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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과 이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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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변호사 2013. 1. 1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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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번

조선 최초의 과거합격자

 

조선왕조 최초의 과거시험 합격자 이숙번

과거 백과사전 연관이미지

조선시대 최초로 치러진 과거시험 은 1393(태조2) 3월에 실시된 식년문과 시험으로 33인의 급제자가 배출되었는데 여기에 태종 이방원의

핵심 측근인 이숙번이 들어있다.

약관의 나이로 무과가 아닌 문과로 급제하였으나 다른 무신보다 더 장수기질이 농후 하여 이방원과 같이 두 번의 왕자의 난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강한 리더쉽으로 이방원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핵심인물로 승승장구 하다가 이후 오만방자함으로 발전하여 토사구팽의 원인이 되었다.

태종 이방원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인물구성을 삼국지와 비교해보면 이방원이(유비현덕), 하륜이(제갈공명), 조영무가(장비), 이숙번은(관우,조자룡), 등과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43세로 안성 부원군에 봉해질 때까지가 전성기였다면

그 후 68세로 죽을 때까지는 고난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공과 태종의 총애로 거만방자하게 행동하다가 결국 탄핵으로 삭탈관직을 당하게 되며 45

때엔 경남 함양으로 유배 생활을 하게된다. 조선초기 문무를 겸비하고 과감한 결단력을 가진 그의 재능이 권력의

풍선 위에서 춤을 추다가 최후에는 불행한 여생을 맞게 된 것이다.

 

이숙번의 교만

 

태종 임금이 왕위에 오르는데에 공이 컸던 [[이숙번]]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교만해졌다는 이야기가 조선 초, 중기 설화집에 집중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1) 이숙번은 크게 성공한 후 공적을 믿고 교만해져서, 같이 일하는 재상들에게도 아랫사람처럼 대했다. 태종이 불렀는데도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으며, 문안하느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내실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벼슬을 줄 사람이 있으면 편지를 써서 사람을 시켜 왕께 주달해 임용되도록 했기 때문에, 친한 사람들이 관직에 많이 임용되어 있었다. 돈의문 안에 큰 집을 짓고, 시끄럽다고 사람들을 못 다니게 했다. 뒤에 죄를 얻어 함양으로 귀양 갔다가, [[용비어천가]]의 자문 관계로 서울에 왔을 때에도 많은 후생들이 배알했는데 어릴 때의 일들을 말하면서 교만하게 행동했다.

2) 이숙번은 거만하여 왕이 불렀는데 손님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가 병을 탓하여 가지 않으니 이 일로 귀양을 갔다. 세종이 즉위하자 도승지 [[김돈]]에게 순금띠를 기증하고, 도성으로 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돈이 청을 들어주지 못해서 순금띠를 늘 만지기만 하다가, 마침 [[용비어천가]]를 찬하는 일에 태종 때의 일을 잘 아는 사람을 찾으니 김돈이 이숙번을 추천하여 서울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 문하인 [[이징옥]], [[조비형]] 등이 고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문안하니, 자기는 의자에 남면(南面)하여 앉고 재상열에 오른 문인들은 바닥에 앉아, 마치 아이들 대하듯 했다. 이때 그 사위 김모가 이럴 수 없다고 놀라니 비로소 바닥에 앉았다. [[용비어천가]]의 일이 끝나니 세종이 다시 귀양 갔던 곳으로 복귀를 명했는데, 김돈이 석방을 주청했으나 왕은 선왕의 처사라 하면서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김돈]]은 기어이 순금띠를 갖지 못했다.(세종)

위의 기술을 보면 이숙번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것같다. 역시 [[소문쇄록]]에는 또다른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숙번이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사치하여, 그의 첩이 절약할 것을 이야기하니까 이숙번은 그 첩을 목을 쳐죽였고, 이숙번의 아들은 방탕하여 재산을 다 탕진하고서 보따리를 지고 먼 친척집으로 가다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출처 : [기타] 김현룡, 한국문헌설화1, 건대출판부, 1998.

 

이숙번의 추락

 

술잔을 마주하고 벌어진 진실게임

지신사는 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비록 품계는 낮지만 왕명을 출납하는 막중한 관직이다.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균형감각을 잃거나 사리사욕이 끼어들면 임금의 통치행위에 누가 된다. 왕의 최측근에 있으면서 요설로 왕의 총명을 흐린다는 이유로 고려 말 정3품 밀직사를 종5품 지주사로 격하했으나 조선 건국과 함께 부활하여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태종 재위 18년 동안 여덟 명의 신하가 지신사 자리를 거쳐 갔다. 지의정부사로 승진한 박석명이 있는가 하면 권력을 남용하여 문책 당하거나 이관처럼 파면된 사람도 있다. 후세에 이름을 남긴 황희도 있고 유사눌처럼 귀양 간 사람도 있다. 임금과 신하를 연결하는 징검다리에서 부침이 심한 자리다.

