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
[컬럼 / 기다림의 미학]
기다림이 뭘까? 동양에선 이걸 수행의 일부로 봤다. 달마는 벽을 마주하고 9년을 기다렸다. 분청사기를 굽던 도공은 불과 흙이 알아서 말을 걸 때까지 사흘을 꼼짝없이 지켜봤다. 그 느린 시간 속에서야 비로소 무언가가 완성된다. 과거는 침묵으로 다가오고, 미래는 소란으로 밀려온다.
반면 서양은 다르다. 산업혁명 이후 시계는 쉴 새 없이 똑딱이며 사람을 몰아붙였다.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를 때부터 기다림은 사치가 됐다. '디지털타임족'은 분초를 쪼개며 숨 가쁘게 달린다.
그런데 웃기지 않나? 기다릴수록 시간은 더 느려진다. 스마트폰을 들었다 놨다 하며 답장이 오길 목 빠지게 기다리는 우리 모습은 좀 우스꽝스럽다. 새로고침 버튼을 연신 누르며 이메일을 확인하고, 주식 차트 앞에서 눈을 부릅뜨는 사람들. 한 번쯤 거울을 봤으면 좋겠다. 그 초조한 표정,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쿤데라가 말한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떠올리며 나는 ‘참을 수 없는 기다림의 가벼움’이라 이름 붙여본다. 급박함은 시간을 쫓고, 여유는 시간을 품는다.
옛 선인들은 기다림에서 뭔가를 배웠다. 다도를 할 때 물이 찻잎을 적시길 고요히 기다린다. 그러다 향이 은은히 퍼지면 그제야 찻잔을 든다. 그 시간은 예술이다. 인내는 마음을 비우고, 조급함은 향을 빼앗는다. 나도 차를 좋아하는데, 처음엔 이해가 안 갔다. 그냥 뜨거운 물에 티백 넣고 흔들면 되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한 번 제대로 기다려봤다. 맛이 다르다. 성급하면 향을 잃는다. 우리는 왜 그렇게 급하게 티백을 건져 올리는 걸까? '느림미학'은 차 한 잔에 스며든다.
기다림은 완성으로 가는 길이다. 된장이 항아리에서 숙성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김치도 며칠을 묵혀야 제 맛이다. 아이가 자라는 건 더 길다. 계절이 돌아가며 세상을 바꾸는 것도 그렇다.
서양의 시간은 직선처럼 쭉 뻗지만, 동양의 시간은 둥글게 돈다. 봄은 씨앗을 심고, 가을은 열매를 거둔다. 노자가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라 했던가. 가만히 있어도 모든 게 이뤄진다는 말이다. 성급함을 내려놓고 때를 기다리면 삶이 제자리를 찾는다.
기다릴 줄 아는 건 단순한 인내가 아니다. 인내는 이를 악물고 참는 거라면, 기다림은 시간을 끌어안는 태도다. 우리 모두 뭔가를 기다린다. 연인의 메시지, 시험 결과, 퇴근 시간, 봄이 오는 소리. 기다리다 지쳐본 나니까 안다. 그 시간이 고되지만, 결국 삶의 한 조각이다. 기쁨은 희망으로 피어나고, 고단함은 인내로 녹아든다. 언젠가 돌아보면 그 5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걸 깨닫는다. 시간쉼터에서 우리는 숨을 고른다.
그러니 우리, 조금 느려져도 괜찮다. 기다림을 적이 아닌 친구로 받아들이면 시간은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않는다. 그저 나와 함께 걷는 동행이 된다. 오늘 좀 늦은 지하철을 기다리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