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변호사의 소송이야기 : 계약금 때문에 울고 웃고.


강정욱(가명)은 어느 모임에서 알게 된 후배. 


자동차 세일즈를 하는데 타고난 친화력과 성실함으로 매년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었다. 정욱은 3년 전에 인천 송도에 아파트를 하나 장만했다. 원래 부모님을 모시고 서울 북부에서 오랫동안 살았는데, 장차 인천 송도가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 하에 부동산 투자목적에서 은행 대출까지 끼어서 7억 원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그런데 당초 예상과는 달리 송도쪽의 부동산 거래도 뜸하고 부동산 경기도 전반적으로 위축되어 투자수익을 예상하기는커녕 금융기관 부채 이자에 허덕이는 신세가 됐다. 정욱의 주 영업장소가 서울인 점을 감안해 볼 때 아무래도 다시 아파트를 처분하고 서울로 복귀하는 것이 맞겠다고 판단하고 아쉬운 마음에 아파트를 매물로 내 놓았다.


분양가가 7억 원이었는데, 시가는 오히려 그 때보다 1억 원이나 내린 6억 원 정도였다. 정욱은 하는 수 없이 6억 원에 아파트를 내 놓았지만 거래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욱은 공인중개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 집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집을 사려는 K씨는 협상의 달인이었다. 정욱의 아파트가 잘 팔리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듯, 모든 거래 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지금 별로 매매가 잘 되지 않잖아요? 저희도 큰마음 먹고 사려는 건데. 그렇다고 꼭 지금 이 집을 사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내놓으신 금액 6억 원으로는 저희들도 부담되구요, 5억 5천 만원 정도라면 생각해 볼 만합니다. 어떠세요?”


K씨의 말대로라면 최초 분양가보다 1억 5천만 원이나 더 싸게 팔아야 할 판. 하지만 앞으로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여서 정욱은 차라리 빨리 처분하고 서울쪽으로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급해서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이번에 K씨는 계약금에 관해서 협상을 해왔다.


“저희들이 자금을 금융권으로부터 융통해야 하기 때문에 계약금은 1,000만 원만 걸면 안될까요? 나머지 5억 4,000만 원은 잔금 지급일에 한꺼번에 드리겠습니다.”


보통 계약금은 전체 금액의 10%로 하는 것이 통례이므로 매매대금이 5억 5천만 원이라면 계약금은 그 10%인 5,500만 원이어야 하는데 K 씨는 1,000만원 만 계약금으로 하자는 것이다. 


정욱은 그건 곤란하다고 말했지만 K씨는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얼르고 뺨치면서 정욱을 달랬고, 정욱은 울며 겨자먹기로 그 조건에 계약을 체결하고 그 날 계약금으로 1,000만 원을 받았다.


그런데 이틀 뒤, 정욱이 깜짝 놀랄만한 일이 발생했다.


그동안 간간이 언론에 보도되긴 했지만 거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일이 현실로 발생한 것이다. 초대형 국제기구가 인천 송도에 유치 확정된 것이다. 정욱이 주변에 알아보니 이 일로 인해 정욱의 아파트를 비롯한 인근 아파트 시세가 급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1-2년 후엔 최초 분양가를 상회하는 선까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정욱은 땅을 치고 후회할 노릇이었다. 몇 일만 더 참을 걸.


반대로 정욱으로부터 싸게 아파트를 구입한 K씨는 횡재를 한 셈이었다. 5억 5천만 원에 구입한 아파트가 1-2년만 지나면 7-8억 원이 될 수 있었기에.




K 씨는 국제기구 유치 확정발표가 나자 바로 정욱에게 전화해서 “잔금을 당초 예정된 날짜보다 빨리 입금하겠다. 다음주 초에 바로 입금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상이 모임에 나갔다가 풀이 죽은 표정으로 “아, 전 왜 이럴까요? 아버님 퇴직금까지 다 집어 넣은 아파트인데, 이렇게 상황이 꼬입니다.”라면서 신세한탄을 하는 정욱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의 전말이다.






나는 정욱에게 “계약을 깨지 그래?”라고 했더니 “그 쪽에서 계약위반한 것도 없는데 어떻게 계약을 깨나요? 제가 너무 성급하게 계약을 했기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된 건데, 제 탓이려니 해야죠.”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K라는 사람, 아주 수완이 좋아 보이던데, 정말 운도 좋군요. 아, 배아픕니다.”


나는 정욱의 어깨를 두드리며 “내가 도와줄게. 해결책이 있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진 정욱.


정욱이 오해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계약금만 건네 진 상황’의 부동산 매매계약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우리 법에 따르면 ‘계약금’만 건네 진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잘못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계약금만 포기하면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계약을 해제(파기)할 수가 있다. 그래서 계약금의 성격을 해약금이라고도 한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정욱은 이미 건네 받은 계약금의 2배인 2,000만 원을 K에게 반환하고 ‘자, 이 계약 없던 걸로 합시다.’라고 할 수 있다. 즉 계약의 구속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만약 입장을 바꿔서 위 부동산 계약 이후 문제가 된 아파트 근처에 산업쓰레기 하치장이 들어선다는 보도가 있었다고 하자. 이 경우에는 당연히 K가 계약을 깨고 싶을 것인데, 이 때 K는 이미 자신이 건넨 1,000만 원을 돌려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즉 포기하고), 위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이처럼 단순히 계약금만 주고 받은 상황에서는 계약을 자유롭게 해제할 수 있는 것이어서 아직까지 계약적인 구속력을 헐거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다음 날 정욱을 대리하여 K에게 보낼 내용증명을 작성했다. 


“이 사건 매매계약은 아직까지 계약금만 건네 진 상태다. 이 상태에서는 매도인(정욱)은 계약금의 배액(2배)을 매수인(K)에게 반환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이에 매도인은 매수인으로부터 수령한 계약금 1,000만 원의 배액인 2,000만 원을 매수인에게 반환하고 이 사건 매매계약을 해제하고자 한다.”




정욱은 급히 1,000만 원을 추가로 조달한 뒤 기존에 K로부터 받았던 1,000만 원에 더하여 2,000만 원을 반환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었다. K가 계약금을 1,000만 원으로 낮게 잡은 덕에 정욱은 추가로 1,000만 원만을 부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K가 정욱을 도와준 셈.


만약 정욱이 이처럼 신속하게 내용증명을 보내지 못했고, 그냥 K로부터 잔금을 받은 뒤 별도로 이의제기 하지 않았다면 정욱의 아파트는 K의 소유가 되었을 터,


“덕분에 몇 억 손해볼 뻔 했습니다, 선배님. 법이란 게 참 오묘하네요?”


그렇다. ‘법은 상식’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구체적인 법 적용에 있어서는 우리가 이해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된 조언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개인의 권리보호 여부는 큰 영향을 받는다. 


어떠세요. 믿음직한 변호사 친구 하나 두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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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시영 2017.08.10 12:28 신고

    조변호사 같은분이 곁에 계신다면
    정말 세상 든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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