유사눌은 내약방에 들여오는 약재 소합유(蘇合油) 납품사건에 개입하여 권력을 남용한 혐의로 의금부에 투옥된 후 풍해도 안악으로 귀양 갔다. 하지만 이것은 구실에 불과하고 이숙번을 향한 유탄에 희생된 셈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다. 대신들의 팽팽한 세력전에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경도되어 새우등이 터졌으니 자업자득이다.

인도의 변방 소합국에서 유일하게 생산되어 소합향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소합유는 한약재다. 우리나라 사신이 명나라에 들어가면 황제가 하사품을 내린다. 사향(麝香), 용뇌(龍腦), 침향(沈香) 등과 함께 그 목록에 낄 정도로 희귀한 약재다. 혈액순환을 촉진하여 중풍, 협심증에 탁월한 약효가 있는 희귀약재다.

치료 목적 외에 사기(邪氣)를 물리쳐 꿈에서 가위에 눌리는 일이 없도록 하고 오랫동안 복용하면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장수 한다는 설 까지 퍼져 부르는 게 값이었으며 일본을 통하여 소량이 수입되기도 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지신사

조선에 나와 있던 일본인 평도전(平道全)이 소합유를 내약방(內藥房)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변질된 불량품이 발견되었다. 약방대언(藥房代言) 탁신이 벌레가 생겼다는 이유로 수납을 거절하자 유사눌이 압력을 행사하여 납품을 통과시키고 제용감(濟用監)으로 하여금 면주 66필과 목면 5필을 주게 하였다. 임금이 변질된 약재로 탕제한 약을 마시게 한 것이다.

대사헌 이원의 밀계로 이 사실을 알게 된 태종은 대노하여 유사눌과 탁신을 의금부에 하옥하라 명하고 의금부 제조 이천우와 허조를 불렀다.

"유사눌을 신임하였으나 나의 편견이었다. 유사눌과 같은 일은 발각 즉시 계달(啓達)하여 직책을 다하도록 하라. 옛날에 위징(魏徵)이 말하면 태종이 받아들여 정관지치(貞觀之治)를 이루었으니 임금의 허물을 포양(布揚)한 뒤에야 언관의 직책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유사눌을 사전(詐傳)한 율()은 어떠한가?"

"사죄(死罪)입니다."

"과인을 속인 유사눌은 죽어 마땅하지만 그래도 사죄는 과하다. 곤장 100대를 쳐 풍해도 안악에 부처하라."

유사눌을 귀양 보낸 태종은 내약방 의원이 변질된 소합유를 폐기처분 하려하자 버리지 말고 보관하라 명했다. 변질 되었지만 꼭 쓸 곳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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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이숙번을 불렀다. 인적이 끊긴 창덕궁, 어둠이 내린 광연루에 조촐한 술상이 마련되었다. 대형 연회가 열리던 광연루에 임금과 신하가 술상을 마주하고 독대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태종이 작심한 자리다. 마주 앉긴 했지만 임금과 신하이기 때문에 북면과 남면이다. 북산에 둥지를 튼 부엉이가 가끔 울어댈 뿐 고즈넉하다.

"안성군과 술 한 잔 나누고 싶어서 불렀소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숙번은 임금이 내린 술잔을 예를 갖춰 받았다. 때마침 떠오른 보름달이 술잔을 가득채운 술 위에도 떠있다. 묘한 느낌이다. 조금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기생을 데리고 술 마실 때는 어여쁜 여인의 얼굴처럼 다가오던 보름달이 오늘은 그게 아니다. 마음을 열고 속내를 보여 달라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밤을 새운 것이 여러 날 이지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방원 야인시절 하륜의 천거로 이숙번과 처음 만난 후, 왕업을 이루기 위하여 수많은 밤을 새우던 일을 떠올리는 질문이다. 태종은 이숙번에게 또 한 차례 술을 쳐주었다. 역시 술잔에 보름달이 떠있다.

"나들이를 떠난다면서요?"

"송구스럽습니다. 몸이 찌쁘뜨 하여 온천에나 다녀올까 합니다."

며칠 전, 태종에게 일급 첩보가 접수되었다. 이숙번이 갑사 이징옥과 군사 몇 명을 대동하고 백천 온천에 나들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괘씸했다. 신하가 군사를 대동하고 다닌다는 것도 불쾌했지만 따라 다니는 장수들도 한심스러웠다. 태종 이방원이 가장 싫어하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다. 태종은 평소 붕당을 짓고 사병을 거느리는 것을 금기사항으로 생각했다.

