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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철로를 달리는 노스탤지어 -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조우성2 2025. 6. 7. 21:07

[음악 이야기] 시간의 철로를 달리는 노스탤지어 -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밤 여덟 시, 어딘가에서 기적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스의 작은 도시 카테리니로 향하는 기차는 정확히 8시에 떠나간다. 그 출발의 순간은 단지 시간표의 한 지점이 아니라, 상실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인간 영혼의 보편적 풍경이다. 실크로드 트리오가 들려주는 이 이국적 선율은 어떻게 한국인의 가슴을 파고들었을까. 우리는 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카테리니를 그리워하는가.

▶ 지중해의 서정을 품은 선율과 그 기원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의 원곡은 그리스 민요 '오리오스 이네 오 아우고스티스(8월은 아름답다)'에서 비롯되었다. 이 노래는 1967년부터 1974년까지 그리스를 지배했던 군사 독재정권, 일명 '콜로넬 정권(The Regime of the Colonels)' 시기에 더욱 의미심장한 울림을 가졌다. 당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 이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 너머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카테리니는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지방의 도시로, 많은 정치적 망명자들이 이곳을 통해 국경을 넘었다. 8시에 떠나는 기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자유를 향한 탈출구였던 것이다.

도리안 선법(D-E-F-G-A-Bb-C)을 기반으로 한 이 곡의 화성 구조는 서구의 장조·단조 체계와는 미묘하게 다른 정서를 전달한다. 특히 하강하는 멜로디 패턴과 반음계적 진행은 에게해의 짙푸른 물결처럼 굽이치며 기쁨보다는 슬픔에, 환희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감정을 자아낸다. 부조니카(부주키)의 독특한 '트레몰로' 주법과 현을 타고 흐르는 그리스적 멜랑콜리는 한국인의 정서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한(恨)'과 묘하게 공명한다.

지중해의 햇살 아래 피어난 이 노래가 동양의 끝자락에서 마음의 메아리를 일으킨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닐까. 그리스인들의 '레벤티아(leventía)'—고난 속에서도 자존심과 낙관을 잃지 않는 기질—는 한국인의 '한(恨)'과 '정(情)'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있다. 그리스인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노래하던 그 멜로디가 태평양을 건너 누군가의 눈물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것은 음악이 가진 보편적 언어의 힘이다. 지중해의 파도 소리와 한반도의 밤바다가 서로 다른 음색으로 속삭이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인간 영혼의 심연은 하나인 것이다.

▶ 시간을 넘어선 향수의 언어, 그 보편적 공감

1974년, 유신체제의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긴급조치 4호가 내려진 암울한 시기에 이 노래는 TBC-FM '다카포와 함께'를 통해 한국에 소개되었다. 급격한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노래는 한국인에게 특별한 위안을 주었다. '국민총화'라는 구호 아래 억압된 개인의 감정,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이들, 가난을 피해 독일이나 중동의 낯선 땅으로 떠나야 했던 노동자들에게 카테리니행 기차는 자신들의 상황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것은 그저 이국적 선율의 매력이 아니라, 떠남과 그리움이라는 보편적 인간 조건에 대한 깊은 공감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시간표, 가보지 못한 역, 타보지 못한 기차. 그럼에도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것이 바로 '노스탤지어'의 역설이다.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그리워한다.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한 향수는 어쩌면 우리 영혼의 본질적 방랑성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노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연인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민간 전설에 따르면, 카테리니 기차역에서 매일 저녁 8시 기차를 기다리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노래의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연인은 내전 시기에 정치적 이유로 도망쳐야 했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여인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 애틋한 기다림의 서사는 그리스 사회의 정치적 상처와 개인의 애환이 교차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상실이라는 보편적 정서가 역사적 맥락 속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획득한 것이다.

이 노래는 단순한 외국 가요가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월드뮤직'의 선구적 위치를 차지한다. 그것은 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 감성의 보편성을 확인시키는 문화적 교량이었다. 이후 등장한 많은 크로스오버 음악의 원형이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테리니행 기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여정을 상징한다. 그것은 고향(존재의 근원)으로부터의 이탈이자,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열린 여정이다. 디아스포라적 존재로서의 인간, 끊임없이 본질적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인간 조건의 양가성이 이 노래 속에 담겨 있다.

▶ 시대를 넘어선 울림

디지털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도 이 아날로그적 그리움의 노래는 여전히 울려 퍼진다. 그것은 기술의 발전이 결코 채울 수 없는 인간 영혼의 근원적 빈 공간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우리는 왜 여전히 8시에 떠나는 카테리니행 기차를 그리워하는가? 그것은 현대인의 단절된 영혼이 다시 연결을 갈망하는 내밀한 외침이다.

노스탤지어는 단순한 과거 지향이 아니라, 영혼의 고향을 향한 형이상학적 갈망이다. 카테리니행 기차의 기적소리는 잊혀진 시간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열린 문틈으로 잠시나마 존재의 근원을 엿본다. 

그리스의 군사 독재 시절, 정치적 자유를 갈망하던 이들에게 이 노래가 주었던 희망, 그리고 한국의 유신체제 시절,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던 이들에게 이 노래가 전해준 위안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적 맥락 속에서도 음악은 인간의 보편적 열망을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카테리니 기차역에서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던 여인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8시의 종소리가, 기차의 기적이,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한, 이 노래는 영원히 울려 퍼질 것이다.

https://youtu.be/kJQuWX9RRJ0?si=dkC0LU0lUYlwh6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