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22. 04:09

조우성변호사의 에토스이야기 : 당신은 '물질'인가 '생명'인가


분류 : Ethos > Objective

<1>

 

당신은 물질인가,  생명인가?

 

참으로 뜬금없는 질문이리라. ‘당연히 나는 ‘생명’이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여기서 말하는 ‘생명’의 속성, 그 진정한 속성이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한 철학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베르그송’이고,

그가 창안한 개념이 바로 ‘엘랑비탈(Elan Vital)’이다.

 


‘엘랑비탈’이란

생명을 물질로부터 뚜렷이 구분하는 개념으로  

‘주어진 여건 아래에서 스스로 능동적으로 변화하기 위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에너지’라고하는

생명의 특성을 제시하기 위한 일종의 가설이다.


<2>

엘랑비탈은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이1907년 그의 명저인 <창조적 진화>에서 처음 소개한 개념이다.

 

☞ <창조적 진화>

이 책은 단순히 사변적인 기초 위에서 형성한 이론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생물학, 물리학, 심리학 등 자연과학적인 지식에 충실하면서

과학과 철학의 근본적인 결합을 모색함과 동시에

생명 진화의 역사를 열린시각으로 탐구한 명저로 평가받음.

 

 

 

 

<3>

베르그송은 생명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인간의 삶과 세계에서 ‘결정론(모든 운명은 정해져 있다)’을 부정하고

자유의 존재성을 강조하려 노력했다.

베르그송은 ‘생명’이라고 하는 현상을 ‘물질’과 비교하면서 출발한다. 그에 따르면 생명은 물질과 대립적인 개념이다.

물질은 외부의 강제적인 압력에 의해서만 변화하지만 ‘생명’이란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변화한다는 점에 착안한다.

또한 우주 속의 모든 물질은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지속적으로, 그리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변화를 이어간다.


그러나 생명 현상은 이 엔트로피 법칙을 거스르는 특수한 현상으로서,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 물질적 흐름을 거스르는 에너지가 충만해지면 우주 어디서든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 열역학 제2법칙>

(1) 자연현상은 언제나 물질계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함.

물질계는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상태로 이동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왜냐하면 질서정연한 상태보다 무질서한 상태의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즉 확률적으로 보면 질서정연한 상태 놓여 있을 경우에 비해 무질서한 상태에 놓일 경우가 훨씬 많다.

예를 들어, 새 학기를 맞아 깨끗하게 정리해 둔 책상은 십중팔구 일주일 정도 지나면 금세 어지럽혀질 것이다. 연필꽂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연필이며 온갖 펜들이 책상 여기저기 나뒹굴고, 줄 맞춰 늘어서 있던 책들도 두어 권쯤 자기 몸을 활짝 펼친 채 책상 위에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기 일쑤다. 

여기에 지우개, 책갈피, 메모지까지 가세하면 우리 책상은 난잡하기 이를 데 없이 ‘무질서해진다’.

이처럼 어떤 물리계가 이전보다 더 무질서해지면 우리는 그 계의 엔트로피가 증가했다고 말한다.

(2) 환경과 상호작용하지 않는 모든 폐쇄 체제는 환경으로부터 에너지의 투입을 받지 못하므로,  엔트로피 작용에 의해 소멸되거나

무질서 상태(chaotic state)로 가려는 경향이 있다.  

자연계의 현상은 반드시 엔트로피가 증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4>

그는 생명이라는 것은 ‘가장 원시적인 상태’로부터  ‘배와 배 사이에서 연결부를 형성하는 성체를 매개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경과해 나아가는 과정’이라 보았다. 

또한 생명은 ‘진화의 여러 노선으로 나뉘어 그 위에서 보존하면서 적어도 규칙적으로 유전되고 서로 첨가되어 새로운 종을 창조하는 변이들의 심층적 원인’으로 파악했다.

일반적으로 종들이 공통의 뿌리에서 분기되기 시작하면, 그러한 분기는 진화를 향해 전진하면서 가속화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생명이 진화해 온 역사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은 ‘창조’란 이러한 생명이 진화하는 가운에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와중에 발생하는 ‘질적 비약’을 의미한다고 했다.

