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내공매거진/개념탑재

재승덕, 능력과 덕성 사이의 영원한 딜레마

조우성2 2025. 6. 4. 12:15

[개념탑재] 재승덕, 능력과 덕성 사이의 영원한 딜레마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통치자의 조건을 논하며, 지혜와 덕성을 겸비한 철인왕을 이상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현실 역사는 종종 그와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이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명성을 얻는 '재승덕(才勝德)'의 현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문명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보편적 딜레마였다.

중국 한나라의 사마천은 『사기』에서 흥미로운 관찰을 남겼다. 그는 재능은 뛰어나지만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인물들을 기록하면서, "천하의 인재는 덕과 재를 겸비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반면 서양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통해 통치자에게는 도덕성보다 실용적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동양과 서양의 접근 방식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덕(德)을 재(才)보다 우위에 두었다. 조선시대 과거제도에서도 인품과 학문을 함께 평가했으며, "덕 없는 재주는 화를 부른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높았다. 반면 서구 사회는 개인의 능력과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 상대적으로 재능에 대한 관용도가 높았다.

역사 속에서 재승덕의 사례는 끊임없이 등장한다. 나폴레옹은 군사적 천재였지만 권력욕으로 인해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고, 바그너는 불멸의 음악을 남겼지만 반유대주의라는 치명적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광조는 뛰어난 개혁 이념을 가졌으나 성급함과 독선으로 인해 좌절을 맛보았다.

"재주는 칼과 같아서, 덕이 없으면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흉기가 된다." 이 말은 오늘날 인공지능과 첨단기술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더욱 절실한 의미로 다가온다. 기술적 혁신의 속도가 윤리적 성찰을 앞서는 현상이 빈번해지면서, 재승덕의 위험성은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수많은 사건들—유능한 CEO의 부정부패, 뛰어난 과학자의 연구윤리 위반, 탁월한 예술가의 인격적 추문—은 모두 재승덕의 현대적 변주곡이다. 능력 중심의 평가 시스템이 보편화된 지금, 덕성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진정한 위대함은 재와 덕의 조화에서 나온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공자, 소크라테스, 간디와 같은 인물들이 시대를 초월해 존경받는 이유는 뛰어난 지혜와 고결한 인품을 동시에 갖추었기 때문이다. 재승덕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과 인격, 효율과 윤리 사이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인 것이다.

德不孤 必有隣 (덕불고 필유린) - 『논어』에서 공자가 남긴 이 말처럼, 덕은 혼자 있지 않으니 반드시 벗이 있다는 진리는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