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상사 vs 착한 상사>


한비자 리더십 강의안을 준비하던 중 발견한 문장입니다.


공감하십니까? 아니면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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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인용.


(1) 강한 상사 밑에서 일하는 부하들과, 싫은 소리 한번 할 줄 모르는 착한 상사의 부하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언어습관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아는가? '그래도'와 '그런데'다.


(2) 강한 상사 밑의 부하들은 "우리 부장님 정말 독해. 지난 번 프로젝트 말야, 밤 새며 했다니까. 정말 힘들어 죽겠어." 하다가도, 


잠시 생각하고는 "그래도 이번 일을 통해 회계처리하는 법은 확실해 배웠어. 어디를 가도 이제는 겁나지 않을 것 같아" 하며 "다른 건 몰라도 일에서만큼은 배울만하다니까"라고 마무리한다.


(3) 반면 착하기만 한 상사 밑의 부하는 "대강 해서 보고서 올렸는데 별말 없더라구. 한소리 들을 줄 알았는데 십년감수 했다니까. 


정말 우리 부장님 사람 하나는 좋아."라며 칭찬을 하다가도 "그런데..."하며 말꼬리르 흐린다. 얼마 후 만나보면 회사를 옮기거나 조직 내 고충처리를 요구해 팀을 바꿨다고 한다.


왜? 한마디로 '배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한 리더를 원한다> - 김성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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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충언 : 상과 벌은 때와 정도에 맞아야 한다.


● 인용


현명한 군주가 상을 줄 때에는 포근함이 마치 시우(時雨 ; 때 맞춰 내리는 고마운 비)와 같아서 백성들은 그 혜택을 좋아하며,


벌을 줄 때에는 무서운 것이 마치 천둥소리와 같아서 신성(神聖)일지라도 그 노여움을 달랠 수 없다.


그래서 현명한 군주는 상을 아무렇게나 주지 않으며 형벌을 용서하지 않는다.

 


상을 아무렇게나 주면 공신도 그가 할 일을 게을리하게 되고,

형벌을 용서하면 간신이 쉽게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정말 공이 있다면 비록 멀고 낮은 신분의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상을 주어야 하며,

정말 허물이 있다면 비록 친근하고 총애하는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멀고 낮은 신분인 자가 반드시 상을 받게 되고,

친근하고 총애하는 자도 반드시 처벌당하게 된다면


멀고 낮은 신분인 자가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며,

친근하고 총애받는 자도 방자하게 굴지 않을 것이다. 







● 생각


한비자에 대한 잘못된 이해 중 하나가 공포정치나 전제정치를 무조건 옹호한 것으로 인식하는 점이다.

한비자는 군주로 하여금 때에 맞는(timely) 상을 내려야 하며(時雨), 아무리 측근이라 하더라도 잘못이 있을 경우에는 공평무사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영(令)'이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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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변호사의 CEO 한비자 : CEO는 아이돌 스타가 아니다.

 

 

무릇 인자하다는 것은 동정하는 마음씨이며 은혜라는 것은 베풀어주기를 좋아하는 마음씨입니다. 그러나 동정하는 마음이 있으면 측은하여 잘못이 있어도 처벌하지 않으며 베풀어주기를 좋아하면 공이 없어도 상을 주게 됩니다. 잘못이 있는데 죄가 되지 않고 공이 없는데 상을 받는다면 비록 망한다 하여도 역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夫慈者不忍, 而惠者好與也, 不忍則不誅有過, 好予則不待有功而賞, 有過不罪, 無功受賞, 雖亡, 不亦可乎

 

- 내저설 상 칠술(七術) -

 

 

직원들의 사랑과 존경에 목말라하는 CEO

 

임회장은 1975년에 N전기를 창업하여 오랫동안 회사를 키워왔는데, 5년 전 갑자기 세상을 뜨는 바람에 N 전기에서 경영수업 중이던 그의 아들인 임사장이 경영권을 물려받게 되었다.

 

돌아가신 임회장은 그 시대 경영주들이 대개 그랬듯이 무척 엄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어서, 회사를 마치 군대 조직처럼 이끌어 왔다. 하지만 미국에서 10여 년 넘게 유학생활을 했던 임사장은, 아버지가 만든 회사의 딱딱하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일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자신이 경영권을 넘겨 받은 이후에는 의욕적으로 자유로운 소통이 강조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임사장은 현장 직원들과 만나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그들의 고충을 직접 청취하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선친인 임회장님의 리더십이 '제왕적 리더십'이었다면, 임사장의 리더십은 소위 '섬기는 리더십'이라고나 할까? 임사장이 경영권을 맡은 이후 N 전기의 고문변호사가 된 나는 방문할 때마다 임사장과 같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그가 강조하는 경영스타일에 상당한 호감을 가졌다.

 

N 전기의 외부 투자건과 관련하여 회사의 CFO이자 오랜 기간 선대 회장님을 모셨던 김이사와 회의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김이사는 임사장의 경영 스타일에 대해 이만 저만 걱정이 큰 것이 아니었다.

