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중지추: 드러남과 숨음의 변증법
[낭중지추: 드러남과 숨음의 변증법]
송곳은 자루 속에 있다. 자루는 송곳을 감춘다. 그러나 송곳의 날카로움은 자루를 뚫고 나온다. 이것이 낭중지추다. 전국시대 조나라 평원군 앞에서 모수가 한 말이다. 자루 속의 송곳처럼, 진짜 인재는 숨어 있어도 드러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고 있다.
모수는 자신을 송곳에 비유했다. 그런데 그가 강조한 것은 송곳의 날카로움이 아니라, 자루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필연성이었다. 여기에 역설이 있다. 진짜 송곳은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자루가 감싸고 있어도, 그 예리함은 저절로 밖으로 나온다. 억지로 내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뚫고 나온다. 이것이 진정한 능력의 본질이다.
현대인들은 모두 송곳이 되려 한다. SNS에서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고, 이력서에 화려한 수식어를 나열하며, 면접장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마치 자루 밖으로 송곳을 억지로 내밀듯이. 하지만 이런 송곳은 가짜다. 진짜 송곳은 자루 안에서도 그 존재를 알린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그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우리 시대는 과시의 시대다.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하고, 증명해야 하고, 어필해야 한다. 조용히 있으면 무능하다고 여겨진다. 자기PR이 미덕이 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송곳은 PR을 하지 않는다. 자루 속에서도 그 예리함으로 인해 자루가 찢어진다. 이것이 모수가 말한 낭중지추의 핵심이다.
송곳과 자루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자. 자루는 송곳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감춘다. 송곳은 자루 안에서 안전하지만, 그 날카로움 때문에 결국 자루를 뚫는다. 이는 모순적 관계다. 보호와 파괴, 은폐와 노출이 동시에 일어난다. 진정한 능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겸손함 속에서도 저절로 드러나고, 침묵 속에서도 말하며, 숨음 속에서도 나타난다.
모수의 비유에는 또 다른 함의가 있다. 송곳이 자루를 뚫는 것은 송곳의 의지가 아니다. 송곳의 본성이다. 송곳은 날카롭기 때문에 뚫는다. 뚫으려고 해서 뚫는 것이 아니라, 날카로우므로 뚫는다. 진정한 인재도 마찬가지다. 능력을 과시하려 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기 때문에 드러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송곳'들은 사실 송곳이 아니다. 송곳 모양을 한 무언가일 뿐이다. 진짜 송곳은 조용하다. 자루 속에서도 그 예리함이 느껴진다. 억지로 내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존재가 알려진다. 이것이 진정한 능력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송곳이 되기 전에 먼저 날카로워져야 한다. 자루 속에서 단단해져야 한다.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말고, 내면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자루가 저절로 찢어질 것이다. 그때가 진정한 낭중지추의 순간이다.
모수는 결국 평원군의 인정을 받았다. 초나라로 가는 길에서 그의 변론술로 초왕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루 속의 송곳이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 증명은 억지로 한 것이 아니었다. 상황이 그를 드러낸 것이다. 진정한 능력은 언제나 그렇게 드러난다. 때가 되면, 저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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