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내공매거진/한비자리더십

자리는 그릇의 깊이를 드러낼 뿐이다

조우성2 2025. 6. 6. 20:25

[한비자 리더십] 자리는 그릇의 깊이를 드러낼 뿐이다

 

삼대(三代)째 내려온 떡갈비 명가, 한미당(韓味堂).

 

할아비는 손으로 신화를 썼고, 아비는 발로 지도를 넓혔다. 그들의 시대에 자리는 곧 사람의 다른 이름이었다. 손맛이 자리였고, 영업력이 곧 권좌였다. 역사는 그렇게 흘렀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쌓여서 굳는다. 문제는 그 굳은 땅을 깨고 새 순이 돋을 때 터졌다.

 

미국에서 MBA를 마친 손자가 돌아왔다. 그의 눈에 할아버지의 손맛은 비계량적 자산이었고, 아버지의 영업망은 관리되지 않는 네트워크였다. 그는 회사를 숫자로 다시 쓰고자 했다. 첫 인사는 파격이었다. 생산 라인에서 30년간 뼈가 굵은 박 부장을 신임 공장장에 앉혔다. 묵묵한 시간에 대한 예우였고, 현장에 보내는 신호였다. 직원들은 박수를 쳤다. 그 박수는 짧았다.

공장장이라는 자리는 그가 평생 지켜온 작업대가 아니었다. 그 자리는 ERP 화면의 숫자로 말하고,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며, 신세대 노조의 언어를 이해해야 하는 차가운 기계였다. 박 공장은 당황했다. 그의 손은 여전히 신의 경지에 머물렀으나, 그의 머리는 낯선 시스템 앞에서 멈춰 섰다. 어제의 자부심은 오늘의 무능이 되었다. 존경받던 장인(匠人)은 변화를 가로막는 완고한 벽이 되어갔다. 그는 끝내 소리쳤다. "기계가 뭘 알아!" 그 외침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자리는 그에게 영광의 관을 씌우는 듯했으나, 실은 그의 영혼을 발가벗기는 형틀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때로 위험한 자기기만이다. 그것은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편리한 변명일 뿐이다. 진실은 더 서늘하다. “자리는 다만, 그 사람의 그릇을 남김없이 드러낼 뿐이다.” 그릇이 작으면 넘치고, 형태가 맞지 않으면 깨진다. 한미당의 젊은 사장은 박 공장의 갈라진 손을 보며 고뇌했다. 그의 충심은 진짜였으나, 그의 그릇이 공장장이라는 자리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을 차가운 숫자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이는 2천 년 전 한비(韓非)가 피 토하며 외쳤던 군주의 길이다. 그는 군주가 신하의 마음()이 아닌 결과()를 보라 했다. 그에게 자리()’는 신하를 시험하는 저울이다. 권세와 책임을 함께 주고, 명확한 법()으로 과업을 내린 뒤, 그 결과를 헤아리는 술()로써 능력을 재단해야 한다는 것. ()에 기댄 인사는 신하와 군주 모두를 베는 칼이 된다. 마키아벨리 또한 군주에게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라고 속삭이지 않았던가. 그 두려움이란 변덕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원칙과 시스템이 주는 서늘한 예측 가능성이다. 박 공장에게 필요했던 것은 인간적 온정이 아니라,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목표와 그것을 측정할 냉정한 시스템이었다.

 

피터 드러커는 이를 목표에 의한 관리(MBO)’라는 현대적 언어로 번역했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 그의 말은 박 공장의 비극을 관통한다. 박 공장의 장인정신은 위대했으나, 측정될 수 없는 과거의 유산이었다. 새로운 자리는 새로운 언어(데이터)’를 요구했고, 그는 끝내 그 언어를 배우지 못했다. 한비자의 '()'이 드러커의 '목표(Objective)'와 이토록 닮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조직의 생존은 인치(人治)’의 불확실성을 넘어, 예측 가능한 법치(法治)’의 시스템 위에 세워져야 함을 의미한다.

 

젊은 사장의 진짜 실수는 박 공장을 믿은 것이 아니다. 그의 과거의 공헌에 대한 보상과 미래의 직책을 혼동한 것이다. 박 공장에게는 공장장이라는 무거운 갑옷이 아니라, 그의 손맛과 정신을 후대에 전수하는 명예 장인이라는 영예로운 자리가 필요했다. 그의 그릇에 맞는 자리를 찾아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스템이 갖춰야 할 마지막 인간적 통찰이다.

 

리더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관상가가 아니다.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그릇(인재)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그릇에 가장 잘 맞는 쓸모(자리)를 찾아주는 냉철한 감식자(鑑識者)가 되어야 한다. 한미당의 미래는, 이제 그 서늘한 진실을 직시하고 낡은 그릇을 깨뜨릴 용기에 달려 있었다. 사람을 탓하기 전에, 그를 올려놓은 자리가 올바른지 먼저 돌아볼 일이다.

 

* 인포그래픽

https://almondine-charm-whale.glitch.me/hanbi.html

 

한비자 리더십 인포그래픽

최종 교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위험한 자기기만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인재의 그릇에 맞는 자리를 찾아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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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리더십

자리는 그릇의 깊이를 드러낼 뿐이다

 

한미당(韓味堂) 세 세대의 이야기

할아버지 세대

"손으로 신화를 썼다"

장인정신과 손맛으로 명성을 쌓음

아버지 세대

"발로 지도를 넓혔다"

영업력으로 사업 확장

손자 세대

"회사를 숫자로 다시 썼다"

MBA 교육을 받고 시스템 경영 도입

핵심 사례: 박 공장장의 비극

 

승진과 기대

30년 경력의 박 부장이 공장장으로 승진, 직원들의 환호

 

현실과 충돌

ERP, 데이터 분석, 노조 관리 등 새로운 역량 필요

 

역량 불일치

"어제의 자부심은 오늘의 무능이 되었다"

 

결과

장인정신과 현대 경영 사이의 괴리, 시스템 실패

한비자 리더십의 핵심 교훈

"자리는 다만, 그 사람의 그릇을 남김없이 드러낼 뿐이다."

한비자의 통찰

  • 신하의 마음(心)이 아닌 결과(功)를 보라
  • 자리(勢)는 신하를 시험하는 저울
  • 법(法)으로 과업을 내리고 술(術)로 능력을 재단
  • 정(情)에 기댄 인사는 모두를 해친다

현대적 적용

  • 피터 드러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
  • 목표에 의한 관리(MBO)의 중요성
  •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法治) 시스템 구축
  • 과거 공헌과 미래 직책의 분리

진정한 리더의 역할

 

리더는 냉철한 감식자(鑑識者)가 되어야 한다

  •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그릇(인재)을 정확히 파악한다
  • 그릇에 가장 잘 맞는 쓸모(자리)를 찾아준다
  • 사람을 탓하기 전에 자리가 올바른지 먼저 돌아본다
  • 박 공장장에게는 '공장장'이 아닌 '명예 장인'이라는 자리가 필요했다

최종 교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위험한 자기기만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인재의 그릇에 맞는 자리를 찾아주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