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소송이야기 : 어느 누나의 소송


송무담당 과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온다.


“변호사님, 이거 좀 만만치 않은 사건인데 돌려보내기가 좀 그렇습니다. 사정이 너무 딱한데요. 상담이라도 해주시면 안 될까요?”


사람 좋기로 유명한 박 과장. 일반적인 로펌의 송무과장이라면 돈 되는 사건 위주로 사건을 수임하면서 비용에 대해서도 철저해야 할 것인데, 박 과장은 마음이 비단결이라 힘든 처지에 있는 의뢰인은 그냥 넘기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박 과장으로부터 넘겨받은 사건, 참 특이한 사건이었다.


누나가 자신의 건물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아버지와 남동생에게 ‘이 건물에서 나가라’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소송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부동산은 누나의 소유. 누나는 현재 부산에 거주.

2) 누나는 아버지와 남동생이 서울에 있는 자신의 건물 2층에서 살 수 있도록 해 주었고, 별도의 보증금이나 월세도 받지 않았다. 아버지와 남동생은 약 10년 가량 위 부동산에서 별다른 대가를 내지 않고 거주하고 있었다.

3) 누나는 최근 아버지와 남동생에게 시세에 합당한 보증금과 월세를 낼 것을 전제로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했고, 아버지와 남동생은 이를 거부했다. 

4) 결국 누나는 두 사람을 상대로 기존 무상의 임대차계약을 해지하는 통보를 하고 건물명도를 요구한 것이다.


소장 내용만을 놓고 보면 아버지와 동생 측에서 반박할 내용이 거의 없었다. 우리 민법에 따르면 특별한 기간을 정해놓지 않고 계속되는 임대차 관계에서 집주인(임대인)이 계약의 해지를 통고할 경우 6개월이 경과하면 해지의 효력이 발생하도록 되어 있다(민법 제635조 제2항 제1호). 즉 아버지와 동생은 누나가 임대차계약 해지를 통보한 날로부터 6개월이 경과한 날에 이 건물에서 나와야만 한다. 


이미 소송은 변론기일을 2차례나 진행한 상황이었으며, 아마도 2-3차례 변론기일을 더 진행한 다음에는 재판이 종결될 것 같았다. 지금까지 아버지와 동생측은 변호사 없이 의뢰인이 직접 사건을 진행해왔는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변호사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변호사 선임을 준비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남동생인 형욱씨(가명)를 사무실로 와달라고 한 다음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했다. 소장 내용만 보더라도 누나는 재력이 충분한 반면 아버지와 남동생은 당장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나가면 마땅히 잠 잘 곳도 없는 상황인데, 이렇게 매몰차게 가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데는 뭔가 사연이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형욱씨는 형욱씨대로 누나에게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누나는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자기 아버지를 이 엄동설한에 바깥으로 내몰게 합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나는 형욱씨를 진정시키고 그들의 가족사를 하나씩 캐물어 보기 시작했다. 장장 3시간에 걸친 대화 속에 얻어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누나와 형욱씨는 10살 터울이었다. 아버지는 외항선을 타는 뱃사람이었기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다리 한쪽을 심하게 다쳐 더 이상 배를 타지 못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노름과 술에 빠져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어머니에게 심한 폭력을 가했다. 누나는 아직 어렸기에 그런 아버지를 말릴 수 없었다. 결국 폭력을 참다 못한 어머니는 누나가 15살 되던 해에 가출을 했고 그 이후 누나는 아버지와 형욱씨를 위해 집안 살림을 해야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누나는 고등학교도 중퇴할 수밖에 없었고 대신 동생인 형욱씨가 학교를 잘 다닐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했다. 형욱씨는 누나 덕에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누나는 악착같이 직장생활을 해서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세 식구가 어느 정도 기본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 이후 누나는 부동산 경매에 손을 대기 시작해 작은 평수의 부동산을 낙찰받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발전해서 서울 북부에 2개의 건물을 소유하는 데 까지 이르렀다. 


형욱씨는 자기도 사업을 해 보겠다고 누나에게 사업자금을 대줄 것을 요구했고, 누나는 몇 차례에 걸쳐 합계 약 5억 원에 달하는 돈을 조달해 주었다. 하지만 사업 경험이 없던 형욱씨는 계속해서 사업에 실패하고 투자금을 모두 날려버렸다.


그러던 중에 누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평생을 아버지와 남동생을 위해 헌신했던 누나로서는 자신을 보듬어주는 사람이 생기자 많이 기뻤나 보다. 그런데 그 때 문제가 발생했다. 누나가 소개한 남자에 대해 아버지와 남동생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남자의 학력이 고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누나는 자신도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는데 남자의 학력이 뭐 그리 대수냐고 말했지만 대학을 나온 아버지와 남동생은 그래도 고졸인 남자와의 결혼은 안 된다면서 반대했다. 누나는 막상 그 남자를 가족들과 만나게 해 주면 가족들의 생각이 달라지리라 생각했는데, 그 만남의 자리에서 아버지와 형욱씨는 그 남자에게 면박까지 주고 말았다. 


