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탑재] 읍참마속, 대의를 위한 희생의 서사
인간사의 수많은 결정 가운데, 때로는 개인의 정(情)을 넘어 대의를 위해 단호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의 고뇌와 희생을 상징하는 고사성어가 바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다. 이 네 글자 속에는 단순한 형벌을 넘어선, 지도자의 책임감과 비정한 결단이 응축되어 있다.
읍참마속은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재상 제갈량(諸葛亮)이 촉의 장수 마속(馬謖)을 눈물을 머금고 베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다. 때로는 냉혹하게 느껴질지라도, 이 고사는 2025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조직의 리더십, 책임의 중요성, 그리고 원칙 준수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시대적 흐름과 지역적 다양성
읍참마속의 배경인 삼국시대는 중국 대륙이 위(魏), 촉(蜀), 오(吳) 삼국으로 나뉘어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던 혼란의 시기였다. 특히 북벌(北伐)을 추진하던 제갈량에게 가정(街亭) 전투는 촉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제갈량은 신중하게 왕평(王平)을 마속의 부장으로 삼아 보냈으나, 마속은 자신의 지략만을 믿고 산 위에 진을 쳤다가 위나라 장수 장합(張郃)에게 대패하고 만다. 이로 인해 북벌의 길은 막히고, 제갈량은 군법에 따라 마속을 참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장수의 처형을 넘어, 국가의 존망이 걸린 상황에서 개인적인 정을 끊어내는 지도자의 고뇌를 보여준다.
동양의 리더십은 때때로 개인의 덕목과 공동체의 안녕을 긴밀하게 연결 짓는 경향이 강했다. 읍참마속은 그러한 동양적 리더십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서양 역사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고대 로마 공화정 시대의 집정관 브루투스(Lucius Junius Brutus)가 자신의 아들들이 왕정복고를 꾀한 사실을 알고 군법에 따라 처형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이는 비록 동기와 배경은 다르지만, “공적인 의무 앞에서 사적인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는 리더의 비정한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읍참마속과 일맥상통한다.
흥미로운 사실들
* 제갈량의 눈물: 제갈량이 마속을 참수할 때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이는 단순히 정에 이끌린 눈물이 아니라, 마속의 재능을 아끼고 미래를 기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에 대한 고뇌와 책임감의 발현이었다고 해석된다.
* 마속의 자결: 일부 기록에서는 마속이 참수되기 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제갈량에게 자결을 청했다고도 전해진다. 이는 마속 또한 자신의 실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 병법과 상벌: 읍참마속은 단순히 군율을 엄격히 적용한 것을 넘어, 병법의 중요성과 상벌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아무리 뛰어난 지략가라 할지라도, 원칙을 어기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현대적 의미와 시사점
오늘날의 사회에서 ‘읍참마속’은 더 이상 물리적인 처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직의 리더가 원칙과 비전을 위해 고뇌에 찬 결정을 내릴 때, 혹은 개인의 실책이 공동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때 이 고사성어는 여전히 유효한 비유로 사용된다. 기업의 위기관리, 공공기관의 윤리경영, 심지어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자기희생까지, 읍참마속은 다양한 맥락에서 우리의 판단을 돕는 이정표가 된다.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면 백성은 길을 잃고, 조직의 원칙이 흔들리면 구성원은 방황한다.” 이는 비단 제갈량의 시대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변화무쌍한 현대 사회에서 리더는 때때로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대의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하며, 이는 조직의 건전한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고려 문신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櫟翁稗說)』에 실린 말처럼, “원칙은 모든 것의 근본이다(原則乃萬事之本).” 읍참마속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따르는 고뇌와 희생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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