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가지 고민이 한 가지로 줄어드는 순간]

건강할 때는 백 가지 고민이 있다고들 말한다. ‘내일 점심은 뭘 먹지?’, ‘이번 주말엔 어떤 옷을 입고 나갈까?’, ‘상사에게 찍힌 건 아닐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할까?’, ‘노후 자금은 충분할까?’… 세상은 온통 물음표 투성이다. 마치 거대한 백화점에 던져진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눈앞의 화려한 상품들에 현혹되어 이것저것 욕심내고, 손에 쥐었다 놓기를 반복하며 고민의 백화점을 헤맨다. 삶은 무한한 선택지의 연속이고, 그 선택지마다 가지를 쳐 또 다른 고민을 낳으니, 건강한 이의 삶은 고민의 무성한 숲과도 같다.

그러나, 문득 큰 병이 찾아오면 이 백 가지 고민은 거짓말처럼, 마술처럼 단 하나의 고민으로 수렴된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고통을 멈출 수 있을까?’, ‘다시 예전처럼 건강해질 수 있을까?’ 그 한 가지 질문 앞에, 백 가지 고민은 마치 먼지처럼 사라지고 만다. 어제의 점심 메뉴도, 내일의 옷차림도, 상사의 시선도, 아이의 성적도, 노후 자금의 액수도 의미를 잃는다. 그 순간, 삶은 오직 ‘생(生)’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 하나로 단순화된다.

이것은 비단 육체의 병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음의 병, 곧 절망이나 좌절의 순간에도 우리는 유사한 경험을 한다. 삶의 거대한 장벽 앞에서 모든 선택지가 무의미해지고, 오직 그 장벽을 넘어서는 단 하나의 목표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때 비로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맞닥뜨린다. 건강할 때 보이지 않던, 너무나 당연해서 오히려 보이지 않던 진실이, 병이라는 거울 앞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삶은 이처럼 역설적이다. 풍요와 자유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방황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가 될 수도 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중요해 보여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한다. 하지만 궁핍과 구속의 상황, 즉 병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본질과 대면하게 된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모든 것이 아프다. 이처럼 전신이 아파올 때 우리는 삶의 ‘핵심’을 응시한다.

어쩌면 삶이란 백 가지 고민 속에서 한 가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건강할 때는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우리의 시선이, 병이라는 렌즈를 통해 비로소 한 점에 모이는 것이다. 그 한 점은 바로 ‘생명’이요, ‘존재’ 그 자체다. 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 것을 좇으며 살았을까? 왜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을 잊고 살았을까? 백 가지 고민이 단 한 가지로 줄어드는 순간, 우리는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존재의 경이로움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픔은 어쩌면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한 경고이자, 동시에 가장 깊은 깨달음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순간, 우리는 비로소 모든 것을 얻는 역설을 경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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