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빗속에서 춤추는 법]
장대비가 쏟아진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세상은 온통 회색빛 물줄기 속에 잠긴다. 사람들은 처마 밑으로, 건물 안으로 황급히 몸을 숨긴다. 비를 피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오랜 관성이었다. 그런데 저기, 텅 빈 광장 한가운데서 누군가 비를 맞으며 서 있다. 아니, 몸을 흔들고 있다. 춤이다. 저것은 환희인가, 절망인가? 빗속에서 춤을 춘다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서양의 어느 작가는 말했다. "인생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폭풍우. 어찌 피할 수 있을까. 삶이란 예측 불가능한 비바람의 연속인 것을. 우리는 늘 폭풍이 멎기를,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숨죽여왔다. 내일의 맑은 날을 위해 오늘의 궂은 날을 견디는 것, 그것이 미덕이라 배웠다. 그러나 기다림의 끝은 언제 오는가? 기다리는 동안, 비에 젖어 스러지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어쩌면 삶 그 자체일지 모른다.
여기서 역설이 태어난다. 기다림의 소극성을 버리고 빗속으로 뛰어드는 능동성. 춤. 그것은 단순한 몸짓이 아니다. 젖은 땅을 박차고 오르는 정신의 도약이다. 비바람을 배경음악 삼아 스텝을 밟는 창조 행위다. 동양의 지혜는 물처럼 흐르라 했고, 서양의 정신은 역경을 딛고 일어서라 했다. 빗속의 춤은 그 둘 사이 어디쯤, 혹은 그 둘을 넘어서는 제3의 길이 아닐까? 비를 거부하지 않고 온몸으로 맞되, 그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내는 것. 고통과 하나 되어 그것을 놀이로,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 한국인의 '신명'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슬픔 속에서도 어깨춤을 추게 만드는 그 역설의 에너지 말이다.
중요한 것은 '춤추는 것'이 아니라 '춤추는 것을 배우는 것'에 있다. 처음부터 능숙한 댄서는 없다. 비틀거리고 넘어지면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훔치면서 스텝을 익혀나가는 것이다. 기다림이 시간을 정지시킨다면, 배움은 고통의 시간 속에서 의미를 길어 올린다. 현재를 회피하는 대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삶의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다.
결국 삶이란 무엇인가. 맑은 날만을 골라 살 수는 없다. 폭풍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비는 우리의 옷깃을 적신다. 그때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하염없이 비가 멎기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서툴더라도 나만의 춤을 배울 것인가. 빗속에서 춤을 배운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삶이라는 이름의 가장 위대한 예술을 배우는 것과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 어떤 춤을 배우고 있는가?
고난을 기다림으로만 견디지 말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의미와 기쁨을 찾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삶은 맑은 날만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춤추는 법을 배우는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인생내공매거진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궁신접수(躬身接受) (0) | 2025.05.16 |
---|---|
방황의 소유권 (0) | 2025.05.16 |
디테일이라는 풍경 (4) | 2025.05.16 |
비오는 날의 우산 - 베품에 관한 단상 (0) | 2025.05.16 |
놓아야 잡히는 세상 (0) | 2025.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