"누구랑 떠나는 게요?"

"시종 몇 명과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까 합니다."

이숙번은 실수하고 있었다. 임금은 신하를 상대로 속내를 내보이지 않으면서 진실게임을 하고 있는데 이숙번은 그걸 몰랐다. 술잔에 떠오르는 보름달처럼 환하게 속내를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했다. 이숙번이 나라의 정예군 갑사(甲士) 이징옥과 군사들을 시종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대단한 도발이었지만 태종은 애써 충격을 감추며 냉정을 잃지 않았다.

"안성군이 벌써 온천에 다닐 나이가 되었소?"

"불혹을 넘겼습니다."

이 때 이숙번 나이 마흔 셋이었다.

"하하하, 그래요. 난 아직 어린아이처럼 보이는데..."

"황공하옵니다."

또다시 이숙번의 빈 잔에 술을 쳐주었다. 이때까지 태종은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를 놓친 이숙번

"벌써부터 온천엘 찾아다니는 부원군에게 좋은 약재를 하나 내려 주리다. 소합유라고 아주 귀한 약재요."

"황공무지로소이다."

태종은 의약방에 명하여 버리려던 소합유를 가져오게 하여 이숙번에게 주었다. 이튿날 예궐한 이숙번이 임금을 배알했다.

"전일에 내려 주신 약은 매우 좋았습니다."

태종은 이숙번이 가소로웠다. 변질되어 벌레가 생긴 약을 먹고 좋았다니 가증스러웠다. 소합유 사건으로 귀양간 유사눌을 이숙번이 슬그머니 비호한 것 같았다. 곤장을 쳐 귀양 보낸 처사를 비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태종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숙번이 온천에 다녀온 후 임금의 의중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병을 핑계 삼아 입궁하지 않고 근신하고 있는 동안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이숙번을 향하여 날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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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번은 근래에 어찌하여 출입하지 않는가?"

임금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신하들은 머리만 조아릴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과인에게 불경하고 무례한 신하가 있으니 하늘이 어찌 비를 내리겠는가?"

태종 재위 기간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것이 기상재해였다. 극심한 한재에 시달렸고, 비가 왔다 하면 폭우가 쏟아져 청계천이 범람했다. 기우제를 지내고 개천을 여는 토목사업을 펼쳤지만 자연재해 앞에는 임금도 백성도 무력했다. 임금이 가뭄을 빗대어 말했지만 이숙번을 성토하라는 암시가 내려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좌대언 서선이 입을 열었다.

"지난 5월 신이 마침 강무 장소를 정하는 일 때문에 명을 받고 이숙번의 집에 이르니, 이숙번이 말하기를 '오늘날의 정사는 어떠한가?" 하기에 '박은이 우의정이 되었다' 하니 이숙번이 기뻐하지 않는 기색으로 '박은은 일찍이 내 밑에 있었는데 명이 통하는 자이다' 고 하였습니다."

태종 이방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임금의 신하를 자신의 명이 통하는 자라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당사자 박은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께서 일찍이 '붕당을 만들지 말라' 하였는데 붕당을 만들었고, 하륜이 성상께 국정을 아외는데 이숙번이 계하에 잠복하여 엿듣는 것은 반복입니다. 또한 세자를 배알하고 '이제부터 세자를 상견하기를 원합니다.' 하였으니 금장의 마음이 분명합니다."

좌대언 서선의 말처럼 박은이 이숙번과 내통하고 붕당을 지었는지 아직은 몰랐다. 때문에 입에 오르내린 박은이 더 강하게 치고 나오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것이다.

"예조우참의를 들라 이르라."

태종 이방원의 목소리는 분노에 떨리고 있었다. 긴급 호출을 받은 정효문이 부복했다.

"이숙번이 불경한 죄를 스스로 헤아리도록 연안에 나가 있도록 하라."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를 부리던 이숙번도 단칼이었다. 자원 안치의 형식을 취했지만 유배나 다름없는 팽이다. 이숙번은 변명한마다 못하고 속절없이 한양을 떠났다. 이숙번이 풍해도 안악으로 유배 길에 올랐지만 조정은 들끓었다. 이숙번을 국문에 처하라는 것이다. 이숙번의 위압에 짓눌려 아무 소리 못하고 숨죽이던 원성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대사헌 김여지의 상소에 이어 우사간대부 박수기가 상소를 올렸다.

"훈구는 나라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것이니 무릇 출입이 있게 되면 이를 알지 못함이 없습니다. 이숙번은 성명으르 받아 지위가 1품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외방으로 추방하게 하였으니, 사람들이 그가 범한 죄를 알지 못합니다."

