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소송이야기 : 아버지의 소원



변호사님, 이번 국선변호 건은 좀 무거운데요?”


송무과장이 내게 보고한 이번 국선변호 사건은 죄명이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이었다. 보통 국선변호 사건은 단순 폭행이나 절도가 많은데, 이번에는 피해액도 꽤 큰 경제사범이었다. 변호사들이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의무의 하나인 국선변호. 좀 쉬운 사건이면 얼마나 좋아. 속으로 부담이 됐다.


김성원씨(가명)는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으로 성동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은행에서 고객들로부터 돈을 입금 받은 뒤 일정 기간 지난 후에 이자를 붙여주는 것을 ‘수신(受信)행위’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수신행위는 인가(認可)를 받은 금융기관만 취급할 수 있다. 그런데 사설 업체가 정부의 인가 없이 ‘천만 원을 맡기면 매주 106만 원씩 열 번에 걸쳐서 주겠다’는 식으로 높은 이자를 약속하면서 돈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유사수신행위’라고 해서 ‘유사수신행위 규제법’에 따라 무겁게 처벌된다.  


성원 씨를 비롯한 일당 7명은 경기도 어느 읍 단위 마을 주민 300명을 대상으로 양돈(養豚) 사업에 투자해서 돈을 불려 주겠다고 약속하고는 1인당 적게는 몇 백만 원에서 많게는 몇 천만 원씩을 투자받은 뒤 매주 일정한 이자를 지급하다가 주범(主犯)이 약 100억 원에 이르는 돈을 가지고 도망가 버렸고, 나머지 일당 6명이 경찰에 구속되었다. 


“전 솔직히 그런 일인 줄 몰랐어요. 아는 동네 형이 제게 말하기를 손님들에게 커피 타 드리고, 나이 드신 분이 오시면 어깨 주물러 드리면 된다고 해서 갔을 뿐인데. 전 수고비조로 돈 조금 받은 것밖에는 없습니다.”  


변호 준비를 위해 처음 구치소에서 만난 성원 씨가 내게 한 변명이었다. 나는 기가 막혔다. 자칫하면 징역 3년 형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다면서 고개를 젓는 모습이란. 


나는 이미 수사기관에서 증거를 다 확보했고, 피해자들이 많은 데도 피해배상이 전혀 되지 않았으므로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법원의 선처를 바라는 것이 어떻겠냐고 성원 씨를 달랬다.  


그러자 성원 씨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죄를 인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 친 것이 없는데, 벌을 받는 건 억울합니다. 변호사님, 좀 밝혀주십시오.”라면서 하소연했다. 


대부분 국선변호 사건은 피고인이 죄를 시인(是認)하는 사건이라 변호할 때 큰 어려움이 없는데, 이번 사건은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서 앞으로의 법정 변호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피해액수가 워낙 크고 증거도 명백해서 성원 씨가 무죄를 받으리라고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다.


성원 씨를 만나러 두 번째 성동구치소에 가던 날. 나는 유사수신행위 일당들이 피해자들에게 나눠 준 ‘투자설명서’를 성원 씨에게 내밀었다. 그 투자설명서에는 일정한 금액을 투자하면 상당한 이자를 붙여서 돌려줄 수 있으며, 자신들이 진행하는 양돈사업은 전망이 아주 밝다는 내용이 다양한 그래프와 함께 설명되어 있었다. 


“이런 투자설명서를 피해자들에게 나눠 준 것이 사실입니까?” 


내가 내민 투자설명서를 받아 든 성원 씨는 마치 그 설명서를 처음 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설명서를 거꾸로 뒤집어 한참을 살펴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성원 씨가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것으로 생각하고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성원 씨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변호사님. 사실대로 말하자면, 전 한글을 못 읽습니다.”   


나는 한동안 눈을 깜빡였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네? 뭐라구요?” 몇 번쯤 그렇게 되묻고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성원 씨는 제대로 한글교육을 받지 못해서 자기 이름 외에는 한글을 거의 읽지 못했다. 요즘도 이런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성원 씨와 계속 대화를 나누다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무죄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경찰이나 검찰의 범죄사실 핵심은 성원 씨도 다른 일당들과 작당하여 피해자들을 속이려는 고의를 갖고 피해자들에게 투자유치를 권유했다는 것인데 도대체 한글도 못 읽는 사람이 무슨 사기행각을 벌인다는 말인가? 성원 씨가 내게 했던 변명, 즉 단순히 방문한 사람들에게 커피를 타주고 어깨를 주물렀다는 그 진술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나는 웃으며 자신있게 말했다.

“다행입니다. 오히려 잘됐습니다. 제가 성원 씨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

그러자 성원 씨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님, 혹시 제가 한글을 못 읽는다는 걸 밝히려는 건지요? 제가 한글 못 읽는다는 얘기는 재판에서 절대 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성원 씨에게 구체적인 상황설명을 했다. 이대로 재판이 진행되면 성원 씨는 아마도 징역 3년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재판부를 상대로 성원 씨가 한글을 못 읽는다는 점만 제대로 입증하면 충분히 무죄를 받아낼 수 있다. 하지만 성원 씨는 단호했다.


“피해자가 전부 우리 마을 사람들입니다. 재판을 할 때는 아마 마을 사람들이 전부 다 법원에 올 겁니다. 제 아들이 지금 고3입니다. 제 아들은 저를 닮지 않아서 그런지 공부를 잘 합니다. 몇 달 뒤면 수능시험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제 아들은 마을에서 놀림거리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험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겁니다.”


