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의 저울
[컬럼 / 부끄러움의 저울]
요즘 휴대폰 화면을 스크롤하다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위공직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뉴스들을 접할 때마다 "한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의 처량을 취하지 말라"는 채근담의 구절이 머릿속을 맴돈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으로 얻은 찰나의 이익과 역사에 기록될 부끄러움 사이의 무게를 그들은 어떻게 저울질했을까?
부끄러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말 '붉다'에서 파생된 이 감정은 얼굴이 붉어지는 신체적 반응과 연결된다. 서양에서는 개인의 실패에 대한 감정인 죄책감(guilt)과 사회적 평가에 관련된 수치심을 구분하지만, 동양에서는 부끄러움(恥)을 내면의 도덕적 잣대로 여겨왔다.
정약용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군자의 시작이요, 의로움을 행하는 것이 군자의 완성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의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고위공직자들의 모습에서는 이 부끄러움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의 불이익과 만고의 부끄러움. 이 두 가지를 인생이라는 저울에 올려놓으면 그 무게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한때의 불이익은 마치 봄비처럼 잠시 내리다 그치는 것이요, 다가왔다 사라지는 구름과도 같다. 그러나 만고의 부끄러움은 영혼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낙인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계곡과도 같다. 순간의 손해와 영원한 오명, 현명한 사람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까?
화면 속에서 보이는 고위공직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그들은 왜 그토록 쉽게 소신과 원칙을 저버리는 것일까? 5년, 길어야 10년의 임기 동안 누릴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를 위해 평생 지울 수 없는 부끄러움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들에게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과정에서 그 감각이 마모되어버린 것일까?
소신을 지키는 길은 분명 외롭고 험난하다. 거대한 조직 내에서 다수의 의견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 'No'라고 말하는 것, 그것은 마치 홀로 거친 파도와 맞서 싸우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역사는 그 고독한 길을 선택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조선 시대 김종직은 "신하된 자는 임금의 과오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소신을 지켰고, 겸재 정선은 권력자들의 요구에 맞춘 그림 대신 자신만의 진경산수화를 그려나갔다. 시대가 달라도 소신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 소신의 길을 두려워한다. 눈앞의 손해와 불이익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들이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디지털 시대의 '기록'의 힘이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은 이제 삭제되지 않고 영원히 남는다. 순간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택한 선택이 결국 디지털 세상에 영원히 기록되는 부끄러움으로 돌아오는 아이러니. 이것이 바로 요즘 우리가 화면 속에서 목격하는 고위공직자들의 몰락이 아닐까?
채근담의 가르침은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 소신을 지키며 겪게 될 일시적인 고독과 불이익을 두려워 말라. 그것은 인생이라는 대하소설에서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원칙을 저버림으로써 얻게 되는 영원한 부끄러움은 그 소설의 주제 자체를 바꿔버린다.
화면 속 고위공직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궁금해진다. 그들은 밤에 잠들기 전, 자신의 영혼과 마주할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지위와 명예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선택이 가져온 부끄러움과 싸우고 있을까? 만약 그들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소신을 지켜 한때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인생이란 결국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모여 이루어진 모자이크가 아닐까. 중요한 것은 그 모자이크가 완성되었을 때, 우리가 그것을 부끄럼 없이 바라볼 수 있느냐의 문제다. 공직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소신을 따라 행동하다 불이익을 받더라도, 그것은 한때의 적막에 불과하다. 반면 소신을 저버려 얻는 일시적 이득의 달콤함 뒤에는 평생의 부끄러움이라는 쓴맛이 기다리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을 끄며 생각한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 부끄러움 없는 삶의 가치. 소신을 지킨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내면의 평화. 그것은 어떤 권력이나 재물로도 살 수 없는, 오직 올바른 선택만이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닐까?
* 인포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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