 도움을 주는 방식 역시 그러하지 않은가? 동양적 베품은 받는 이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정(情)'이라면, 서양적 자선은 때로 개인의 만족을 위한 '결핍의 충족'에 그칠 수 있다.
우산의 구조를 살펴보자. 하나의 중심에서 여러 살이 뻗어나간다. 마치 자아라는 중심에서 타인을 향해 뻗어나가는 연민의 손길과도 같다. 그러나 우산 속 사람은 바깥을 볼 수 있지만, 바깥 사람은 우산 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 진정한 베품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상대방을 예민하게 바라보되, 자신의 베품을 드러내지 않는 은밀함.
우산(雨傘)에서 '산(傘)'은 '펼친다'는 뜻을 품고 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접혀 있다가, 비가 오면 비로소 펼쳐지는 우산처럼, 인간의 선의 역시 위기의 순간에 온전히 펼쳐진다. 평소에는 접혀 있던 마음이 타인의 어려움 앞에서 활짝 펼쳐질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베풀기를 좋아한다. 자신이 주고 싶을 때(when), 자신이 주고 싶은 것(what)을 준다. 마치 사막에서 목마른 이에게 향수를 건네는 것과 같은 어긋남. 우산을 쓰고도 비에 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바를 보지 못하는 시각적 맹목.
우산은 역설의 도구다. 비에 젖지 않으려 쓰지만, 결국 우산 자체는 비에 흠뻑 젖는다. 베품 역시 그렇지 않은가? 진정으로 베푸는 이는 자신을 비워내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충만해진다. 비움과 채움의 변증법이 우산의 철학이다.
비가 그치고 우산을 접을 때, 그 물기를 탈탈 털어내듯 우리의 베품 역시 언젠가는 기억에서 털어내야 한다. 과시하거나 보답을 바라는 베품은 진정한 베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접힌 우산이 그 기능을 숨기듯, 진정한 베품은 그 흔적을 감추는 법이다.
비가 그쳤다. 우산을 접으며 생각한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타인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자신의 우산을 기꺼이 내어주는 그 짧은 순간이 아닐까? 그리고 그 우산 아래서 함께 걸어가는 발걸음의 리듬이 삶의 가장 깊은 울림이 아닐까?
비오는 날의 우산

우산의 참된 의미
우산의 재발견
우산은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안식이고, 다른 이에게는 짐입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날에는 무거운 짐이지만, 비가 내리는 순간 가장 귀중한 보물로 변모합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건네는 작은 도움이 가장 큰 가치를 지닙니다. 평온한 날의 화려한 선물보다, 폭풍우 속의 한 자루 우산이 더 큰 감동을 주는 이유입니다.
우산의 구조와 베품
우산의 구조를 살펴보면, 하나의 중심에서 여러 살이 뻗어나갑니다. 마치 자아라는 중심에서 타인을 향해 뻗어나가는 연민의 손길과도 같습니다.
우산 속 사람은 바깥을 볼 수 있지만, 바깥 사람은 우산 속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진정한 베품이란 상대방을 예민하게 바라보되, 자신의 베품을 드러내지 않는 은밀함입니다.
동서양의 우산과 베품의 방식
동양의 우산
동양의 옛 우산은 기름종이로 만들어졌습니다. 비를 막되 빛은 통과시켰죠.
동양적 베품은 받는 이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정(情)'을 담고 있습니다.
서양의 우산
서양의 우산은 검고 불투명합니다. 비를 완벽히 차단하지만 그 아래 고립된 세계를 만듭니다.
서양적 자선은 때로 개인의 만족을 위한 '결핍의 충족'에 그칠 수 있습니다.
베품의 역설
비움과 채움의 변증법
우산은 역설의 도구입니다. 비에 젖지 않으려 쓰지만, 결국 우산 자체는 비에 흠뻑 젖습니다. 베품 역시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베푸는 이는 자신을 비워내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충만해집니다. 이것이 비움과 채움의 변증법입니다.
진정한 베품의 모습
현대인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베풀기를 좋아합니다. 자신이 주고 싶을 때(when), 자신이 주고 싶은 것(what)을 줍니다.
그러나 이는 마치 사막에서 목마른 이에게 향수를 건네는 것과 같은 어긋남입니다. 상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비가 그치고 우산을 접을 때, 그 물기를 탈탈 털어내듯 우리의 베품 역시 언젠가는 기억에서 털어내야 합니다. 과시하거나 보답을 바라는 베품은 진정한 베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타인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자신의 우산을 기꺼이 내어주는 그 짧은 순간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우산 아래서 함께 걸어가는 발걸음의 리듬이 삶의 가장 깊은 울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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