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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삼국지 : 한비자 세난편에서 배우는 interest의 중요성

협상/협상하는인간

by 조우성변호사 2012. 1. 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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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진술하여 이를 설득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이는 내 지식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내 말하는 기술이 부족해서도 아니며, 내 용기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함에 있어서의 어려움은 설득하려는 상대방의 마음(心意)을 잘 헤아려 내가 말하려는 것을 그에게 맞추기가 어려운 데에 있다.

설득하려는 상대가 높은 명예를 구하려는 사람인데 이익을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점으로 설득한다면 비천하다고 여겨서 낮게 대우받고 틀림없이 멀리 내쫓기게 된다.

설득하려는 상대가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인데, 높은 명예로 설득한다면 생각이 없고 현실에 어두운 자라고 여겨서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설득하려는 상대가 속으로는 이익을 좇지만 겉으로는 높은 명예를 따라는 척 하는데, 명예가 높아진다는 것으로 유세한다면, 상대는 겉으로는 그를 받아들이지 모르나 마음으로는 항상 멀리할 것이다.

- 세난편 중 -

<해설>

# 1

춘추전국시대, 이 당시 뛰어난 유세가들은 웅대한 뜻을 펼치기 위해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그 나라 왕들에게 자신의 구상과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숭고한 뜻을 가진 수 많은 유세가들의 의견 중에서 왕들에게 채택된 의견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오히려 배척되고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한비자는 안타까운 마음을 이 세난편에 담았다.

‘지식이 풍부하고, 기술도 충분하며, 나아가 용기까지 있다면 당연히 설득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지극히 순진한 생각이다. 왜 그런지를 알려주겠다’는 한비자의 강한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 바로 이 세난편이라고 생각한다.

#2

협상론은 1970년대 하버드 대학교에서 하나의 커리큘럼으로 제대로 확정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하버드 협상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테마 중의 하나가 바로 ‘Position(입장)과 Interest(욕구)를 구분하라’는 것이다.

Position은 그 사람의 명시적인(눈에 보이는) 입장을 말하고, Interest(욕구)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욕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어느 손님이 편의점에 들어와서 “콜라 한 병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마침 이 편의점에 콜라가 없다는 것이다.

‘콜라를 달라’는 것은 그 손님의 명시적인 입장(Position)이다. 하지만 그 손님의 마음 속 욕구도 그와 같을까? 혹시 마음 속 욕구는 ‘목이 마른데,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음료는 없을까요?’가 아닐까?

만약 편의점 주인이 손님의 마음 속 욕구(Interest)까지 생각할 수 있다면, 다른 대안(17차나 포카리스웨트)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버드 협상론은 강조한다.

“상대방의 Position에 매몰되지 말고, 그의 Interest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라. 그것이 협상의 첫걸음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버드 협상론이 나오기 이미 2,000여년 전에 한비자는 순진한 유세가들에게 준엄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그 사람의 마음 속 상태, 心意, 그 욕구(Interst)를 파악하라.”

# 3

모 공기업.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중견인사 K씨가 그 공기업의 수장(首長)으로 임명되었다. 정권의 실세이기도 한 그로서는 이 공기업에서 잠시 쉬어가면서 다음 선거에 재출마하거나 중앙정부기관으로 재천거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해당 공기업으로서는 정권의 실세가 수장으로 취임한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비록 해당분야의 전문성은 떨어진다 하더라도 막강한 파워를 갖춘 사람이 수장으로 왔기에 중앙 정부의 입김을 막으면서 독자적인 행보를 할 수 있는 기틀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K의 과도한 승부욕이었다.

K는 취임하자마자 다양한 사업, 그것도 해외에서 진행될 수 있는 사업 구상을 펼치기 시작했다. 상당한 비용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그 동안 해당 공기업에서 여러차례 논의한 끝에 가능성이 약하다고 보아 보류되었던 건들이다.

하지만 K는 자신의 임기 내에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무리한 사업추진을 지시했고, 해당 공기업의 참모진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상황이었다.

