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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매혹적이지만 위험한 단순화의 함정

조우성2 2025. 6. 7. 20:57

[고전읽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매혹적이지만 위험한 단순화의 함정


인류 역사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으로 요약하며 등장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꿰찼지만, 그 화려한 외피 아래에는 심각한 결함이 숨어있다. 하라리는 인류사를 매끄러운 서사로 재구성하며 독자를 홀리지만, 그 과정에서 역사적 복잡성을 희생시킨다.

하라리가 '허구를 믿는 능력'을 인류 성공의 핵심으로 격상시킬 때,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실증적 증거보다 레토릭에 더 의존한다. 인지혁명을 7만 년 전으로 단정하는 그의 주장은 고고학적 발견들과 충돌하며, '상상의 공동체'라는 개념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이론을 과도하게 단순화한다. 하라리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쟁 중인 복잡한 역사적 발견들을 마치 확립된 사실인 것처럼 제시한다.

특히 농업혁명을 '역사상 최대의 사기'로 규정하는 부분은 도발적이지만 지나치게 결정론적이다. 수렵채집 생활을 낭만화하고 농경 사회를 비참한 것으로 묘사하는 이분법은 인류 역사의 다양한 경로와 선택들을 무시한다. 식량 생산 방식의 변화가 가져온 복잡한 사회적, 문화적 발전을 '사기'로 일축하는 것은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오류다.

오늘날 하라리의 책이 대중적 인기를 끄는 이유는 복잡한 세계를 간결한 서사로 정리해주는 위안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화는 위험하다. 현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기후변화, 불평등, 인공지능—은 하라리가 제시하는 것처럼 단일한 서사로 풀릴 수 없는 복잡성을 지닌다.

하라리의 가장 도발적인 주장인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전망은 기술결정론에 빠져있다. 그는 인간의 능동적 선택과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을 간과하며, 마치 미래가 이미 결정된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가 비판하는 '신화'를 자신도 만들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피엔스』는 분명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러나 비판적 시각 없이 읽는다면 위험하다. 하라리의 유려한 문체와 대담한 주장에 매료되기 쉽지만, 우리는 그의 단순화된 서사가 현실의 복잡성을 얼마나 희생시키는지 경계해야 한다. 인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원한다면, 하라리의 책을 출발점으로 삼되 더 다양한 관점을 탐색해야 할 것이다.

결국 『사피엔스』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제공하는 답변보다 던지는 질문에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하라리의 답변이 불완전하더라도, 그 질문들을 던지게 만드는 힘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다만 그의 대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지적 경계심을 유지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