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내공매거진/어느 인생이야기

프로야구 1군 불펜포수의 하루

조우성2 2025. 6. 4. 12:09

 <어느 인생이야기> 프로야구 1군 불펜포수의 하루

2024년 8월 15일 (목요일) 맑음

오후 1시 30분, 나는 잠실야구장 선수 입구를 통과한다. 오늘도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경기가 있는 날이다. 선수들보다 1시간 30분 일찍 도착하는 것이 내 일상이다. 불펜포수 김정민, 29세. 고려대학교를 졸업했지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이 길로 들어선 지 벌써 4년째다.

미트를 차고 불펜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익숙하다. 피칭 머신 점검, 배팅 케이지 정리, 연습구 준비까지 모든 것이 내 몫이다. 선수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 평일 경기를 기준으로 오후 1시 30분부터 운동장에 도착해 피칭 머신, 배팅 케이지, 연습구 등 선수들의 훈련을 준비한다.

"정민아, 오늘도 수고해!"

선수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먼저 도착한 타자들을 위해 배팅볼 투수 역할을 시작한다. 나는 불펜포수이자 배팅볼 투수다. 경기 전에는 타자들의 타격을 돕기 위해 하루에만 수백개의 공을 던지기도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300개가 넘는 공을 던질 예정이다.

오후 3시, 본격적인 타격 연습이 시작되면서 내 어깨는 이미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각 타자마다 원하는 구질과 위치가 다르다. 홈런왕을 노리는 최형우 선수는 "좀 더 바깥쪽으로!" 라고 요청하고, 안타 제조기 박해민 선수는 "직구만 계속!" 이라고 주문한다. 나는 그들의 요구에 최대한 맞춰 던진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지원이다.

오후 5시, 경기 시작 1시간 전. 이제 진짜 내 시간이다. 불펜으로 향하는 구원투수들을 위해 자리를 지킨다. 오늘 선발 투수의 컨디션을 보니 5회쯤 교체될 것 같다. 불펜 코치와 함께 구원투수들의 몸풀기를 준비한다.

"오늘 어깨 어때?" 

중간계투 에이스인 정수빈에게 묻는다. 그의 표정을 보고 컨디션을 가늠한다. 이것도 내 역할 중 하나다. 불펜에서 몸을 푸는 투수들의 공을 받아주면서 투수들의 몸 상태를 점검하고 투수의 멘탈을 관리해주는 역할까지도 해야 한다.

경기가 시작되고 4회말, 내선전화가 울린다.

"정수빈 준비시켜!"

감독의 지시가 떨어진다. 나는 즉시 정수빈과 함께 불펜에서 몸풀기를 시작한다. 18미터 거리에서 그의 공을 받으며 구위와 제구력을 체크한다. 시속 150km가 넘는 공이 내 미트를 때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오늘 구위 괜찮네!"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이 순간, 나는 단순한 공받이가 아니라 그의 동반자다. 5회초가 끝나자마자 정수빈이 마운드로 향한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사히 마무리하기를 기도한다.

경기 도중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언제든 다음 투수가 준비될 수 있도록 불펜에서 대기한다. 오늘은 다행히 정수빈이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경기가 끝난 후 오후 10시 30분, 내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용한 장비 정리, 불펜 청소, 내일 경기를 위한 준비까지 모든 뒷정리가 내 몫이다. 경기가 끝난 후 뒷정리도 이들 몫이다. 선수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더 늦게 퇴근하는 셈.

한국 프로야구에서 우리 같은 불펜포수는 약 10명 정도다. 한국의 경우 연봉은 3,000만 원에서 5,000만원 수준으로 육성선수보다 비슷하거나 많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계약직이라 고용이 불안정하다. 그래도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오늘을 돌아본다. 2024 시즌 KBO 리그 전체 선수 평균 연봉이 역대 최고인 1억원을 넘어섰다는 뉴스를 봤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림자 속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한다.

때로는 이 일이 힘들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을 잘 모른다. "공이나 받는 일"이라고 쉽게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없으면 투수들의 몸풀기가 제대로 되지 않고, 타자들의 연습도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내년이면 서른이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정수빈이 마운드에서 던진 완벽한 공을 받았을 때의 그 짜릿함, 타자가 내가 던진 공으로 홈런을 쳤을 때의 뿌듯함을 생각하면 당분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로야구 불펜포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선수들을 지원하는 조연이지만, 나 또한 이 무대의 일부라는 자부심이 있다. 내일도 오후 1시 30분, 나는 어김없이 야구장으로 향할 것이다. 선수들의 꿈을 받아주는 미트를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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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포수는 프로야구의 숨은 조연이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이들 덕분에 우리가 사랑하는 야구가 더욱 완성도 높게 펼쳐질 수 있다. 그들의 노고와 헌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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