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내공매거진/사마천 사기 인문학

떠난 자의 침묵, 그 무게에 대하여

조우성2 2025. 5. 16. 01:02

[사마천 사기 인문학] 떠난 자의 침묵, 그 무게에 대하여

역사의 뒤안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중 유독 무게를 갖는 것은 때로 요란한 외침이 아니라 침묵일 때가 있다. 사마천은 일찍이 "군자는 교제를 끊어도 악담을 입에 담지 않으며, 충신은 나라를 떠나도 군주의 허물을 들추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君子交絶不出惡聲 忠臣去國不潔其名)"고 했다. 이는 단순히 헤어짐의 예법을 넘어, 인간의 품격과 관계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인간사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이해(利害)로 얽혔던 관계가 틀어지고, 믿었던 마음이 돌아설 때, 우리는 종종 분노와 배신감에 휩싸여 상대의 허물을 들추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마천이 말하는 군자와 충신은 그러한 본능적 감정의 표출을 넘어서는 경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침묵은 체념이나 순응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종언 앞에서조차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스스로의 인격을 지키려는 마지막 자존심의 발로다. 마치 폐허 속에서도 함부로 기왓장을 걷어차지 않는 옛 선비의 모습과 같다.

생각해보면,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 관계를 통해 쌓였던 시간과 의미마저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떠나는 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악담은 결국 자신이 몸담았던 시간과 선택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더욱이, 한때는 군주로 섬겼던 이를 향해 돌을 던지는 것은, 그 그림자 아래서 숨 쉬었던 자신의 과거마저 더럽히는 일이다. 진정한 충(忠)이란 어쩌면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난 뒤에는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는 그 엄격한 자기 절제에 있는지도 모른다. 플루타르코스가 영웅들의 덕목을 논할 때, 역경 속에서의 의연함을 높이 샀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권력의 배신과 인간적 모멸 앞에서 침묵하기란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어려운 일이다. 정의를 외치고 진실을 밝혀야 할 때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사마천의 말은, 개인적인 원한이나 자기변명을 위해 과거의 동지나 군주를 헐뜯는 행위의 비루함을 경계하라는 뜻일 게다.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비겁함이며, 정의가 아니라 자기 연민에 불과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쉽게 타인을 비난하고 폭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퍼붓는 악담은 때로 정의의 탈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관계의 끝에서 보여주는 태도야말로 그 사람의 진정한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 떠난 자의 침묵은 때로 천 마디의 웅변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예의이자, 다가올 미래를 향한 묵묵한 걸음이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는 치열한 성찰의 증거다.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존재인가. 그 해답은 아마도 각자가 짊어져야 할 영원한 화두일 것이다.

 

떠난 자의 침묵, 그 무게에 대하여
사마천 사기 인문학 요약 & 시각화
침묵
때로 천 마디의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관계의 끝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품격과 자기 절제
사마천은 관계가 끝난 뒤에도 상대를 비방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품격임을 강조한다.
떠난 자의 침묵은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인격을 지키는 마지막 자존심이다.
현대 사회의 비난과 폭로의 문화와 달리, 침묵은 오히려 깊은 울림과 성찰을 남긴다.
관계의 끝에서 보이는 태도가 진정한 내면을 드러내며, 자기 절제와 예의가 곧 인간됨의 본질임을 시사한다.
"군자는 교제를 끊어도 악담을 입에 담지 않으며,
충신은 나라를 떠나도 군주의 허물을 들추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 사마천,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