나는 다시 성원 씨를 설득했다. 성범죄 재판의 경우 재판장의 허가를 얻어 방청객들을 전부 퇴장시킨 다음 재판을 진행하는 방법도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경우도 재판장에게 사정 설명을 하면 비공개 재판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성원 씨는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자신이 글을 못 읽는다는 것이 밝혀질 우려가 있다면서 제발 자신의 의견에 따라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최후의 수단을 썼다. 협박을 한 것이다.


“지금 2주일 정도 구속당해보니 어떤가요? 힘들지요? 그런데 일이 잘못되면 자그마치 3년입니다. 앞으로 3년을 이 감방 안에서 살아야 한다구요. 아마 아드님도 이해해 줄 겁니다. 아드님이라고 아버지가 고생하는 것을 바랄까요?”


성원 씨는 주저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변호사님, 힘 드시면 저 변호 안 해 주셔도 됩니다. 저 그냥 3년 감방에서 살겠습니다. 이렇게 제 이야기 들어주신 것만도 감사합니다.”


“휴...”


나는 성원 씨의 생각이 확고하다는 것을 확인했고, 결국 변호의 방향을 수정하기로 했다. 성원 씨의 행위 가담 정도가 약하다는 점을 밝히는 데 최대한 주력해야 했다. 그 때부터 3개월 간의 치열한 법정공방이 진행되었다.



주범이 이미 도망가 버린 상황이라 남아 있는 공범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행위가담 정도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미미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죄를 떠넘기는 꼴사나운 광경이 연출됐다. 성원 씨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원 씨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는 선배라는 사람도 자신이 빠져 나가기 위해 정작 중요한 투자설명은 성원 씨가 했다는 식으로 법정에서 허위진술까지 했다. 그런데도 성원 씨는 멀뚱멀뚱한 눈으로 그 선배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반박할 증거가 마땅히 부족했던 나로서는 피해자들의 집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니며, 실제 투자 권유를 한 것은 다른 사람이고 성원 씨는 아무런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언해 달라고 사정했다.


피해자들은 이미 상당한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기에, ‘성원 씨가 뭐 잘했다고 내가 그 사람 편을 들겠소?’라면서 반문을 했다. 나는 ‘그래도 억울한 사람이 옥살이를 해서야 되겠습니까?’면서 그 중에서 성원 씨에게 우호적인 두 사람을 증인으로 세울 수가 있었다. 두 명을 증인으로 세운 다음 질문한 사항은 거의 비슷했다.


“투자설명회에 갔을 때 투자설명자료를 나눠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투자설명자료에 따라 설명을 진행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성원 씨가 한 행동은 무엇인가요?”

“성원 씨가 단 한 번이라도 투자에 대한 설명을 한 적이 있는가요?”


일단 증인석에 서게 되면, 거짓 증언을 할 경우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 있기에 증인들은 사실대로 증언을 하게 된다. 다행히 증인들은 한결 같이 성원 씨가 직접 투자설명을 한 사실은 없으며, 현장에서 커피를 타거나 잔심부름만 했다는 점을 일관되게 증언해 주었다. 


나는 증인신문을 하면서 “저 사람은 한글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구요!”라는 말을 재판부에 하고 싶다는 욕망을 몇 번씩이나 씹어 삼켜야만 했다.



지리한 법정 공방이 끝난 후 드디어 피고인들에 대한 1심 판결이 선고 되었다.


성원 씨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은 징역 1년에서 징역 3년의 실형(實刑)을 선고 받았고, 성원 씨는 행위 가담 정도가 미약하다는 점이 인정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 받았다(집행유예 형을 선고 받으면 일단 석방이 된다). 결국 성원 씨는 약 4개월 간 구속되었다가 풀려나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1달 뒤, 나는 성원 씨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성원 씨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성원 씨와 그의 처, 그리고 고3 아들이 같이 방문했다.


“그동안 정말 애 많이 써주셨는데,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약소하게나마 식사대접이라고 하려고 왔습니다.”


파란색 수의(囚衣)를 입은 모습만 보다가 멀쩡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성원 씨의 모습은 왠지 낯설어 보였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성원 씨 아들의 태도였다.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아버지에 대한 깍듯한 태도가 남달리 보였다. 성원 씨도 아들 앞에서는 위엄 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였다. 


성원 씨 아들이 식사 중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전 이번에 아버지 재판을 보면서 꼭 법대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무료 변론하는 변호사님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저도 꼭 어려운 사람을 돕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콧날이 찡해 옴을 느꼈다. 


식사를 마치고 인사 후 저 멀리 걸어가는 성원 씨 가족의 실루엣을 보았다.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가는 성원 씨. 징역 3년과도 맞바꾸면서도 지키려 했던 것이 바로 저 의젓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나.


나는 이 사건을 통해 결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섣불리 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배웠다. 







아들의 수능시험을 위해 3년 간의 감방생활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은 분명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물론 성원 씨 입장에서는 아들의 수능시험 만이 걱정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동안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보여주었던 위엄과 존경을 다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으리라. 그렇다 하더라도 그 대가가 징역 3년이라면 우리는 성원 씨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오히려 아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훨씬 합리적인 대안이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성원 씨의 입장은 단호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한다.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도 이럴 것이다 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느낀 점.


아무리 못 배우고 돈이 없어도 역시 아버지는 위대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편안함은 얼마든지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기에.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께 힘내시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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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시영 2017.08.10 13:02 신고

    저도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고
    어리지만 아들도 있습니다.

    정말 저 마음 이해합니다. 눈시울이 뜨거워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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