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내공매거진/사마천사기

예양의 칼끝, 시대를 관통하는 충의의 물음

조우성2 2025. 5. 18. 22:17

[사마천 사기 인문학] 예양의 칼끝, 시대를 관통하는 충의의 물음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고, 여인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이를 위해 화장한다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이 유명한 한마디를 남기고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 간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의 자객 예양(豫讓)입니다. 그의 삶은 주군 지백(智伯)을 향한 맹목적일 만큼 처절했던 충의와 복수심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사마천은 『사기』 「자객열전(刺客列傳)」을 통해 그의 기이하고도 강렬한 행적을 기록하며, 인간 본성과 의리(義理)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예양의 이야기는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진정한 충성과 헌신의 의미를 되묻게 합니다.

1. 칠흑 같은 헌신: 예양, 복수의 화신이 되다


예양은 본래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섬겼으나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백의 신하가 된 후, 지백은 그를 국사(國士)로 대우하며 깊은 신뢰와 존중을 보였습니다. 기원전 453년, 조양자(趙襄子), 한(韓), 위(魏) 삼가(三家)가 연합하여 지씨 가문을 멸망시키고 지백을 살해하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조양자는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 술잔으로 사용하는 등 극도의 모욕을 가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양은 처절하게 외칩니다. "아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했다. 지백께서는 나를 알아봐 주셨으니, 나는 반드시 그 원수를 갚고 죽으리라!"

그의 복수 시도는 처절함 그 자체였습니다. 첫 번째 시도는 변소의 벽을 바르는 인부로 위장하여 조양자를 암살하려 했으나, 조양자의 예감에 의해 발각되고 맙니다. 조양자는 예양의 충성심을 높이 사 그를 풀어주며 "그는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조심해서 피하면 그만이다. 지백에게 후사가 없는데도 그 신하가 복수하려는 것은 천하의 현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양의 복수심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에 옻칠을 해 문둥병 환자처럼 보이게 하고, 숯을 삼켜 목소리를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아내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그의 친구가 "자네의 재능이라면 조양자를 섬겨 신임을 얻은 뒤 복수하는 것이 더 쉽지 않겠는가?"라고 묻자, 예양은 "이미 남의 신하가 되어 그를 섬기면서 다시 그를 죽이려 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고 주군을 섬기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이를 행하려는 까닭은 장차 천하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답하며 자신의 길을 고수합니다.

결국 예양은 조양자가 지나갈 다리 밑에 숨어 두 번째 암살을 시도하지만, 또다시 말의 예감으로 발각됩니다. 조양자는 예양을 꾸짖으며 묻습니다. "그대는 일찍이 범씨와 중항씨도 섬겼는데, 지백이 그들을 멸망시켰을 때 복수하지 않고 오히려 지백의 신하가 되었다. 이제 지백이 죽었다고 유독 그를 위해서만 복수하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예양은 당당히 답합니다. "범씨와 중항씨는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했지만, 지백께서는 나를 국사로 대우해주셨다. 그러므로 나는 국사로서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다."

조양자는 그의 의로움에 탄식하면서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음을 알렸습니다. 예양은 마지막으로 조양자의 옷이라도 받아 칼로 내리쳐 복수의 뜻을 이루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조양자가 옷을 내주자 예양은 세 번 칼을 내리치고는 "이제야 지백께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었다!" 외치며 칼에 엎드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가 죽던 날, 조나라의 뜻있는 선비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2. 사마천의 붓끝에 담긴 예양: 맹목인가, 절의인가?


사마천은 「자객열전」에서 예양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루며, 그의 행동을 단순한 '복수' 이상의 의미로 해석하려 합니다. '태사공왈(太史公曰)'에서 직접적으로 예양에 대한 평가를 길게 남기지는 않았지만, 열전 전체의 맥락과 인물 배치 속에서 사마천의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마천은 예양을 형가, 전제 등 다른 자객들과 함께 배치함으로써, 그들의 공통된 특징인 '의(義)'와 '신(信)'의 가치를 부각합니다.

사마천이 보기에 예양의 행동은 '지기지은(知己之恩)', 즉 자신을 알아준 사람에 대한 은혜를 갚으려는 순수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비록 그 방법이 극단적이고 자기 파괴적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성공하지도 못했지만, 그 근저에 깔린 인간적인 신의와 충절 자체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본 것입니다. 예양의 대사, "범씨와 중항씨는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했지만, 지백께서는 나를 국사로 대우해주셨다"는 말은 사마천이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일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상호 존중과 인정이 얼마나 중요한 동기 부여가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마천의 시선이 예양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으로만 흐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복수 방식이 가진 맹목성과 비합리성, 그리고 사회 전체의 질서보다는 개인적인 은혜에 대한 집착이 가져올 수 있는 파괴적인 측면 또한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끔 유도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양의 이야기는 '충의'라는 가치가 때로는 얼마나 위험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사마천은 이러한 복합적인 인물상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인간과 역사에 대한 다층적인 이해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3. 예양의 그림자, 오늘 우리에게 말을 걸다


2천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예양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강렬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의 삶과 죽음에서 우리는 어떤 현대적 의미와 교훈을 찾을 수 있을까요?

첫째, 진정한 '알아줌(知己)'의 가치와 그 힘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양은 지백의 '알아줌'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진정으로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예양의 이야기는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리더의 역할, 동료와의 관계, 나아가 개인의 자존감 형성 과정에서 '인정'과 '존중'이 갖는 중요성을 되새기게 됩니다.

둘째, 헌신과 충성의 의미를 재고하게 합니다. 예양의 충성심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지나치게 맹목적이거나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헌신의 순수성과 일관성은 그 자체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충성은 개인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아니라, 공동의 가치나 대의, 혹은 자신이 맡은 소임에 대한 진지한 책임감일 것입니다. 예양의 극단적인 선택은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어떻게 헌신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셋째,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에 대한 고민을 안겨줍니다. 지백에 대한 복수라는 목적은 예양에게 절대적인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파괴하고 타인을 해하려 한 수단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라는 그의 변론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동시에 더 큰 사회적 선이나 다른 가치들과 충돌할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집니다.

예양의 이야기는 비록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의 이름은 '의리'와 '충절'의 한 상징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인간관계의 깊이, 헌신의 무게, 그리고 때로는 비극으로 치닫는 이상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예양의 칼끝이 향했던 것은 조양자였지만, 그 칼날이 겨누고 있는 물음은 시대를 관통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처절했던 외침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와 신념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