뒤이어 형조판서 안등의 상소와 조정의 원로대신 성석린의 주청이 올라왔다. 한결같이 이숙번을 국문하라는 것이었다.

"짐의 마음은 이미 강해졌다. 다시는 청하지 말라 이르라."

태종 이방원이 지신사 조말생을 불러 하명했다.

"이숙번의 불충하고 무례한 것이 언행에 나타난 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마땅히 그 죄를 바로잡아서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뚜렸이 알게 하야야 하느느데, 원훈대신을 일조에 추방하면서 그 죄를 밝히지 아니한다면 나라 사람이 이를 의심할 것이니 실로 부적절합니다."

드디어 대척점에 서 있는 하륜이 움직였다. 공격의 끈을 늦추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맞바람은 예상 가능한 바람이지만 뒤통수를 치는 역풍은 예측 불가한 바람이다. 바람을 잡았을 때 확실하게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내선(임금이 살아 있는 동안 아들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줌)은 내가 꺼낸 말이지 이숙번의 음모는 아니다. 이숙번은 천성이 광망하고 매사에 착오를 자주 일으켜 불찰이지, 실로 두 마음 먹은 것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신을 잃는 것은 불가하다."

이숙번은 천성이 광포하고 꼼꼼히 챙기지 못하는 성미일 뿐, 근본은 역심을 품음 것이 아니므로 거론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한 무덤까지 같이 가겠다는 공신들과의 약속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임금이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자 모두 사직서를 제출하며 윤허를 청했다. 임금과 신하의 힘겨루기가 계속되었다. 형조와 대간의 간원들이 퇴궐하지 않고 3일 동안 밤을 새며 이숙번의 죄를 청했다.

"이숙번은 두 번이나 사지를 같이 겪었으니 그 공이 코고 중하다. 그러나 일에는 경중이 있으니 내가 어찌 구처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천천히 순리대로 하겠다."

이숙번과 함께 공화문 앞에 천막을 치고 아버리를 향한 무인혁명을 성공시키던 일과 형 이방간을 치던 일을 상기하는 말이었다.

임금이 한발 물러섰다. 순리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리가 무엇인지가 문제였다. 임금의 회유에 물러설 대신들이 아니었다. 좌의정 유정현의 상소에 이어 병조판서 이원의 상소가 올라왔다. 그래도 임금이 꿈쩍하지 않자 형조와 대간에서 교장하여 청했다.

"모든 대소신료가 이숙번의 죄를 청하였으나 겨우 관문 밖으로 나가도록 하니, 아직 그 연유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답답합니다. 전하계서 말씀하기를 '이숙번은 내가 자식같이 여긴다. 근래에 과실이 있어 그를 밖으로 내보내어 그가 개과하기를 기다리니 죄를 청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그를 아들같이 하는데, 이숙번은 어찌하여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로써 전하를 섬기지 아니합니까?

대소신료가 비록 그 범한 것을 알지 못한다 하나, 반드시 그 죄가 종묘사직에 관계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전하께서 그 죄를 다스리시지 아니하고 개과하게 하고자 하니, 이것이 신등이 실망하는 까닭입니다."

"이숙번의 녹권과 직첩을 거두어라."

태종 이방원의 명이 떨어졌다. 임금이 물러선 것이다. 이숙번의 녹권과 직첩이 거두어졌다. 이제는 목숨이 위태롭다. 날개가 있어야 다시 날아오르르 수 있는데 이숙번의 날개가 꺾인 것이다.

이숙번의 녹권과 직첩이 회수되었지만 조정은 조용하지 않았다. 이숙번을 국문에 처하라는 원로대신들의 상소가 빗발치고 삼성과 형조의 주처어이 끊이지 않았다. 이숙번을 중죄로 다스려 엄벌에 처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애써 외면했다. 침묵을 지키는 임금의 의중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왕심을 읽어내는 귀재 하륜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금의 속내를 알지 못하여 부심하고 있었다.

'성상께서 이숙번을 지켜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혁명동지들과의 약속/ 하지만 삽혈맹세는 이미 깨지지 않았던가. 개과천선? 이숙번의 성격이 광포하다고 규정하지 않았는가. 천성이 광포한 자가 교정되기란 나이가 너무 굳어있다. 이용가치? 그것도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 용도 폐기하여 팽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무엇인가?'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무릎을 치고 싶었지만 서두르지 않는 것이 하륜이었다.

어떠한 조건과 환경에서도 절대 임금을 앞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정치철학이었다. 반발 뒤따라가되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러한 그의 처세술이 그로 하여금 죽을 때까지 권세를 누리게 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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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근 역사소설 "이방원전" 210~218 (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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