 

우선, 임사장의 경영스타일이 너무 온정주의로 흐르다보니 임원들이 직원들에게 강한 지시를 내리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임원들이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그 결과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직원들과 친한 관계인 임사장이 먼저 그 결과에 대해 칭찬을 해 버리면 임원들은 그 후에 엄격한 피드백을 하기 어렵게 된다. 만약 임원들이 임사장과 달리 부정적인 피드백이라도 할라치면 직원들은 '사장님은 괜찮다고 했는데'라는 투덜거림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이사가 더 크게 걱정하는 부분은 임사장이 직원들의 인기에 너무 집착한다는 점이었다.

어릴 때부터 유학생활을 했었고, 또 워낙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사랑에 굶주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임사장은 직원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의 표현을 받는 것에 아주 목말라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임사장은 CEO로서 악역을 담당해야 할 때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아졌다.

 

김이사는 아마도 회사 내에서 인기투표를 하면 사장님이 1등이실 겁니다. 하지만, 우린 아이돌 스타가 필요한 게 아닌데...’라면서 걱정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CEO가 인기에 영합해서는 안된다. 항상 중심을 잡고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뜻하고 온화한 리더로서, 조직원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모습. 아마 모든 리더들이 꿈꾸는 로망이 아닐까. 그러나 한비자는 군주의 그런 로망이야 말로 꿈에 불과하며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냉정하게 조언한다.

 

인자한 리더가 과연 조직원들의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한비자는 위나라 혜왕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군주의 자혜로움은 신중해야 함을 지적한다.

 

위나라 혜왕이 복피(卜皮)에게 물었다.

"선생은 과인의 평판을 어떻게 듣고 계신지"

복피는 "신은 대왕이 자혜(慈惠)롭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되묻기를 "그러면 나의 공은 어디에 이를 것 같소?"라고 하자 복피는 무심한 표정으로 "왕의 공은 멸망을 초래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복피의 말에 깜짝 놀란 왕은 "자혜(慈惠)는 선행일진데, 이를 실천하는 내가 멸망을 초래한다니 그 무슨 말이오?"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복피는 담담하게 말했다.

"무릇 자비로우면 인정상 차마 못하는 바가 있게 되고, 시혜를 즐기면 누구에게나 주기 쉽습니다.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 보니 과오를 범한 자도 처단하지 못하게 되고, 시혜를 즐기다보니 공이 없어도 상을 베풀게 됩니다. 잘못해도 벌하지 않고 공이 없어도 상을 받는다면 그런 나라는 멸망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복피의 이 말은 스스로의 인기에 도취해 있던 혜왕에게는 아주 따끔했으리라.

 

한비자가 위 이야기를 통해 군주에게 조언하고자 하는 뜻은, 군주의 인자함과 자혜로움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인자함과 자혜로움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군주 스스로 그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면(위 이야기에서 위나라 혜왕은 자신이 자혜롭다는 평가를 받는 것 자체에 무척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포상이 남발되는 대신에 신하의 잘못을 질책할 수 없게 되어 결국 조직의 건강성이 훼손될 위험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한비자는 그의 저서 곳곳에서 유가(儒家)식의 인자함과 자혜로움의 병폐를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한비자가 인정사정 없는 냉혈한이라는 속단을 해서는 안 된다. 한비자가 남긴 글은 기본적으로 군주에게 조언(진언)을 하는 내용인데, 당시 한비자가 처한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비자가 군주에게 전달하려는 조언의 전체적인 맥락(컨텍스트)을 이해할 수 있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혼란의 세월. 그럼에도 권신(權臣)들은 군주의 귀와 눈을 가리며 사리사욕을 취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은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춘추전국시대 말엽. 한비자로서는 이와 같은 불합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냉철하면서도 인간의 현실적인 심리를 꿰뚫는 군주의 단호함을 바랬던 것이다. 즉 한비자는 평온한 시절이 아닌 난세를 맞이한 군주들이 어떻게 처신하고 조직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적인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비자는 흔히 마키아벨리와 자주 비견된다.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하면 권력의 획득, 유지, 증대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윤리적인 권모술수를 가리키는 말처럼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15-16세기의 이탈리아가 처한 군웅할거, 약육강식, 외세개입의 분열시대를 배경으로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데서 '현실정책'을 일깨웠을 따름이라고 보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한비자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통치자의 안이한 자비심이 국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인자하기 때문에 도리어 혼란상태를 조성하고 끝장에 살육과 약탈을 초래하는 군주보다는 잔인한 군주 편이 나은 것이다. 잔인한 군주는 특정인을 해칠 뿐이지만, 인자한 군주는 결과적으로 국민 전체를 해치기 때문이다““ (군주론 17).