 

 

<5>

 

그런데 그러한 질적 비약을 의미하는 ‘창조’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베르그송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생명, 種들이 동일한 근원을 가지는데, 이 근원으로부터의  하나의 폭발적 힘, 즉 엘랑 비탈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베르그송은 조개의 눈과 척추동물의 눈을 사례로 들었는데, 서로 다른 진화과정을 거친 조개와 척추동물의 눈이 구조의 복잡성에서는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기능의 단순성에 있어서는 놀랍도록 동일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눈의 기능이란 빛에 대한 단순한 감수성으로 귀착하며, 이것을 작동시키기 위해 광선을 한 점에서 투명하게 통과시키고, 투명한 입구 뒤에 빛을 수렴하는 장소인 망막이 존재하며, 망막에는 정해진 빛에 대해 선택적으로 신경막에 이르게 하는 기관이 자리한다.

그런데 가리비 같은 연체동물의 눈은 구체적인 구조에서는 사람의 눈과 대단히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보는 기능을 실현하기 위한 기관이라는 측면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 즉 사람의 눈처럼 세포 구조로 된 망막, 각막, 수정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6>

 

이처럼 서로 다른 종들이 각자 진화의 노선에서 매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기관들이 출현하는 것은

진화를 이루는 약동(도약)이 근원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엘랑비탈, 즉 ‘생명의 도약을 이루는 근원적 힘’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베르그송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나의 생명 속에는 무수한 잠재력(에너지)이 포함 되어 있다.

2) 이 에너지가 축적되는 경향은 식물로, 활동력으로 변환하는 경향은 동물로 현실화 된다.

3) 하나의 생명속에서 두 경향이 양립할 수 없게 되면 에너지는 폭발한다.

4) 생명은 폭발에 의해 완전한 생명을 향해 도약한다.

 

<7>

 

즉 베르그송은 진화의 과정을 단순히 적자 생존의 개념이 아니라 에너지의 폭발로 풀어낸 것이다.

이때 생기는 폭발과 도약을 베르그송은 엘랑 비탈 (‘elan vital)이라 부른 것이다.

폭발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크다.

수류탄이 폭발하면 어느 방향으로 터질지 모르는 것처럼   생명의 진화 과정 역시 예측 불가능한 여러 방향으로 퍼져 나간다고 한다.

베르그송이 내세운 엘랑 비탈이 드러내는 중요한 의미는,

다른 사람들은 진화론으로부터 ‘자연 도태 = 경쟁원리’라는 도식만을 도출한 데 반해서

‘잠재-현실화’라는 다이너미즘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규정되어 있는 것이 없고 정해진 것이 없이 내부의 에너지를 분출한다는 식의 풀이를 통해 다양한 해석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8>

 

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이러한 ‘엘랑비탈’이란 개념을 역사에서의 ‘도전과 응전’의 개념에 접목시켰다.

중국 대륙의 북쪽에 황허강, 남족에 양쯔강이 있다. 토인비 교수는 불가사의한 중국 고대 문명의 생성을 ‘도전과 응전’이라는 논리로 명쾌하게 풀어냈던 탓에 자신의 역저<역사의 연구>를 일약 20세기 최고의 명저로 끌어 올렸다.

 

 

 

1) 양쯔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 : 인간에게 가해지는 도전이 얼마나 잔인하고 혹독한 것인지 경험할 수 없었다.

2)황허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 : 고통스러운 삶을 극복해야 하는 응전의 기회가 잠시도 쉬지 않고 찾아들었다.

결국 양쯔강 유역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불행을 뚫어가기 위한 응전의 기회가 없었기에 문명이라 불리는 새로운 문화가 탄생할 수가 없었던 반면, 황허 유역의 사람들은 외부로부터의 도전이 강하면 강할 수록 응전의 태세도 격렬해졌으며, 바로 이같은 도전과 응전의 과정에서 문명이 발생한 것으로 본 것이다.

  

<9>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과연 당신은 생명체인가?

과연 당신은 거친 도전에 대해 힘찬 응전을 하고 있는가?

그 힘찬 응전 속에서 능동적인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엘랑비탈을 가진 살아있는 생명체라 말할 수 있으리라…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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