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내공매거진/개념탑재

아우라, 시대를 관통하는 신비로운 빛의 여정

조우성2 2025. 6. 4. 12:04


 [개념탑재] 아우라, 시대를 관통하는 신비로운 빛의 여정

바람이었다. 고대 그리스어 'αὔρα(아우라)'는 본래 '미풍'이나 '산들바람'을 뜻했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 만질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 이 단순한 단어는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며 인간 문명사에서 가장 신비로운 개념 중 하나가 되었다.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 성인들의 머리 위에 그려진 후광이 있었다. 중세의 화가들은 붓끝에 신성을 담았다. 금빛 원은 거룩함을 드러냈고, 그 빛은 속세와 천상을 가르는 경계였다. 현대 소셜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들이 추구하는 '개인적 매력'에 이르기까지, 아우라는 시대의 옷을 갈아입으며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투영해왔다.

동양과 서양에서 아우라에 대한 인식은 갈렸다. 서양에서는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를 정의했다.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 현상." 그는 이를 "시간과 공간의 기이하게 얽힌 짜임"이라 불렀다. 예술의 진정성과 유일성이 그 안에 있다고 보았다.

동양에서는 다른 길을 걸었다. 불교의 '광명(光明)'이 있었고, 도교의 '기운(氣運)'이 있었다. 한국의 전통 초상화에서 인물의 '기품'을 표현하는 방식은 서양의 아우라 개념과 만났다. 남제의 화가 사혁은 『고화품록』에서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말했다. 그림에 생동하는 기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우라를 둘러싼 흥미로운 사실들이 있다. 첫째, 중세 유럽의 성화에서 후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인의 내면적 덕성을 가시화하는 상징이었다. 둘째, 20세기 중반 러시아의 과학자 세묜 키를리안이 발견한 '키를리안 사진술'이 있었다. 전기장을 이용해 물체 주변의 광채를 촬영하는 기법이었다. 1980년대 뉴에이지 운동과 함께 재조명되며 현대적 '아우라 사진'의 원형이 되었다. 셋째, 현대 뇌과학은 인간의 뇌에서 실제로 미약한 전자기장이 발생함을 입증했다. 고대인들의 직감이 완전히 허상은 아니었던 셈이다.

"진정한 아우라는 모방할 수 없는 고유성에서 나온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는 깊은 울림을 준다. 무수한 복제와 모방이 가능한 시대다. 진정성 있는 개성의 가치는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한다. 현대 사회에서 아우라는 개인 브랜딩과 카리스마의 핵심 요소로 재탄생했다. SNS 시대의 인플루언서들이 추구하는 것도 결국 디지털 공간에서의 독특한 아우라 창조다.

아우라의 여정은 길었다. 종교적 경외감에서 예술적 감동으로, 다시 개인적 매력으로 변주되어왔다. 형태를 달리할 뿐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타인과 구별되는 독특함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 만질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었다.

바람은 여전히 분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그 바람이 21세기에도 우리 곁을 맴돈다. 아우라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뿐이다.

*"氣韻生動(기운생동)" - 남제(南齊) 화가 사혁(謝赫)의 『고화품록(古畫品錄)』*

이 사자성어는 그림에 생동하는 기운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진정한 아우라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한 고전적 표현이다.

https://codepen.io/odpyjxhw-the-decoder/full/VYLKOb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