 

군주에게 잔인할 것을 권고하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선뜻 동조하기는 힘들지만, 인기에 영합하는 우유부단이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그의 충언은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마키아벨리는 정치학은 윤리학의 시녀일 수 없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이 명제는 당위를 탐구하는 윤리학과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고 분석해야 하는 정치학, 이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 없다는 마키아벨리 특유의 현실성이 반영된 명제이다. 바로 이 명제를 구체적으로 주장했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를 근대 정치학의 창시자라고 부르곤 하는데, 한비자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윤리의 문제와 정치의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음을 알 수 있다.

 

 

 

 

논어위정이덕(爲政以德)’이라는 말이 나온다. 즉 덕으로서 정치를 행하라는 것이다. 공자는 정녕 나를 등용하여 국정을 맡기는 군주가 있을진대 1년이면 실적을 나타낼 수 있다. 3년이 주어진다면 완전한 정치를 실현시키겠다’‘고 말한바 있다(논어 자로편). 그러나 어느 군주도 공자에게 국정을 맡기지는 않았다. 난세에 인의(仁義)만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효용도 없을 뿐더러 국가유지마저 위태롭게 할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한나라 고조(유방)는 유자(儒者)를 줄곧 멸시했었다. 그러나 천하를 평정하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유자란 정권쟁탈과정에서는 더불어 이야기 할 상대조차 못되지만, 왕조를 수립하고 유지하는 단계에서는 쓸모가 있다(儒者難與進取可與守成)’고 한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인 결과였다고 한다.

 

결국 난세를 돌파하기에는 유가의 가르침이 허약하고 너무 이상적이라는 점에 대해서 당시의 통치자들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한비자는 공자보다 훨씬 능력이 떨어지는 애공(哀公)이 오히려 군주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인의가 아닌 세()와 권위가 있었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은 본래 세()에 굴복하지만 의()를 따를 수 있는 자는 적다. 공자는 천하의 성인이다. 행실을 닦고 도를 밝혀온 천하를 돌아다녔다. 온 천하가 그 인을 좋아하고 그 의를 찬미하였으나 제자가 된 자는 일흔 사람이었다.대개 인()을 귀히 여기는 자가 적고 의를 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천하의 크기를 가지고도 제자가 된 자는 일흔 사람이며, 인의를 행한 자는 한 사람이다.

 

노나라 애공(哀公)은 하급의 군주다. 그가 왕위에 올라 나라의 군주노릇을 하자 도성의 민이 감히 신하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이란 자는 본래 세에 굴복하므로 세가 정말 사람을 쉽게 복종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공자가 도리어 신하가 되고 애공이 도리어 군주가 되었다. 공자는 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세에 굴복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를 가지고 한다면 공자가 애공에게 복종하지 않으나 세에 의존한다면 애공도 공자를 신하로 삼을 수 있다.

 

지금 학자들은 군주를 설득하면서 반드시 남을이기는 세에 의존하지 않고 인의만을 힘써 행하면 왕 노릇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군주가 반드시 공자의 수준에 미치기를 바라고 세상의 평범한 민까지 모두 여러 제자들같이 생각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결코될 수 없는 도리이다.”

 

 

 

다시 N전기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임사장이 경영권을 넘겨 받은 후 2년이 지나자 거래처로부터 품질에 대한 불만사항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선친 회장 때보다 엄격한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때문이었다.

 

실제 납품을 했다가 품질 문제로 인해 반품을 요구받는다든지 결국 계약해제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까지 당하는 일이 여러 차례 발생했고, 나는 그 뒤처리를 위해 몇 건의 내용증명 발송과 소송업무를 담당했다.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두고 어떻게 전적으로 임사장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부에서는 임원 및 관리자들이 현장 직원에 대해 취해왔던 엄격한 관리, 준엄한 질책이 CEO의 소통중심 경영에 밀려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몇 몇 임원들이 임사장에게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조언했다.

 

임사장은 임원들의 조언을 경청한 뒤 자신이 직접 현장 직원들과 만나서 의견을 교환하고 그 업무에 대해 평가하거나 칭찬하는 일을 자제했다. 그 동안 소외되었던 중간관리자들에게 제대로 역할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N전기 내부적인 문제도 조금씩 해결되어 가는 분위기다.

 

인간적인 배려와 진심어린 마음의 교감을 바탕을 둔 리더십은 충분히 가치가 있으며 추구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인기만을 좇는리더의 모습은, 스스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직원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강조할 경우 중간관리자들이 실질적으로 지휘계통에서 배제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권위와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냉정히 따져보고 살펴보아야 한다.

 

 

●● 한비자의 위즈덤 노트

 

1. CEO는 인기스타가 아니다. 인기란 언제든 사그라 들 수밖에 없는 것. 인기에 바탕을 둔 리더십은 그만큼 위험하다.

 

2. ‘분별 있는 인자함인기영합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기에 굶주려 있는 것은 아닌지, CEO는 냉엄히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CEO는 고독한 존재임을 잊지 말라.

 

 

●● 지금 나의 행동은?

 

. 임직원들로부터 항상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하는 심적인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운지, 아니면 아주 민감한 편인지?

 

. 스스로 임직원들에 대한 관계에서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적절히 배합하여 구사하고 있다고 평가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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