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변호사의 멘토 사마천 : (2) 과하지욕
사마천 사기(史記)에 나오는 고사성어나 좋은 문장과 제 경험을 엮은 '멘토 사마천'을 연재합니다.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다가 회사 내에서 입지가 좁아진 측면도 있고(자신이 따르던 이사가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좌초되어 그 line이었던 자신의 입지도 애매해진 것임), 본인도 진작부터 자신이 창업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큰 뜻을 품고 창업을 한 후배 최모.
그런데 업종 자체가 예전에 있던 회사의 업종과 비슷했기에 예전 회사의 거래업체와 계속해서 업무를 이어가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그 후배는 술에 잔뜩 취해 내 사무실 근처라고 잠깐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해서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선배님, 정말 더럽고 치사해서 한 잔 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회사에 있을 때는 제게 꼼짝 못하던, 오히려 제게 잘 보이려고 눈치를 보던 업체, 쉽게 말하면 乙이죠, 이 사람들이 이젠 제게 甲 행세를 톡톡히 하는 겁니다. 조직 밖에서 활동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특히 오늘은 어찌나 사람 비위를 건드리는지 정말... 판을 엎어 버리고 나오려다가 정말 참았습니다.”
甲의 지위에 있다가 乙로 그 지위가 바뀌는 경우, 소위 ‘정체성 혼란’을 겪거나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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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邦(유방)이 項羽(항우)를 이기고 漢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바로 대장군 한신이다.
하지만 젊었을 때 그는 밥을 빌어먹을 정도로 가난했다. 어머니가 죽었지만 장례식도 치를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그렇다고 뛰어난 재주나 언변도 없어 그저 남의 집에 얹혀 얻어먹곤 했다. 따라서 그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싫어했다.
그의 고향인 淮陰(회음)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렵게 지내고 있었으므로 다들 그를 보면 업신여기거나 놀려대곤 했다. 하지만 마음 속에 큰 뜻을 품고 있었기에 항상 칼을 차고 다녔던 그.
어느 날 그런 모습이 눈에 거슬렸던 깡패(푸줏간 패거리) 중 한 명이 한신에게 말했다.
“네 놈이 덩치는 큼직하게 생겨서 밤낮 허리에 칼은 차고 다니지만 사실 네 놈은 겁쟁이일 뿐이야.”
구경꾼들이 모여들자 그는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너, 만약 사람을 죽일 용기가 있다면 어디 그 칼로 나를 한 번 찔러 보아라. 그러나 만일 죽기가 싫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라!”
韓信은 잠시 생각하더니 묵묵히 그의 바지가랑이 밑을 기어서 나왔다.
이 일로 해서 온 장바닥 사람들은 다들 그를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회음후 열전 중
* 사진은 한신이 깡패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갔다는 바로 그 '과하교'임. 회음시 시내 한복판에 있음(김영수 교수님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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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지욕(跨下之辱, 가랑이 밑을 기는 치욕).
사기 원문에 보면, 한신이 깡패의 가랑이 밑을 기기 전에 그 깡패를 ‘한참 빤히 쳐다보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김영수 교수님).
한신의 실력이면 그 깡패를 단칼에 베어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큰 뜻을 품고 있는 한신이 그 깡패와 싸우거나 그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 그 이후 자신의 계획은 일그러지고 만다.
아마도 한신은 그 깡패를 ‘한참 빤히 쳐다보면서’ 이를 꽉 깨물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어땠을까.
뒷 이야기.
한신이 훗날 크게 출세한 다음 자신을 가랑이 밑으로 기게 했던 그 깡패를 기어이 찾아내서 그에게 작은 벼슬을 주었다. 이는 한신 스타일로 그 깡패에게 모욕을 주고 되갚음을 한 것이다. 한신의 대단한(?), 또는 뒤끝있는 성격이 나오는 대목이다.
후배에게 한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후배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씩 웃었다.
“대단한 사람이군요. 대장군 한신. 마음의 위안이 됩니다.”
사마천은 한신의 과하지욕 고사를 통해,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면 작은 치욕을 거뜬히 이겨내라는, 그런 일로 심장에 스크래치 내지 말라는 쿨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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