#4

그 공기업의 해외투자건으로 계약상담을 하러 온 모 본부장은 “윗선에서 계약을 추진하라고 해서 준비는 하지만 이 계약은 분명 엄청난 리스크가 있는 것인데, 감히 부정적인 말을 할 수가 없다”는 점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필자가 보아도 그 계약은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이지만 상당한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계약서 검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그 사업 자체를 만류할 것을 수장에게 설득하는 일이라는 점에 대해서 본부장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문제는 ‘이 사업 추진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라고 강하게 천명한 수장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그 수장의 심의(心意)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 사람은 ‘자신이 공기업 수장으로 있을 때 화려한 실적을 올린 다음 그것을 근거로 정치계에 다시 입문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그 욕구에 매몰되어서 무리한 추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모한 추진이 자신의 욕구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해 준다면 설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본부장에게 ‘법률의견서’를 하나 써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 법률의견서에 담길 내용으로는 ① 현재 추진하려고 하는 사업은 관련법상 상당한 리스크가 존재하는 점, ②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이 사업을 진행했을 경우에는 당시 결재라인에 있는 모든 관련자들이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 형법상 업무상배임죄의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점, ③ 이처럼 형사책임을 지게 될 경우 발생하는 부수적인 효력을 열거하면서 그 중에는 ‘각종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는 공무담임권의 제한’도 있다는 점 등을 제안했다.

#5

앞으로 정치권에 다시 발을 들여놓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에게, ‘당신이 현재 추진하려는 사업이 만약 잘못될 경우 당신은 형사적인 책임을 질 수도 있고, 이로 인해 출마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넌지시 알려주려 한 것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부하직원들이 어떤 논리를 제시해서 사업진행을 만류해도 꿈쩍하지 않던 그 수장이 필자의 의견서를 검토하고는 사업 진행을 접었다. 해당 공기업으로서는 엉뚱한 비용지출을 막은 결과가 된 셈이었다.

결국 그 수장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했고, 그 점에 집중했기에 무난한 설득이 가능했던 것이리라.

#6

1338년,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한 이후에, 새 나라를 세울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성계를 가장 고민에 빠뜨리게 한 일이 바로 고려의 충신 정몽주에 대한 처리문제였다.

이성계의 입장에서 정몽주는 제거하기엔 아깝고 그냥 두기엔 위험한 인물이었다. 아버지의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고 있던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자신이 나서서 정몽주를 설득해 보겠다고 나선다.

이성계는 반신반의하면서 중대사를 이방원에게 맡긴다.

당시 정몽주는 50대 중반인 반면 이방원은 20대 중반.

정몽주가 이방원에 대해 인간적인 호감을 갖기에는 이방원은 너무 혈기 방자했고, 성향도 많이 달랐다.

우리도 잘 아는 이야기지만 이방원이 먼저 정몽주에게 시조 한 수를 보낸다.

그것이 바로 '하여가'. 일종의 최후통첩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의 호탕한 기상이 드러나고는 있지만, 여기에는 평생을 유학자의 신념으로 살아온 정몽주에 대한 배려나, 새로운 나라를 위한 창건을 합리화할 대의명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냐라는 식의 정몽주가 보기에는 ‘천박한 의식’만이 엿보일 뿐이다.

권력이나 재물도 이미 누릴만큼 누린 사람에게 시정잡배 다루듯이 접근했으니 어찌 설득이 되겠는가.

정몽주의 답 시조가 바로 그 유명한 단심가.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는 이 시조를 쓰면서 아마도 이미 죽음을 예감했으리라

설득하려는 상대가 높은 명예를 구하려는 사람인데 이익을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점으로 설득한다면 비천하다고 여겨서 낮게 대우받고 틀림없이 멀리 내쫓기게 된다.

라는 한비자의 세난편 구절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7

검도 수련시에 즐겨 하는 말 중에 ‘見하지 말고 觀하라’라는 말이 있다.

서로 칼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각 대련자는 상대방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에 대한 예측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경우 검도의 하수들은 상대방의 발을 보는 반면, 검도의 고수들은 상대방 전체를 꿰뚫어 파악한다고 한다. 설령 발은 왼쪽을 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인 몸가짐은 오른쪽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상대방이 겉으로 드러내는 현상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진의, 심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바로 見의 단계가 아닌 觀의 단계라 생각된다.
 

<지혜 한자락>

1. 윗 사람에 대한 심의를 잘못 헤아려 엉뚱한 진언을 할 때, 그 진언은 버림을 받을 수 있으며 나아가 진언한 자는 내쳐질 수도 있다.

2. 설득을 위해서는 설득하려는 자의 능력이나 기술에 포커스를 맞출 것이 아니라 설득을 해야 할 대상의 상황, 심리적인 상태에 집중해야 한다.

3. 상대방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염두에 두고 논리를 펴갈 때, 우리는 설득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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