나는 그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아니, 평생을 아버지와 남동생을 위해 헌신한 누나가 스스로 좋다고 하는 사람을 굳이 가족들이 반대할 이유가 있었나요?”라고 물어봤더니 형욱씨는 “그 사람은 누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누나 돈을 보고 결혼하려는 겁니다. 능력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아버지와 저는 누나를 위해서 그 사람과의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만약 누나가 사고라도 당하게 되면 재산의 대부분은 그 사람에게 넘어갈 거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내 느낌에 아버지와 형욱씨는 누나가 보유한 재산이 그 남자에게 넘어갈 지도 모른다는 데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어떻든 누나는 그 이후 아버지, 동생과 일체의 연락을 끊었고 사업차 부산에 내려가면서 아버지와 남동생을 건물에서 내보내기 위한 소송을 제기하도록 변호사에게 위임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누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평생을 아버지와 동생 뒷바라지를 하며 살았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축복해 주지는 못할망정 그 사람에게 면박까지 주었으니 야속함과 섭섭함에 분노까지 더해서 완전히 마음이 돌아서 버린 듯 했다.


나는 그 동안 소송진행 과정에서 오갔던 문서들을 살펴보았다.

누나측은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었으므로 군더더기 없이 쟁점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반면에 아버지와 동생측에서 제출했던 문서(준비서면)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누나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1) 어릴 때부터 누나는 자기중심적이었다.

2) 커서도 돈을 번답시고 아버지와 동생에게 항상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를 취했다. 

3) 지금 소송을 제기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이기적으로 돈만 밝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는가. 이 소송은 천륜을 배반한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소송이 진행되어서는 형욱씨가 소송에서 승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형욱씨가 인간적인 측면에서 누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법리적인 결과에 따라 선고하는 판결에서 승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꼭 승소하게 해 주세요. 만약 이 사건에서 우리가 지고 나면 누나는 분명 강제집행 같은 걸 해서라도 우리를 이 건물에서 끌어 낼 겁니다. 누나는 지금 완전 돌아버렸어요. 제 정신이 아니예요.”


나는 남은 재판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 지 고민에 빠졌다. 


“형욱씨, 제가 하자는 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야만 제가 이 사건을 맡을 수 있습니다.”


나는 형욱씨에게 다짐을 받고 다음 재판을 위한 준비서면(재판을 위해 주장을 담아 법정에 제출하는 서면) 초안을 작성했다. 하지만 내가 변호사로서 이 사건을 정식으로 위임하는 형식을 취하지는 않았고 기존처럼 계속해서 형욱씨가 직접 서면을 작성하는 형태를 취했다. 물론 그 서면의 내용은 기존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작성한 서면의 중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① 문득 소송을 진행하다가 과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② 나와 아버지에게 누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③ 그 동안 누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부분이 컸다. 특히 매형되실 분을 데리고 왔을 때 마음으로 축하해 주지 못한 것이 두고 두고 마음에 남는다. 가족으로부터 받지 못한 따뜻함을 그분에게서 느꼈을 텐데 이를 헤아려주지 못했다. 


④ 아버지와 나는 평생 누나에게서 짐만 되는 존재였다. ⑤ 이번 사건의 결과에 상관없이 더 이상 누나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


이 초안을 읽어 본 형욱씨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이렇게 우리 잘못을 시인하는 서류를 법원에 내면 누나는 더 기가 살 텐데요? 오히려 더 불리해 지는 것 아닙니까?”


나는 대답했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 가더라도 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남은 방법은 이것 뿐이에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형욱씨는 못내 불안해하면서도 서면을 법원에 제출했다.

그로부터 3주 뒤 재판 당일. 나는 정식으로 위임장을 제출한 대리인이 아니었으므로 법정에는 출석했지만 방청석 앉아서 형욱씨 재판 진행 상황을 지켜보았다. 


형욱씨의 사건 번호가 판사님에 의해 호명되자 누나측 대리인인 변호사와 형욱씨가 판사님 앞에 섰다. 그 때 누나 측 변호사의 발언,


“재판장님. 원고(누나)측이 이 사건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합니다.”






재판장이 물었다.

“아? 그래요? 소송을 취하해 주신다면 우리야 편하고 좋지만. 그럼 피고측에서도 이의 없는 거지요?”

피고인 형욱씨는 얼른 방청석에 있는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욱씨는 “네, 이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재판장이 “네, 이 사건은 확정적으로 취하됐습니다. 그럼 피고들이 계속 이 사건 건물에서 사는 것을 원고가 허락해 준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됩니까?”라고 원고측 변호사에게 물어보자 변호사는 “네, 이번 기회에 아예 영구적인 무상사용 계약서를 하나 쓰려고 한답니다. 그 뒷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원고로부터 위임을 받았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형욱씨.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나는 형욱씨에게 ‘누나가 우리 준비서면을 보고 마음을 달리 먹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거 보세요. 역시 누나는 누나입니다. 누나가 이렇게 마음을 열었으니 형욱씨는 누나에게 앞으로 더 잘해야 합니다.”


결국 형욱씨와 아버지는 살고 있던 건물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되었고,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가족간의 관계도 어느 정도 복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변호사는 소송에서 승소해야 한다. 

그런데 승소하는 방법에는 우리 의뢰인의 논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방식도 있지만 반대로 의뢰인의 주장을 중단하고 대신 상대방의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져 줌으로써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있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 배웠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 누나의 아픔과 외로움, 그리고 따뜻한 마음이 내 가슴에도 전해 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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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성호 2012.12.19 20:52 신고

    변호사님 감동적인 글 잘 보았습니다 마음이 찡한 느낌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 장시영 2017.08.10 12:34 신고

    이미 팟방으로 들었던 내용이지만
    정말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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